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건강 매체에 속지 말자
1. 오늘 확인해 볼 주제는 <못 믿을 건강정보>입니다. 정보 홍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여러 분야에서 여러 매체들을 통해 '이거 진짜 맞아'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허위 의심 정보를 접하게 되는데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건강 분야는 특히 이런 허위 의심 정보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먼저 짚어볼 이야기는 뭔가요?
- <건강의 모든 것>이라는 건강 매체 기사 제목인데요. <납 중독, "근육 키운다고" 매일 먹은 이 음식 때문이었습니다>입니다. 과연 이 기사가 지목하고 있는 음식은 뭘까요? 바로 황태채입니다. 이 기사는 <황태는 보통 겨울철, 강원도 등의 산간지방에서 영하의 온도와 바람으로 자연 건조됩니다. 이 과정에서 바닷바람, 혹은 외부 오염물질이 황태에 흡착될 수 있는데요, 특히 산업지역과 가까운 해안에서 잡힌 생선일 경우 해수나 대기 중의 중금속(납, 카드뮴 등)에 노출될 위험이 더 큽니다. 또한 저가 수입산 황태의 경우, 가공·건조·유통 과정에서 납과 같은 중금속 검사가 느슨하거나 생략되는 경우가 많아 오히려 국내산보다 더 높은 오염 위험을 가질 수 있습니다.>라고 전합니다.
황태채에 중금속이 얼마나 들어있는지 검사를 했다거나, 신뢰할 수 있는 기관의 검사 결과가 있다거나 하는 등의 근거는 전혀 제시하지 않습니다. 막연히 바람에 말리니까 대기 중의 중금속에 노출될 우려가 크다는 수준인데요. 이런 식으로 기사를 써도 되는지 정말 자괴감이 들 정도입니다.
2. 그래도 언론사에서 내보낸 기사인데요. 뭔가 믿을만한 근거가 있는 것 아닐까요?
- 네 그래야 마땅한데요. 현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해당 매체는 지자체에 정기간행물 등록을 마쳤고요. 자체 홈페이지도 꾸리고 있는데요. 해당 기사를 쓴 기자의 이메일과 매체의 대표 이메일을 통해 기사의 근거를 밝혀달라고 요청을 해봤는데요. 기자 이메일은 없는 주소라고 나오고요. 해당 매체는 며칠째 아무런 응답이 없습니다. 기사에 대해 전혀 책임지지 않는 건데요.
제가 직접 이 기사의 근거가 될 만한 연구들을 찾아봤습니다. 일단 최근에 국내에서 식품으로 인한 납중독 사례가 보고된 게 없습니다. 황태를 말리는 덕장은 강원도 인제군 용대리에 밀집해 있는데요. 강원도 대기 중 납 농도는 기준치 이내로 나타났습니다. 용대리 인근에 눈에 띄는 산업지역도 없고요. 우리나라에선 황태의 재료가 되는 명태가 잡히지 않아서 대부분을 러시아에서 수입하고 있습니다. 오호츠크해 어장에서 잡힌 명태가 주로 수입하고 있는데요. 이곳도 산업지역과는 크게 연관이 없습니다.
시도보건환경연구원과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매년 건어물을 수거해 중금속 오염 여부를 검사하고 있는데요. 식약처 식품안전나라 검색 결과 황태 또는 황태채에서 중금속이 기준치 이상 검출된 사례는 없습니다. 황태채가 납중독을 유발한다는 이 매체의 기사는 "전혀 근거 없음"으로 판정합니다.
3. 그런데 황태가 통풍 환자에게 치명적이라는 이야기도 있다면서요?
- 앞서 말씀드린 매체의 해당 기자는 <"통풍 걱정된다면" 이 음식 끊으세요. 매일 먹다 응급실 갔습니다>라는 기사를 통해 "황태채가 통풍 환자에겐 매우 치명적인 음식"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어 "황태 100g당 퓨린 함량은 약 150~180mg에 달하며, 이는 고등어, 오징어보다도 높은 수치입니다. 이는 WHO 기준상 중~고위험군에 해당하는 수치이며, 통풍 환자 또는 위험군에게는 제한이 필요한 수준"이라고 전합니다.
