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 팩트체크
1. 오늘 확인해 볼 주제는 <문해력 논란>입니다. 최근 국어 학원 강사 출신이라는 유튜버가 <밥 먹을 때는 개도 건드리지 않는다>는 속담과 관련해 이슈가 되고 있는데요. 먼저 이 내용부터 좀 짚어보죠.
- 네 한 유튜버가 최근 동영상을 만들어서 유튜브에 올렸는데요.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 속담에 해석 논란이 있다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밥 먹을 때는 아무리 잘못을 한 일이 있더라도 꾸짖지 않는다>는 해석이 있고요. 다른 하나는 <사람이 밥을 먹고 있을 때는 개조차도 와서 건드리지 않는다>이런 해석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둘 다 품은 의미는 같지만 누가 누구를 건드리느냐의 차이가 좀 있죠. 이 유튜버는 보조사인 '도'와 호응하는 주체가 명확하지 않아서 둘 다 일리가 있다고 소개를 합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시청자 의견을 물으며 끝납니다. 유튜버의 인스타그램 채널에 두 가지 해석 중 어떤 것이 맞냐는 설문조사를 올렸고 3만 명 가까운 사람이 투표를 했는데 5.5대 4.5 정도로 팽팽한 의견이 제시됐고요. 이 내용이 온라인 매체를 통해 기사화되면서 문해력 논란으로 비화됐습니다.
2. 일상생활에서 굉장히 많이 쓰는 속담이잖아요. 그런데 정확한 뜻을 모르고 쓰는 분들이 절반 가까이 됐다는 얘기네요. 좀 놀랍기도 한데요. 국립국어원이 정리를 했다고요?
- 네 논란이 빚어지면서 일부 네티즌들이 국립국어원에 문의를 했습니다. 국립국어원은 <온라인가나다>라는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이용자들이 어문 규범과 어법에 대한 문의를 하면 답변해 주는 곳입니다. 온라인가나다는 이번 논란에 대해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때린다>는 속담은 비록 하찮은 짐승일지라도 밥을 먹을 때에는 때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는 아무리 잘못한 것이 있더라도 때리거나 꾸짖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라고 안내했습니다.
3. 이런 문해력 논란은 잊을만하면 한 번씩 불거지고는 하는데요. 언론도 책임이 크다면서요?
- 언론 매체들은 사실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지만 기본적으로 말과 글을 통해서 대중을 만나는 기관이잖아요. 그래서 학교 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들과 학교를 마친 일반인들은 이 언론 매체들이 사용하는 말과 글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언론사 보도를 보면 굉장히 한숨이 나는 경우가 많단 말이죠. 언론이 말과 글을 원래 뜻과는 달리 잘못 사용하면, 대중들이 그걸 근거로 잘못된 언어 습관을 형성할 우려가 큰 거죠.
4. 말 나온 김에 언론 매체들의 잘못된 말글 사용 실태를 한 번 살펴보죠.
- 얼마 전 극한 호우로 인한 피해가 심각했잖아요. 우리나라는 산이 많기 때문에 집중호우가 산사태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고, 홍수가 나서 주택이나 건물, 도로 등이 물에 잠기면 흙으로 뒤덮이게 됩니다. 기사 제목을 몇 개 가져왔는데요. 뉴스원 7월 23일 자 <폭우로 떠내려온 토사물 제거작업>, 이데일리 7월 21일 자 사진기사 <[포토] 산에서 떠내려온 토사물 피해현장> 이렇습니다. 토사물이라는 표현을 쓰는데요. 토사물은 <토해낸 물질>이라는 뜻입니다. 흙탕물이 쓸고 나간 뒤 흙과 모래가 쌓이는 건 토사라고 해야 맞는 거죠.
기사 본문에서는 '토사'를 '토사물'로 잘못 쓴 표현을 더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KBS뉴스 홈페이지에 '토사물'을 검색하면 이번 호우 피해를 전하는 보도에 토사물이라는 단어를 잘못 사용한 기사가 4건 검색됩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운영하는 언론기사 검색 사이트 '빅카인즈'에서 전국일간지와 방송사 기사를 검색하면 이번 호우 피해를 보도하는 기사 12건이 '토사물'이라는 단어를 잘못 사용하고 있습니다.
5. 다른 사례도 좀 짚어볼까요?
- 민생회복 소비쿠폰 신청자들이 몰려들어서 행정 공무원들도 바쁘지만, 전산망도 굉장히 처리해야 할 정보가 많아져서 버겁다고 하는데요. 대구 달서구 행정복지센터 민생회복 쿠폰 전산이 30분 동안 먹통이 됐다고 합니다. 노컷뉴스는 관련 보도에서 <짧은 시간에 신청자가 많이 몰려서 과부화가 온 것 같다>고 전합니다. 경북도민일보 7월 14일 자 기사는 제목이 <여름철 냉방기기 사용 시 멀티탭 과부화 조심하세요>입니다.
일을 너무 많이 맡은 상태 또는 기기나 장치가 다룰 수 있는 정상치를 넘은 부하를 일컫는 말은 과부하입니다. 과부화라는 말은 사전에는 없고요. 억지로 해석을 하자면 누군가를 남편 없는 과부로 만들어 버린다는 뜻으로 볼 수 있겠는데요. 말이 안 되죠.
