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일지7] 답답함에 가슴을 쥐어 뜯었습니다.
처음부터 가슴을 쥐어 뜯는 자해를 한 것은 아니었다. 두피를 뜯는 정도의 습관은 가지고 있었지만, 이것도 자해라면 자해였다. 피가 날 정도로 잡아 뜯었으니까. 이 습관은 아주 오래 전, 학업 스트레스를 많이 받던 중학생 시절 생겼다. 오른손으로는 샤프를 쥐고 공부를 하고, 왼손으로는 두피를 잡아 뜯어냈다. 이 습관은 지금도 공부를 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심해지곤 한다.
이 오래된 습관이 폭력, 나에 대한 폭력으로 나타나는데는 오랜 잠복기가 있었다. 20대 초 가정 내 불화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있던 시점 나는 참지 못하고 손에 잡히는 물건으로 책상을 내려 치고 벽을 두드렸다. 지금도 친정에 가면 그때의 자국이 남아 있다. 이후 나는 더이상 그 집에 살지 않고 독립했다. 독립을 하며 스트레스 원인이 사라지자 폭력성도 말끔히 사라졌다.
하지만 지난 늦 봄, 이 폭력성은 타자를 향하지 않고 나를 행해 칼 끝을 세웠다. 기억도 나지 않은 일로 스트레스를 받아 한껏 예민해 져 있던 그 순간, 머리를 잡아 뜯던 그 손으로 나는 내 뺨을 내리쳤다. 한번. 두번. 세번. 그러고 나서야 내 손은 멈췄다.
오른 뺨에 실핏줄이 터져 작은 빨간 점이 수 없이 많이 생긴 그 모습을 거울을 통해 보며 나는 살아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점점 더 여기에 중독되어갔다. 죽고싶다는 생각이 떠오르면 이내 내 뺨을 때리는 것이다. 마스크를 쓰던 코로나 시기여서 참 다행이라 생각될 정도로 당시 내 얼굴은 얼룩덜룩 멍자국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 행동은 곧 더 큰 폭력으로 불어났다. 뺨을 치는걸로 부족해 가슴을 치기 시작했다. 왼손, 오른손으로 갈비뼈가 부러져라 가슴을 내리쳐야만 살 수 있겠다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얼굴은 멀끔해 졌지만 내 속은 더 시커멓게 물들어갔다. 샤워 하려 욕실에 들어가 헐벗은 내 모습을 보면서 울기도 참 많이 울었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 울다 울다 지쳐 내가 더이상 가슴을 내려칠 기운조차 없어지자 이제 가슴을 쥐어 뜯기 시작했다.
짧은 손톱으로 끊임 없이 내 가슴을 쥐어 뜯었다. 수 많은 손톱자국이 생기고 피딱지가 앉고 그걸 또다시 잡아 뜯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나는 병원에 갔다. 내 모든 증상의 끝에는 결국 병원만이 답이었다. 병원에 가서 상처를 내보이니 선생님께서는 가정 폭력을 의심했다. 스스로 낸 상처라고 하기엔 너무 넝마 같았으니까.
언제든 힘든 마음이 생기면 예약일과 상관없이 자신을 찾아 오라는 선생님의 말에 나는 드디어 속시원히 울음을 뱉어낼 수 있었다.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 고통을 헤아려줘서? 아니면 내 슬픔에 공감해줘서? 모든 이유를 다 가져다 붙여도 정답을 알 수가 없다.
그렇게 시작된 첫 진료 이후, 수 개월이 흘렀다. 나는 그 사이 점점 좋아지는 중이다. 가슴의 흉터는 옅어졌고 뺨도 때리지 않는다. 오랜 습관인 머리 잡아 뜯는 일만 남아 있다 .
나는 더 좋아질 것이다. 고통으로 삶을 증명하지 않아도 살아있음을 느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