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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세영 Jan 18. 2023

정신과일지6] 작은 소리에도 화들짝 놀란다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다는 사실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알고 있었다. 사춘기 시절에는 길거리에서 들려오는 주변의 일상적인 소음을 견디지 못해 아주 큰 소리로 음악을 듣곤 했다. 오히려 내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소음이라 느껴질 정도로 큰 소리로 음악을 틀어서 주위의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게 만들었었다.


잠결에도 많은 소리가 들려와 힘들었다. 다시 말하자면 작은 소리에도 잠들지 못했고, 겨우 잠이 들었어도 작은 소리에 깨어나는 사람이다. 벽일 나가는 아빠는 늘 출근 전에 모두의 방에 들러 자는 얼굴을 보고 나갔는데, 나는 늘 그 조심히 방문 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잠을 깨곤 했다. 냉장고에서 나는 소리에 잠을 깨고, 거실에 위치한 스위치를 눌러 불 끄는 소리에도 심장이 심하게 두근거리며 잠을 깨곤 했다. 그리고 잠을 자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분노하곤 했다. 왜 소리를 내서 혹은 소리가 나서 내 잠을 깨우냐며 괴로워했다.


소리에 민감하다보니 잠을 잘 못자는 문제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불편함이 생겼다. 바로 쉽게 놀라는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이 통화하는 소리에 놀라 비명이 "악"하고 나오기도 하고, 가게문 열고 손님이 들어오는 소리에도 놀라 "꺅"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노크 소리에 화들짝 놀라 소리 지르는 일은 일상다반사였다.  내가 잘 놀라는 것을 알아 주위 사람들이 노크를 하고 방에 들어오는 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그 노크소리에 놀라 소리를 지르곤 했다. 이런 반응에 상처 받은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절 할 수 없었다. 불편했다. 불편하고 언제 소리가 들려올지 몰라서 불안했다. 언제나 조금 다급하게 뛰는 심장은 이제 덤덤해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다 집에 혼자 못있는 불안증이 생기면서 작은 소리에 더욱 민감해지기 시작했다. 세상 모든 소리가 귀에 들어오며 내 불안을 가중시켰다.


'지금 저 소리 뭐지? 방에 누가 있는건가?', '왜 저런 소리가 나는거지?', '이 집에 지금 나 혼자인데 저쪽에서 소리가 들렸어'


일상에서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소리에도 이렇게 반응하다보니 병은 더 깊어질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그렇게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소리에 놀라고, 민감한 것도 병이란다. 약을 처방 받았고, 나는 더이상 잠결에 들리는 소리에 깨지 않는다. 아니 깨더라도 이전처럼 놀라서 심장이 두근거리거나 잠이 깼다는 사실이 짜증과 울음이 나지 않는다. 잠을 깨더라도 이내 곧 다시 잠들 수 있고, 짜증이 나는 상황 자체가 생기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소음에 놀라는 일도 확연히 줄어들었다. 아직 노크 소리에 놀라고, 불쑥 찾아오는 손님의 인사소리에 내적 비명을 지르긴 하지만 이전만큼 심장이 주저 앉는 느낌을 동반하지는 않는다. 그냥 심장이 줄넘기 잠깐 한 정도랄까.


나는 이렇게 평온한 삶을 되찾아가고 있다. 내 증상이 얼마나 심각했던건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병을 치료하기 위해 약을 먹고, 시간을 할애하면서 분명히 삶의 질이 올라가고 있다고 느낀다. 그리고 알려주고 싶다. 나와 비슷한 상황으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다들 주저 하지 말고 치료를 받길 권한다. 우리는 유별나거나 유난 떠는 것이 아니라 아픈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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