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 눈으로 아침을 맞았다. 멀리서 아침을 깨우는 수탉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정겹다. 어제는 많은 비로 대한민국이 몸살을 앓았다. 그렇게 매몰아 쳤던 어제의 상흔은 기억하지 못한 채 바람 한 점 없이 편안해 보이는 오늘이 야속하기까지 했다.
힘들고 괴로워도 미친척하고 잠시 웃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백 년도 못 사는 인생인데 천년의 근심을 안고 산다면 얼마나 슬픈 현실인가? 근심은 재산이 많고 적음의 차이가 아니라 집착의 크기에서 좌우된다. 부, 권세, 명예에 대한 집착이 크면 클수록 마음의 근심도 커진다.
가진 게 없고 가난해도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부유해도 늘 우울증과 자살의 유혹 속에서 허우적대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수천 수 만 가지의 직업과 동호모임이 있다. 삶의 방식은 수십, 수백만 가지로 개개인마다 다르다. 그러나 유일한 공통점은 ‘삶은 찰나다.’라는 것이다. 짧은 여정이기에 추구해야 할 가장 값진 가치는 ‘즐거움’과 ‘웃음’이다.
성공을 위해 상대방에게 상처 주고 이익을 위해 정든 사람을 배신하는 삶 속에는 웃음이 깃들지 않는다. 삶 전체를 좌우할 것 같았던 애타던 순간들, 시련과 고통 속에 헤매던 불면의 밤들도 지금 돌이켜 보면 모두 다 한 줌의 흙이요, 바람에 지나지 않는다.
예술가의 이름이 널리 퍼진 진품보다 내 가슴에 깊게 퍼진 모조품이 삶을 더 값지게 한다. 모든 사람이 아끼고 좋아하면 모조품도 명품이 된다. 씨가 같은 패륜을 일삼는 아기가 아니라 씨가 달라도 정들고 사랑스러운 아기가 진짜 내 아기다.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분별없는 탐욕이 아니라 열린 포용이다. 내 것에 집착하고 빼앗기지 않을까 안달하는 것은 불행을 자초한다. 다시 오지 않을 순간순간을 아름답게 맞이하고 반가운 손님이 다녀가듯 보낼 수 있어야 한다. 죽기 전 웃을 수 있는 사람은 차별과 탐욕의 자잘한 승자가 아니라 포용과 비움의 통 큰 승자다. 집착과 분별을 버리면 모두가 웃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