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들은 떠나고 머무르나?
'강 건너 꿈 구경' 두 번째 촬영은 4월에 진행했어요. 기나긴 강원도의 겨울이 끝나가는 모습을 관찰하는 게 임무였죠. 겨울잠에서 깨어난 야생동물의 흔적도 찾아보고, 봄을 맞아 우리나라로 돌아온 여름철새인 백로를 관찰했습니다.
새벽같이 출발해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DMZ생명평화동산에서 한상훈 박사님과 촬영팀을 만났습니다. 향로봉 가는 길인 적계로 트레일 구간을 따라갈 계획이었죠. 민통선 안쪽 구간이었지만 촬영팀이 미리 예약을 해주신 덕분에 별다른 어려움 없이 진입할 수 있었습니다. 초5경진은 북한으로 가는 거냐며 으스스하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는데요. 촬영팀 승합차를 타고 산길을 오르고 올랐더니 약간 멀미도 나고 지겹기도 했었나 봐요. 내려서는 기진맥진한 모습을 보여주네요.
촬영팀이 준비해 주신 간식을 먹고 힘을 내 봅니다. 한상훈 박사님과 초5경진 그리고 저는 야생동물 흔적을 발견하기 위해 길을 되짚어 봅니다. 4월 중순을 넘어서고 있었는데 아직도 흙밑에는 두툼하게 한쪽으로 치워놓은 눈이 녹지 않고 쌓여 있더라고요. 고라니와 멧돼지 발자국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촬영팀은 원하는 그림이 나오지 않았는지, 자꾸 왔던 길 다시 갔다가 돌아오라고 하네요. 이른바 '재촬영'이죠. 초5 경진은 재촬영 요청이 있을 때마다 얼굴이 점점 어두워집니다. 슬슬 사춘기가 오기 시작하는 꼬맹이가 이래라저래라 소리를 들으니 부글부글 하나 봐요. ㅎㅎ
그래도 워낙 성정이 착한 초5경진은 폭발하지 않고 침착하게 재촬영에 임합니다. 그렇지만 침울한 표정은 고스란히 드러나는 걸 어떡하죠. 평소에는 궁금한 것도 많고 질문도 많지만 재촬영 몇 번 하더니 어깨가 축 처지면서 발도 끌리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도 멀리 향로봉도 보이고 파란 하늘 아래 깨끗하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서 기분이 좋았네요.
두 번째 촬영은 소양강을 따라 달리는 44번 국도 휴게소에서 했는데요. 번 418 이스트(Bun 418 East)라는 이름의 카페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휴게소였던 걸 알 수 있는데요. 문 닫은 주유소도 있고 식당 자리도 있고 그렇습니다. 이곳은 소양강 물길이 깎아 놓은 절벽 위에 자리 잡고 있어서 낭떠러지 위에 있는 느낌인데요. 카페 뒤편 전망대로 나가면 계곡으로 뻗은 숲이 보입니다. 빽빽한 나무 위에 하얀 백로들이 눈처럼 내려앉아 있어요. 백로 배설물도 흰 눈처럼 쌓여있죠. 해마다 백로들이 찾아와서 번식을 하는 곳입니다.
한 박사님이 고성능 스코프를 설치해 주셔서 백로 둥지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는데요. 백로 알이 신비한 비취색이라서 깜짝 놀랐네요. 백로들은 동남아 지역에서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되면 한국으로 넘어와서 번식을 하고 가을이 되면 다시 월동지로 갑니다. 추위를 피해서겠죠. 백로를 비롯한 물새들은 물가에서 사냥을 하기 때문에 겨울에 강물이 얼어붙으면 생명이 위험할 수 있죠. 그래서 겨울엔 월동지로 떠나는 겁니다.
그렇지만 과천 양재천에는 사계절 백로를 볼 수 있습니다. 경기도가 강원도보다 따뜻하기도 하지만, 지하철역에서 샘솟는 지하수를 모아놨다가 주기적으로 흘려보내기 때문에 양재천이 꽁꽁 얼어붙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죠. 그래서 백로들도 월동지로 날아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번식 장면이 목격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완전히 텃새화된 건지는 자신할 수 없습니다.
과천 양재천엔 눌러앉은 철새들을 볼 수 있습니다. 청둥오리와 흰뺨검둥오리는 겨울 철새인데요. 얘네들은 여름에도 겨울에도 눌러앉아 양재천에서 살아갑니다. 반대로 중대백로, 쇠백로, 물총새는 여름철새인데 겨울이 되어도 어디로 가지 않습니다. 새들의 입장에선 장거리 이동을 하지 않아도 되니 좋은 건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기후가 바뀌었고 그에 따라 생태계도 변화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