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상선약수 Dec 18. 2020

사노라면

자기 자신과 만나, 다시 사랑하렴. 그 후...

두 달 전, 브런치에 내 제자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글로 썼었다.


https://brunch.co.kr/@jsy1008/25


오늘 저녁을 먹고 주방을 정리한 뒤 책상 앞에 막 앉았을 때였다. 휴대폰이 울리는데 화면에 모르는 전화번호가 떴다.

'이 저녁에 누구지?' 경계심을 갖고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이예요"

제자 A였다.

"고맙습니다. 선생님이 걱정해주신 덕분에 저 나왔어요. 나온 지 2주 정도 되었는데 너무 늦게 연락드려서 죄송합니다"

아.....!! 여전히 깍듯하고 예의 바른 말투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오히려 내가 A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목이 메어, 말을 할 때마다 헛기침을 해야 했다.


A가 나왔다는 것은 이미 제자 B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A의 공판이 있던 날, 결과가 나오자마자 B는 문자를 넣어 주었다.

판결이 나기 며칠 전 피해자 유족과 합의를 한 것이 판결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 같았다. 집행유예로 풀려나게 되었다는 소식에 나 또한 만감이 교차했는데, 부모님과 본인은 오죽했을까.


상실의 큰 고통 속에서 어렵고 힘든 합의를 해준 피해자의 유족,

어린 두 아이의 젊은 아빠에게 집행유예 판결을 내림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 재판부,

외동딸과 외동아들의 비극적 상황에 슬퍼할 틈도 없이 남겨진 어린 손주들을 돌보며 피해자 유족과 합의를 이끌어낸 양가 부모님,

친구가 처한 고통을 자신의 아픔으로 느끼고, 친구를 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자신의 생업도 뒤로한 채 도움이 되는 곳이면 어디라도 달려가던 제자 B를 비롯한 고교 친구들,

탄원서를 써서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하고 A가 다시 일터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준 직장 동료들...

그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누구보다 엄청난 죄책감과 상실감의 무게를 감당하며 쓰러지지 않고 버텨준 제자 A가 대견하고 고맙다.


아내를 떠나보내던 그 힘든 날, 달려가서 손잡아주지 못했던 나는 그저 미안하고 미안할 뿐이었다. 교도소에서 제대로 슬퍼하지도 못한 채 혼자 얼마나 힘들고 두려웠을까.

A가 나온 뒤에도 나는 마음을 애써 붙들었다. A에게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하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 A가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어둠의 터널처럼 느껴졌을 그곳을 빠져나온 지 겨우 2주,

자신의 상처를 돌아보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그 시간을 보내고, 지금 자신의 주변을 살피고 있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힘들면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할 텐데..

이 선생 앞에서는 어린애처럼 하소연도 하고 나약한 모습을 좀 보여도 괜찮은데...

저렇듯 밝고 상냥한 목소리로 되레 걱정하는 나를 안심시키려 한다.

애처로운 것....


구속에서 풀려나 일주일 정도 주변을 정리하며 쉬었다가 이번 주부터 복직하여 출근했다고 한다. 무사히 직장으로 돌아갈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쌍둥이 아이들은 고향에서 부모님이 돌봐주시는데, 갑작스러운 엄마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았지만 지금은 많이 밝아진 상태라고, 주말마다 아이들을 보러 갈 거라고 말할 때는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아내랑 같이 살던 아파트에 혼자 지내는 것이 힘들지 않겠냐고 했더니, 아내와 함께 했던 공간과 추억들이 오히려 자신에게 힘이 되어준다고, 첫사랑을 하는 소년처럼 수줍게 대답했다.


그 순간,

"선생님, 판사가 집행유예 판결을 내리자, **이가 얼마나 서럽게 울던지... 그동안 참았던 울음을 다 토하는 것 같더라고요"

공판 결과를 전해주던 제자 B의 말이 떠올랐다.

퇴근해서 집에 들어설 때마다 A 마음이 어떠할까...

때론 통곡하고, 때론 웃기도 하면서 그렇게 조금씩 무뎌져 갈까나...


우리는 서로 고맙다, 미안하다, 죄송하다는 말을 주고받다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편안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자'는 인사말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내 책상 위에는 애꿎은 휴지만 가득 쌓였다...




많은 분들의 사랑과 도움을 받은 A는 다시 사랑할 수 있겠지요.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참, A가 전화를 끊기 전 저에게 당부의 말을 남겼습니다.

"선생님도 꼭 편안한 얼굴이셔야 합니다"라고요.

끝까지 반듯한 말로 선생 마음을 후벼 파는 고약한 녀석입니다.

아무렴, 제자보다 못한 스승이면 되겠습니까...!



<꽃이 되어 새가 되어>   

                                     나태주


지고 가기 힘겨운 슬픔 있거든 

꽃들에게 맡기고 


부리기도 버거운 아픔 있거든

새들에게 맡긴다


날마다 하루해는 사람들을 비껴서

강물 되어 저만큼 멀어지지만


들판 가득 꽃들은 피어서 붉고

하늘가로 스치는 새들도 본다.


P.S> 브런치에 올렸던 <자기 자신과 만나, 다시 사랑하렴> 글을 읽고, 제자 A를 걱정해주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오늘 A의 전화를 받고, 마음으로 함께 해주신 분들께 기쁜 소식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주위에서 많은 분들이 걱정하고 도와주신 덕분에 A가 버티면서 일어설 용기를 내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표지 사진 출처: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아빠가 돈 버는 기계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