그렇지만 이 역시 근거가 크게 부족합니다. 황태의 퓨린 함량이 얼마인지 정확하게 측정해 놓은 자료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기사에선 "황태는 대구를 얼리고 건조하는 과정에서 수분이 날아가며 퓨린이 농축됩니다. 생선 그대로 섭취하는 것보다 퓨린 밀도가 더 높아지는 구조입니다."라고 전하는데요. 모든 건조 음식은 수분이 제거되기 때문에 100g당 영상성분 함량이 높아지는 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흰살생선은 전통적인 저퓨린식이요법에서 통풍 환자의 회복 정도에 따라 소량 섭취할 수 있는 음식으로 분류됩니다. 황태채가 통풍 환자에게 치명적인 음식이라는 주장은 과도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질병청 국가건강정보포털에 따르면 "통풍환자에 대한 엄격한 식이요법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라고 합니다. 다양한 요산 강하제가 개발되고 있기 때문인데요. 식이요법으로 낮출 수 있는 혈중 요산 농도가 제한적인 데다, 식이요법을 장기간 지속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워 현재는 통풍 환자들에게 권유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4. 황태가 폐암 위험을 높인다는 기사도 있다고요?
- 같은 매체 같은 기자가 쓴 기사인데요. 제목이 <"폐암 환자들의 공통점" 무심코 매일 먹은 이 음식이었습니다> 이렇습니다. 황태채를 가리켜 "담배보다 더 폐에 해로운 영향을 미치는 음식"이라고 일컫는데요. 이 기사는 "황태는 건조·훈제·염장 과정에서 발암물질이 자연스럽게 생성될 수 있고, 잘못된 보관 상태와 조리 방식이 겹치면 폐 기능에 치명적인 독소를 품게 됩니다."라고 전합니다.
그런데 이 기사도 아무런 근거 없이 황태를 비방합니다. "황태는 가공 과정에서 숯불이나 장작불로 훈연하거나, 열을 이용해 건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s)는 대표적인 발암물질 중 하나로, 특히 벤조피렌(Benzo[a]pyrene)은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지정한 1급 발암물질입니다."라고 보도합니다. 그러나 황태는 숯불, 장작, 훈연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명태 말린 게 북어고, 북어 중에서 겨울바람에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말린 것이 황태입니다.
또 "황태는 특유의 쫄깃한 식감을 위해 염장 처리를 거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사용되는 질산염은 시간이 지나면서 니트로소아민(N-nitroso compounds)이라는 또 다른 강력한 발암물질로 변형될 수 있습니다. 니트로소아민은 특히 호흡기 점막과 폐 조직에 큰 손상을 일으키며, 폐암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암과 관련이 깊습니다."라고 보도하는데 이것도 사실과 다릅니다. 황태는 명태를 세척한 뒤 덕장에 걸어 말리기 때문에 염장 처리를 하지 않습니다.
5. 근거도 없이 멀쩡한 음식을 건강에 좋지 않다고 보도하는 건데요. 선량한 황태 생산자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겠는데요?
- 건강 매체 입장에선 공포심을 유발하는 자극적인 기사를 써서 조회수를 늘리고 광고 매출을 늘리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는 건데요. 선량한 황태 생산자들 입장에선 눈에 피눈물 나는 악성 허위 정보라고 생각할 수 있겠죠. 실제로 이 매체의 기사 내용을 고스란히 베껴서 만든 숏폼 영상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근거도 제대로 밝히지 않는 이런 기사 때문에 생산자들은 매출이 줄어서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고요. 이런 기사를 접하고 공포심 때문에 황태를 피하는 소비자들은 좋은 식재료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기회를 날리게 되는 피해를 입는 거죠. 궁극적으로 이렇게 근거 없는 기사가 난무하게 되면 언론계 전체의 신뢰도 떨어지게 되는 거죠. 굉장히 피해가 큽니다.
문제는 근거 없는 보도를 일삼는 이런 매체들을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다는 점입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황태 생산자 단체가 소송을 하는 건데요. 불량매체들에게 뭔가 좀 큰 깨우침을 주는 계기가 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