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함’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가? 잘못된 당당함은 허세로 비치는 경향이 종종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서 말이 많은 사람들을 목격할 수 있다. 반면 계속 경청만 하는 사람도 있다. 말이 많다는 것은 당당함보다는 허세에 더 가깝다. 군중심리를 이용해 자신의 논리를 정당화시키고 합리화하려는 저급한 망동에 지나지 않는다. 비전문가가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얄팍한 정보로 전문가 앞에서 호도하는 사람, 처음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혼자 떠들어 대는 사람, 모든 것이 내가 말하는 것이 법이고 원칙이라고 착각하는 사이코패스까지..
당당함은 마음속 깊이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는 ‘지존 감’에서 비롯된다. 누구보다 일찍 깨어 새벽을 여는 한 환경미화원이 골목길을 청소하다가 740만 원이 든 돈 가방을 주웠다. 가방 안에는 현금 80만 원과 10만 원권 자기 앞 수표가 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돈을 한 푼도 건드리지 않고 본래의 가방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그는 스물다섯 살에 무작정 상경해서 14년째 환경미화원으로 일해 왔고 맞벌이하는 아내와 고1, 중1 두 자녀를 둔 넉넉지 않은 가장이었다. 그는 그 돈을 줍고 세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고 했다. 누군가 아깝지 않았느냐고 묻자 “아내와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남편, 아빠가 되기 싫었다.”는 짧은 말만 건네고 본연의 일을 계속했다고 한다.
‘당당함’은 솔직하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힘들어할 때 말 한마디 따뜻하게 건네줄 수 있는 사람, 위로를 위한 포장된 위로의 말을 덧붙이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평상심의 말 한마디! “힘 내”
부끄러운 부자보다 당당한 빈자가 평화롭고 풍요롭다. 부끄러운 A학점보다 정직한 B학점이 존경스럽다. 말만은 허세가보다 경청하고 배려하는 사람이 아름답다. 물질의 풍요가 넘쳐나는 세상이 아니라 당당한 마음이 넘쳐나는 세상이 우선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