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마지막 박물관 포르쉐다. 6월에 처음 벤츠 박물관에 대한 리뷰를 쓰고 5개월이나 지났다. 블로그에 처음 두 박물관에 쓰고 이제야 브런치에 옮겼다. 포르쉐만 브런치에 처음 쓴 글이다. 그래도 결국 세 박물관에 대해서 다 쓰긴 쓰는구나. 게을렀으나 초심을 잃지 않았던 나를 조금 칭찬해 본다.
포르쉐 박물관은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있다. 이쯤 되면 슈투트가르트를 자동차의 도시라 불러도 될 것 같다. 벤츠와 포르쉐 본사가 한 도시에 있다니 말 다 했다. BMW 본사가 있는 뮌헨과 묘한 라이벌 관계가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독일은 도시별로 축구, 맥주, 자동차 등에 얽힌 이야기가 참 많은 것 같다.
두 회사의 박물관 모두 도심과 조금 떨어져 있는데 포르쉐가 살짝 더 멀다. 슈투트가르트 시내에서 출발하려면 독일 지하철(과 기차의 중간쯤)인 'S반'을 타고 가야 한다. 지하철 역과의 거리는 포르쉐 박물관이 더 가까웠다. 벤츠 박물관을 가기 위해서는 지하철을 내려서도 15분은 더 걸었던 기억이 있다.
포르쉐 박물관의 경우 외관은 거대했지만 실내 전시가 다른 두 박물관에 비하면 평범했다. 전시 내용이나 방식이 참 전형적이었다. 자동차들이 시간순을 따르는 당연한 방식으로 진열되어 있었는데, 같은 방식으로 전시한 벤츠가 연출했던 굵직한 스토리라인 같은 건 없었다. 전시장을 빙글빙글 돌 듯이 올라가는 단순한 진행이었다. 자동차나 바이크를 사용해 또 다른 조형물을 만들었던 BMW 같은 번뜩임도 없었다. 깔끔했으나 딱 그 정도인 실내 전시였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평범하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전시되어있는 자동차들이 포르쉐다. 세계 최고의 스포츠카 포르쉐다. 이 부분에서 이야기는 달라진다. 포르쉐를 전시할 박물관이 꼭 화려게 디자인되어야 할까? 어쩌면 포르쉐를 전시하는 데 있어서 잔뜩 의미 부여된 스토리나 화려한 전시는 불필요했을지 모른다. 속도와 기술에 대한 집념이 모여서 만들어진 포르쉐의 자동차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전시장을 압도했다.
영화 대부를 본 적 있는가. 난 본 적 없다. 그렇지만... 그런 영화에 보스로 나올 것만 같은 차다. 356(1948)은 포르쉐라는 자동차 회사 이름을 달고 최초로 세상에 공개된 차라고 한다. 의외로 그 유명한 '딱장벌레 차' 비틀(1938)의 친척 동생 같은 차다. 포르쉐의 창립자 페르디난드 포르쉐가 히틀러의 요구를 받아들여 만들어낸 자동차가 비틀이다. 비틀의 디자인을 떠올려보면 동그란 헤드라이트나 휠 부분이 도드라지는 유선형 디자인이 356과 상당히 유사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특징들은 먼 옛날이야기로만 머물지 않는다. 포르쉐의 상징과도 같은 '911'은 물론이고 비교적 최근 모덴인 SUV '카이엔', 4도어 세단 '파나메라'에도 고스란히 그 아이덴티티가 남아 있다.
앞에서 본 적도 없는 영화 대부를 언급했는데 포르쉐에는 정말 그런 조직(?) 느낌이 있다. 시조인 356부터 최신 모델까지 진짜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박물관에 있다 보면 저 동그란 눈과 굴곡진 라인을 가진 수십대의 포르쉐 가족이 날 노려보는 것 같다. 영화 같은 데서 나오지 않던가. 대형 홀에 딱 들어갔더니 길~쭉 한 테이블 끝에 보스가 앉아 있고 양쪽으로 조직원들이 쫙 앉아 있는 그런 느낌. 포르쉐의 패밀리룩은 그만큼 강력한 DNA를 공유하고 있다.
사실 자동차 디자인에 통일감을 주는 건 힘 좀 쓴다는 회사라면 다 하는 일이다. 하지만 포르쉐만큼이나 끈덕지게 그리고 고집스럽게 아이덴티티를 지켜온 회사는 흔치 않다. 많은 회사들의 경우 시대에 따라 컨셉이 계속 변하거나 BMW의 '키드니 그릴'처럼 한 가지 디자인 요소에 초점을 맞춘다. 반면 포르쉐의 '코드'는 시대를 관통하고 세그먼트를 관통한다. 포르쉐 자동차들의 옆모습을 보면 '이래서 포르쉐구나'싶을만한 클래식한 라인이 있다. 헤드라이트부터 자동차의 모든 곡선 하나하나까지 모든 요소가 포르쉐라는 이름으로 설명된다. 1950년대에도 2010년대에도 그리고 스포츠카든 SUV든 포르쉐는 포르쉐스럽다.
