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건너 꿈 구경 건너 꿈 구경
2025년 8월 31일. 소양호에 배를 띄웠습니다. 소양호는 소양강에 댐을 지어 만든 거대한 인공호수죠. 저와 초5 경진, 그리고 초3 쌍둥이 친구들과 그의 아빠, 그리고 KBS 촬영팀이 소양호 어촌계의 협조를 받아 어선을 타고 소양호로 나가봤습니다. 자동차를 타고 다리 위를 지나가면서 언뜻 '아 소양호에도 녹조가 끼어있구나'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지만, 실제로 배를 타고 들어가 보니 상황은 굉장히 나빴습니다.
배를 타기 위해 어촌계 선착장으로 내려간 순간 돼지 축사에서 날 것 같은 강력한 악취가 뿜어져 나왔습니다. 냄새의 원인을 찾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찾았습니다. 선착장 한 귀퉁이에 큰 마대를 몇 개 세워놨는데, 그 마대에서 코를 쥐게 만드는 악취가 뿜어져 나왔던 거죠. 마대에는 곤죽이 들어있었고 파란색(청색) 물감이 마대 섬유 틈새로 스며 나왔습니다. 강물 안에서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녹조 제거 장치에서 물을 흡입해 녹조를 걸러내고, 필터에 달라붙은 녹조를 긁어모아 마대에 담는 듯했습니다.
냄새를 뒤로 하고 배에 올라탔는데, 배에 타기 전 바라본 물빛은 초록이었습니다. 풀밭만큼 진한 초록이었죠. 아이들과 함께 나뭇가지로 물을 저어봤는데, 물감 알갱이를 풀어놓은 것처럼 초록색 입자들이 물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이 촬영을 강행해야 하는 것일까 망설여지기도 했습니다. 녹조인 남조류에는 독소가 들어있어 간과 신경계에 문제를 일으킵니다. 일부 국가에선 먹는 물뿐만 아니라 레저용수에 관한 규제가 있을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이 꼬맹이들은 배를 탄다고 엄청나게 들떠있었습니다. 먼 길을 달려왔는데 안 한다고 할 수도 없고 일단 배에 올라탔습니다. 배를 타고 10여분 정도 상류 쪽으로 올라갔는데요. 정말 초록색 물감을 뿌려놓은 듯한 초록 구정물이 끝도 없이 이어졌습니다. 축사 옆에 있는 것 같은 역한 냄새도 끊이지 않았죠.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불편했습니다. 한강 수계의 가장 상류 축에 속하는 소양강인데요. 수질이 정말 말도 안 됩니다. 소양호 한가운데서 채수통에 물을 담아 실험실에 가서 오염도를 측정하는 실험도 해봤습니다. 결과는 보나 마나죠.
소양강은 양반이라고 합니다. 낙동강, 영산강 금강은 엄청난 오염도를 해마다 나타내고 있죠. 녹조라테 물로 농사를 지으면 농작물로 독소가 스며든다고 합니다. 환경연합과 부경대 연구진이 실험을 통해 밝혀냈습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건강에 문제가 없다고 박박 우깁니다. 녹조는 물속에 인과 질소가 많고 수온이 높으면 크게 번식합니다. 그래서 기온이 오르는 늦봄부터 가을까지 강물을 초록으로 만들고, 수온이 낮아지는 겨울에는 위력을 잃는 패턴을 보입니다.
그런데 4대 강 사업으로 강에 보를 쌓아 강물을 가둬 둔 뒤로 이 녹조 문제가 훨씬 더 심각해졌습니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죠. 굳이 환경과학 수질분야 교과서를 들이밀지 않더라도, 속담 수준 또는 상식 수준에서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토건 사업으로 한몫 잡으려던 무리와 그에 부화뇌동한 일부 학자들이 물그릇이 커지면 오염도가 낮아진다느니, 배를 띄워 스크루로 물살을 일으키면 녹조가 사라지느니 따위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서 토목공사를 강행했죠. 그 결과가 이겁니다.
낙동강 유역 주민들은 식수 오염으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취수원을 상류 쪽으로 옮기거나 녹조 오염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물 깊은 쪽으로 옮기면 고통을 줄일 수 있지만 녹조가 심해질 경우엔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가장 확실한 해법은 고인 물을 흐르게 만드는 겁니다. 물이 계속 흐르면 물속 산소 농도가 높아지면서 녹조를 줄일 수 있거든요. 그리고 잔뜩 고여있는 녹조 덩어리들을 바다로 빼낼 수도 있고요. 바뀐 정부가 4대 강 재자연화 정책을 추진한다니 기대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4대 강 사업과 큰 상관없는 소양강댐 상류의 녹조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상류 수계에서 흘러드는 오염물질을 줄이는 방법밖에는 없어 보입니다. 산 꼭대기에서 양배추 농사, 감자 농사짓는다고 비료를 엄청나게 뿌려댑니다. 적정량의 비료는 농사에 필수적이긴 합니다만, 필요 이상으로 많이 뿌린 비료는 빗물에 섞여 강으로 흘러듭니다. 여기에 들어있는 인과 질소를 녹조가 먹고 녹조라테로 변신하는 겁니다. 축산 분뇨도 마찬가지고요.
자연을 보전하고 상수원을 보호해야 하는 곳이라면, 하류 지역에서 걷는 물이용 부담금 등 재원을 이용해 이런 오염물질을 제대로 처리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어렵다면 오염원이 되는 농경과 축산 등을 오염물질이 배출되지 않는 다른 업종으로 전환해 줘야 합니다. 물론 정책적인 지원이 있어야죠. 이런 방식을 '정의로운 전환'이라고 합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존하면서 상수원도 살리고 지역주민들도 함께 번영할 수 있는 '생태관광' 등 제3의 해법을 반드시 찾아야겠습니다.
소양강이 초록이 아닌 파란 하늘빛으로 사철 반짝이는 그런 날이 속히 왔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녹조라테에 배를 띄우지 마세요. 건강에 좋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