그런데 우리 언론은 말이 되지도 않는 말을 기사에 마구 쓰고, 심지어는 제목에도 가져다 쓰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몇 년 전에 이틀 사흘 나흘 논란이 있었잖아요. 두 날을 뜻하는 이틀을 숫자 2를 써서 2틀이라고 쓴 기사가 엄청 많이 검색됩니다. 세 날을 뜻하는 사흘에 숫자 4를 붙여서 4흘이라고 쓴 기사도 많고요.
언론사 기사를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냥 보통 사람들이 쓰는 말이 아니고요. 소파를 쇼파로 표기하거나, 항산화를 황산화로 잘못 쓰는 사례도 있고, 고정밀 지도 또는 대축척 지도라고 써야 할 것을 고밀도 지도라고 쓴 사례도 있었습니다.
6. 얼굴이 화끈거리는데요. 누구보다 앞장서서 정확한 말글을 사용해야 할 언론사들이 이렇게 많이 실수를 쏟아내는 이유는 뭘까요?
- 일단 언론매체들이 난립하면서 영세한 매체들이 많이 늘어난 게 가장 큰 이유로 보입니다. 예전에 언론사들이 별로 없을 때, 종이신문과 지상파 방송이 거의 전부였던 시절에는 언론사에 교열 기능이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요. 지금도 일부 매체에는 있기도 하지만, 굉장히 많이 위축됐습니다.
기자들이 기사를 쓰면 교열부, 또는 교열팀에서 바른 표현으로 고치고, 논리의 모순 등을 바로잡는 일을 하는 건데요. 영세한 매체들은 기사를 쓰는 데만도 급급하니까 교열을 전담하는 인력을 쓸 수가 없는 거죠.
교열 기능이 있다고 하더라도 신문 지면이나 방송에 나가는 기사 위주로 교열을 보고, 인터넷으로 나가는 기사는 교열을 안 보는 기사들이 있단 말이죠. 일선 기자들이 실수를 줄이고 완벽한 기사를 써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게 일차적 원인이고요. 언론사들의 역량이 줄어들고, 언론환경이 척박해지는 것도 큰 원인이라고 봅니다.
7. 이 문해력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뭔가요?
- 일단 언어는 고정돼 있는 게 아니고 계속 변해간다는 게 가장 근본적인 이유인 것 같습니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때린다>는 속담은 제가 자랄 때까지만 하더라도 생생하게 살아있었는데, 지금은 굉장히 시대 상황이 많이 바뀌었잖아요. 어린이 청소년에 대한 모든 체벌이 금지됐고, 동물 학대라는 개념이 일상화됐고 또 개를 때리면 처벌받는 시대가 된 것이죠. 그래서 상대적으로 학생층이나 어린이들은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때린다>는 이야기가 전혀 와닿지 않는 거죠. 밥 먹을 때 누가 누구를 때린다는 말인가? 왜 때린단 말인가? 이런 맥락에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인 거죠. 그냥 속뜻은 외우기는 하는데 어디에서 비롯된 말인지 모르는 상태로 외우니까 이해가 다를 수 있죠.
모르면 배우면 되고,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알려주면 되는데. 이걸 문제 삼고 논란을 만드는 언론도 문제라고 봅니다. 이 속담과 관련된 논란은 사실 몇 년 전부터 커뮤니티에서 돌았던 이야기거든요. 유튜버가 자기 조회수 올리려고 해묵은 이야기 가져다 동영상 만들어 걸었던 거고. 이걸 또 언론사들이 기사 조회수 올리려고 가져다가 기사를 만든 거죠.
8. 젊은 세대의 문해력, 어휘력이 많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는데요.
- 우리나라 성인을 대상으로 한 문해력 측정이 있는데요. 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매년 성인문해능력조사를 합니다. 최근 조사인 2023년 결과를 보면요. 조사 대상의 83.4%가 일상생활에 필요한 충분한 문해력을 갖춘 수준(수준 4)으로 나타났습니다. 연령별로는 18세부터 29세까지의 97.3%가 수준 4를 기록해 전 연령대 가운데 가장 문해력이 좋은 걸로 나왔고요.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문해력은 낮아지는 걸로 나타났습니다. 60대는 수준 4 비중이 76.2%, 70대는 47.2%, 80세 이상은 18.8%인데요.
그러니 젊은이들이 문해력이 떨어진다는 비판은 접어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다만 세대 간에 주로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지다 보니 윗세대는 일상적으로 사용하지만 젊은 세대는 잘 쓰지 않는 언어가 생겨나는 게 아니냐는 추론은 가능합니다. 특히 한자어라든지, 앞서 짚어 본 속담, 시대가 바뀌면서 잘 쓰지 않게 된 말 등이 있죠. 사흘, 나흘, 여드레, 달포 이런 말도 예전에 비해 덜 쓰이게 됐고요. 세대, 학력, 지역 등 살아온 배경이 다르면 쓰는 말도 달라지는 게 당연한 겁니다. 일상 생활하다가 말이 잘 안 통한다고, 나는 아는 말인데 남은 모른다고 갈라치고 조롱하지 말고,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 무안하지 않게 넌지시 알려 주고, 지적받은 사람은 불같이 화를 내거나 부끄러워 숨지 말고, 그 말의 뜻이 무엇인지 배우는 게 원활한 의사소통과 명랑한 사회를 만드는 좋은 방법이 될 것 같습니다. 특히, 언론에서 잘못된 말 쓰는 것 발견하면 댓글을 통해 지적하든지, 기자 메일로 지적하면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