특히 저 검은 배경이 포르쉐를 더 돋보이게 했다. 사진을 찍으면 군더더기 없이 저렇게 포르쉐 특유의 라인만 남는다. 그래서 매번 자동차의 증명사진을 찍어주는 기분이었고 찍는 재미가 있었다. 솔직히 직접 보는 것보다 이렇게 보는 게 더 멋있는 거 같기도 하고...
911 디자인의 변화를 한눈에 보여주는 전시다. 위에서 뭉뚱그려 '라인'이라고 표현했지만 이 그림을 보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알 거라 생각한다. 저기 그려진 스케치들은 50년 이상 쌓인 911의 나이테다. 50년 동안 한 가지 그림만 그린 거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세상에서 가장 편한 디자이너는 911 디자이너다."라는 말도 있다고 한다...ㅎ 그만큼 자동차로로써 포르쉐가 모여주고 싶은 모습이 확고하다는 뜻 이리라.
여기까지 쓰고 나니 살짝 양심이 찔린다. 포르쉐에 대해 얘기하면서 디자인 얘기만 왕창 늘어놓았다. 솔직히 내가 디자인도 모르고 기술도 모르지만 그나마 디자인은 눈에 보이기라도 하기에 아는 척 좀 해보았다. 포르쉐의 성능과 기술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고 싶은데 자신이 없다.
우스갯소리로 독일이 나치 시절에 우주인을 납치해 기술력을 빼왔다는 말이 있다. 영화 '퍼스트 어벤져'나 게임 '울펜슈타인' 역시 그런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지금까지도 독일에 전통 있는 제조 기업들이 많은 것 보면 왜 저런 말이 나왔는지 알 것도 같다. 포르셰 역시 이 설을 뒷받침 하기에 충분한 기업이다. 박물관엔 이렇게 미래미래하고 기술기술스러운 차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저런 머신들은 경주용으로 쓰였을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레이스 중 하나인 르망24에서도 포르쉐는 레전드급이라 들었다. 르망24는 말 그대로 24시간 동안 경주를 하는 경기다. 빠르게 달리는 것뿐만 아니라 끝까지 달릴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그래서 내구레이스라고도 불린다. 포르쉐는 다른 어떤 자동차보다도 르망에서 강했다.
여담이지만 독일에 있을 때 TV로 르망24 생중계를 본 적이 있다. 헬스장에서 러닝 뛰고 있었는데 앞에 TV에서 자동차들이 달리고 있는 거다. 저게 뭘까 했더니 르망... 와 한국에서 보려면 막 유튜브 스트리밍 뒤지고 뒤져서 봐야 하는데 이 곳에서는 그냥 아무 데서나 볼 수 있구나. 신기했다. 물론 그때도 포르쉐 자동차가 1, 2등을 다투고 있었다! 진짜로!
포르쉐의 기술에 대한 이야기는 르망에 대한 것과 저 사진들로 끝내야 할 것 같다. 더 이상은 찾아보고 공부해야 쓸 수 있을 내용이다. 모르는 건 모른다 할 수 있는 용기를 시전 하도록 하겠다. 몰라요~ 그리고 박물관 리뷰니까ㅠㅠ
아쉬워서 뿌리는 포르쉐 사진
앞서 벤츠와 BMW의 박물관에 대해 쓸 때 각각을 사람에 비유했었다. 벤츠 박물관은 모든 것을 갖춘 엄친아, BMW는 자기주장 강한 마이웨이였다. 포르쉐 박물관은 딱 요즘 슈퍼맨 헨리 카빌 느낌이었달까. 포르쉐 356부터 이어져온 그들의 아이덴티티는 슈트를 입었을 때 그의 클래식한 멋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포르쉐가 가진 기술력과 퍼포먼스는 슈퍼맨일 때 그의 근육과 힘을 연상시킨다.
도입부에서 말했든 박물관 자체는 다른 두 곳에 비해 평범하다. 자동차를 있는 그대로 가져다 전시해 놓는 정도만 하고 있는 박물관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포르쉐이기에 박물관을 견학하며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많다. 포르쉐 특유 동그란 눈동자와 아이 컨택을 하다 보면 내 눈도 동그래 지면서 막 빠져 든다. 여기 있는 모든 포르쉐들을 자동차 경주장에 가져다가 엔진 소리를 하나하나 들어보고 싶기도 했다. 자동차라는 것의 성능과 디자인 이 두 가지 방면에서 모두 정수를 뽑아냈던 포르쉐라는 브랜드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보고 싶다면 꼭 방문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