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라졌나?
한반도에도 원숭이가 살았다. 분명한 사실이다. 구석기시대 유적인 충북 제천 점말동굴에서 원숭이뼈 화석이 출토됐다. 마찬가지로 구석기시대 유적인 충북 청주시 문의면 노현리 두루봉동굴에서는 큰원숭이 위턱과 아래턱 뼈가 출토됐다. 충북 단양군 가곡면 여천리 삼태산 구낭굴과 강원도 영월 연당 쌍굴에서도 역시 같은 큰원숭이 종으로 추정되는 뼛조각이 출토됐다.
그러나 선사시대에 한반도에 살았던 조상들이 바위에 새긴 동물도감인 반구대 암각화에선 원숭이를 찾아볼 수 없다. 이후 역사시대로 접어들면서 한반도에서 원숭이가 살았다는 명확한 기록은 발견되지 않는다. 다만 삼국유사에 이차돈이 순교할 때(신라 법흥왕 14년; 서기 527년) 원숭이가 떼 지어 울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조선왕조실록에는 84차례 원숭이가 언급된다. 1394년(태조 3년) 일본 사신이 왜구에게 잡혀간 양민을 돌려보내며 원숭이를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세종대왕은 제주도에서 사육하는 원숭이를 잘 기르고 번식시키라는 명을 내리기도 했다.
일각에선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제주 원숭이를 들어 원숭이가 한반도에 자생했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외부에서 들여온 것일 가능성이 크다. 실록에 기록된 원숭이 관련 기사 가운데 원숭이를 비유적으로 사용한 것을 빼고는 제주도 기록을 제외하면 모두 일본에서 온 사신이 원숭이를 바쳤다는 내용이다. 한반도에 없는 진귀한 짐승이므로 일본인이 바쳤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삼국유사의 기록은 원숭이와 관련된 역사상 가장 오래된 기록이기는 하지만 역시 원숭이가 자생했다는 증거력은 희박하다. 앞 뒤로 원숭이가 살았다는 또는 사라졌다는 기록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선사시대 각종 유적 출토로 한반도에서 살았던 게 확인되는 원숭이들이 왜 역사시대에 들어 자취를 감췄을까? 학계는 한반도에 찾아온 빙하기를 이유로 꼽는다. 1만여 년 전에 끝난 마지막 빙하기를 견디지 못하고 멸종했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이다. 이 밖에 대형 육식동물의 습격을 받아 멸종했다는 설도 있다. 어찌 됐든 대륙에서 한반도로 넘어온 원숭이들은 빙하기를 견디지 못해 더 이상 후손을 남기지 못했고, 한반도를 거쳐 일본까지 뻗어간 원숭이들은 빙하기를 넘긴 뒤,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섬이 된 일본에서 살아남고 있다.
원숭이는 한반도인에게 굉장히 친숙하지만, 사실 역사시대엔 한반도의 야생에서 살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6.25 전쟁 이후 태어나 한반도 남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단 한 번도 호랑이를 본 적 없으면서, 호랑이에게 친근감을 느끼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