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은 다양하다. 학창 시절부터 공부를 열심히 하여 사회에 나와서도 혼자의 힘으로 자수성가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공부는 못했어도 사업수완이 좋아 사업으로 성공한 사람도 있고, 지지리도 못났지만 잔꾀가 있어 주변의 지위를 이용해 기생하며 졸부처럼 사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 하면 부(富)와는 상관없이 세끼 밥은 굶지 않은 월급쟁이들도 있고, 허울 좋은 예술을 한답시고 늘 가난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나다운’ 것일까?
법정스님께서 말씀하시길 “어딘가에 집착해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안주하면 그 웅덩이에 갇히고 만다. 그러면 마치 고여 있는 물처럼 썩기 마련이다.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곧 자기답게 사는 것이다. 낡은 탈로부터, 낡은 울타리로부터, 낡은 생각으로부터 벗어나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라고 법문 강연에서 밝힌 바 있다.
어쩌면 현재 자신이 추구하는 아집(我執)으로 세상 변화에 적응하지 못함을 지적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봤다.
우리는 흔히 누군가가 어떤 일처리에서 “너답다 내지는 너다운 결정을 했다.‘라는 표현을 많이 쓰고 듣는다. 자신의 소신을 바탕으로 의견을 피력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합리적인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사안의 정도에서 수긍할 수 있는 내용을 말하는 것으로 여기저기 눈치 보지 않고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본연의 색깔로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위에서 피력한 법정스님의 법문 내용은 어떻게 보면 지극히 수행자로서의 세상을 바라보는 ‘자가 다움’을 말한 것으로 이해하면 될 듯싶다.
‘나다움’의 실체는 머릿속에서 맴도는 생각들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실천하는 데 있다.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의 성격을 보더라도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접근한다. 혈액형별 사고를 말하기도 하는데 각자의 혈액형별 성격의 구조는 남자나 여자,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의 차이와는 별개 문제다.
‘나답다’는 것은 내가 하고 싶고, 좋아하며, 기쁘게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자기 자신과 타협하는 것이다. 그 안에는 삶을 살아가면서 후회 없는 선택의 기준을 잡아가는 것이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만족도나 자부심을 가질만한 매력이 있는가에 대한 스스로의 매서운 자기 점검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재 내가 하는 일이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기쁘게 할 수 있는 일인가에 대한 자기반성이 먼저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사람들과의 인과관계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나답게’ 사는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