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 이 사람 곁이라면 아이를 낳아도 괜찮겠다
나는 아이와의 거리가 아주 먼 사람이었다.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개인적인 애정도 부족도 있을 테지만, 가족을 만드는데에 자식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부모가 어떤 책임을 지게 되느지 지독히 느끼며 자란 영향도 크다. 부모님의 사랑을 굉장히 많이 받고 자랐지만, 아이가 성장하는데에는 부모 말고 그 주위의 영향도 큰 법이다.
나는 맏딸과 맏아들이 결혼해서 낳은 첫 딸이다. 덕분에 밑으로 동생들이 줄줄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이들과 노는 것이 힘들었고 지쳤고 싫었다. 내가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웠고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것 역시 짐이었다. 더욱이 아들을 더 위하는 집안에서 아들들 위 큰 딸로 사는 일은 너무나 힘들었다. 남아선호사상이 심했던 조모의 영향이 나에게 닿았을 땐, 나와 동생들의 거리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멀어져 버렸다.
사춘기가 오던 중학교 시절부터 나는 동생들이 집에 오면 방문을 걸어 잠구고 나가지 않았다. 아들이라는 이유로 더 좋은 대접 받는 꼴이 참 보기 싫었다. 더욱이 딸만 둘 낳은 우리 엄마가 죄인이 되는 그 모습 역시 보기 어려웠다. 사춘기가 조금 지날 무렵부터는 잘못한것 하나 없는 엄마가 저런 대우를 받는 것이 분해서 오히려 방 밖으로 나서서 엄마의 방패이자 창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가족 구성원 사이에서 이단아 혹은 싸남쟁이로 컸다. 지극히 사랑하는 내 부모를 지키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었다.
또한 나는 아이를 낳는데 있어서 여자가 포기해야 하는 것들, 잃는 것들이 많음을 지나치게 일찍 알아채버렸다. 임신 후 여성의 신체 변화가 어떤 식으로 일어나는지, 출산 과정에서 산모가 어떤 것들을 당하는지, 출산 후 회복되지 못한 몸으로 얼마나 많은 고통과 인내를 감내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아이를 낳았다면 오히려 할 만 하다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다 아는 상태에서 그 길을 걸으려 하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자식을 낳을 자신이 없었다. 내가 혹여나 나도 모르게 아들을 더 위하는 사람이 될까봐 혹은 딸만 지나치게 원하는 사람이 될까봐 두려웠다. 또한 내 가족이 내 자녀에게 나와 같은 아픔을 주게 될까봐 걱정되었다. 내가 나를 잃어버리게 될까봐 무서웠다. 그래서 나는 아이를 포기하고 살았다.
이런 내가 아이 낳기를 결심한 배경에는 옆지기의 지대한 사랑이 있었다. 옆지기는 아이들을 매우 사랑하는 사람이다. 가게에 오는 아이들의 모습만 봐도 미소가 피어오르고 모든 아이들에게 귀엽다며 인사를 건네는 그런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내가 아이를 원치 않는다는 것은 놀라움으로 혹은 불쾌함으로 다가갈수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두려움을 깨고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고 노력했다. 옆지기는 임신 후 여자의 몸과 마음이 어떻게 얼만큼 변하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알고자 했다. 내가 말하는 것을 경청하고 변화 할 수밖에 없는 과정에 대해 나만큼이나 고민하고 슬퍼했다. 그리고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 나섰다. 나의 몸과 마음이 변화할 것에 대비한 것이다. 제일 좋다는 튼살크림을 찾아주기도 하고, 출산 후 다닐 마사지샵을 서칭하기도 했다. 지금 당장 아이를 가진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옆지기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기에서 나의 마음의 문은 1차 잠금해제 되었다.
두번째로 빗장이 열리게 된 계기는 그가 아이 양육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 대화 하던 중에 생겼다. 옆지기는 자신이 자란 방식이 100퍼센트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이 맞고 자랐다고 해서 우리도 아이를 폭력으로 가르쳐야 한다고 말하지 않고, 대화로 풀어나가길 원한다. 모든 일에 있어서 대화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가 부러웠고 한편으로는 이 사람이 내 옆에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빗장은 그의 말 한마디, 눈빛 하나에 와장창 깨부숴졌다. 옆지기는 가족 구성원에 아이가 있음으로 더 행복해질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이다. 이 말을 하는 그의 눈빛에 확신의 빛이 가득 차 있었고 목소리는 단단하고 달콤했다. 이 사람 곁이라면 내가 아이를 낳음으로 인해 더 행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전해져왔다.
뭐, 결국 우리는 아직까지는 아이가 없지만 언제나 열린마음으로 아이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더 행복해 질 그날을 그리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