도구의 재발견
캘리그래피는 서예의 문방사우처럼 정해진 재료와 도구만을 가지고 글씨를 쓰지 않는다.
틀에 얽매이지 않고 원하는 대로 손에 잡히는 것이 캘리그래피만의 특별함이다. 붓의 종류는 기본적인 서예 붓이지만, 선의 질감, 글씨의 다양한 형태를 표현하기 위해 상상 그 이상의 도구들이 등장한다.
공연 포스터나 드라마 서체, 북 표지, 다양한 제품군에 사용되는 글씨들을 보면 도대체 무슨 붓으로 썼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특이한 글씨 형태들이 우리들 눈을 의심하게 만든다.
캘리그래피 전용 붓이라고 단정 짓고 시장에 유입되는 경우도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일까 많은 사람들에게 궁금증과 함께 친근감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글씨의 느낌에 따라 기본적인 서예 붓에서 볼 수 없었던 다양한 형태의 글씨들..., 분명한 것은 생활 속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도구들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다 쓰고 버려야 할 칫솔을 시작으로, 면봉, 화장 브러시, 나무젓가락, 나뭇가지, 나무뿌리, 그림 붓, 마스카라 펜, 모이스 조각, 오징 어물, 황토, 커피 원액, 티슈, 광목, 무명천, 일반용지 등.. 한마디로 생활의 발견이다. 도구의 출처에 따라 직접 구하러 현지를 찾는 경우도 있고 직접 만들기도 한다. 때로는 꼭 필요로 하는 도구에 대해서는 직접 찾아 나서기도 한다.
실 예로 드라마 타이틀 서체를 쓰기 위해서 단단하면서도 쉽게 부러지지 않는 대나무 뿌리를 찾아 인천 ‘영흥도’라는 섬에 직접 가서 대나무를 캐 온 적도 있다. 뿐만 아니라, 황토 글씨를 쓰기 위해 덕소에 있는 어느 시골마을까지 찾아가 황토를 구해 채로 거르고 걸러 먹물 대신 황토를 짓이겨 글씨를 썼던 적도 있다.
종이는 또 어떤가?
기본은 한지, 화선지로 대부분 사용되지만, 쓰임에 따라 일반 종이를 비롯해 티슈, 화장지, 광목천에 이르기까지 쓰이는 형태는 다양성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기본적인 먹물 형태는 직접 벼루로 갈아서 쓰는 경우가 많지만, 요즘에는 필방에서 먹물을 사서 쓸 수도 있고, 먹 대용으로 일반 그림물감에 유약을 섞어서 사용하기도 하고, 황토나 진흙, 커피 원액, 쇠 가루, 타고 남은 숯을 정교하게 갈아서 쓰는 경우도 있다.
캘리그래피의 도구와 재료들은 사람들의 일상에서 너무나 친숙하게 사용되는 물건들로 채워가고 있다.
일반 붓에서 느끼지 못하는 투박함과 예리함., 편안함과 불편함, 강인함과 약함, 증오와 사랑스러움..,
글씨를 쓰기 위한 재료와 도구의 치밀한 구성이야말로 글씨를 완성하는데 가장 중요하며, 절대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이 모든 것이 캘리그래피 세계에서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