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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세영 Apr 02. 2023

정신과 일지] 잠들 수 있다

잠들지 못할 것을 알았기에 밤이 되는 것이 늘 두려웠다. 말 그대로 나는 아무리 피곤해도 잠드는 일이 쉽지 않았다. 몸과 정신을 아무리 혹사시켜도 잠들지 못했다. 자기 위해 숫자도 세어보고 asmr도 들어보고 따뜻한 우유도 마셔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나는 불면증이었다. 지독히도 잠에 들지 못하고 잠들지 못한 내 자신에게 화가나고, 그래서 더 예민해지고 피곤하고 삶이 괴로웠다. 머리만 대면 잠드는 옆지기가 참 부러우면서도 미웠다. 나는 이렇게 잠을 못자고 있는데 당신이라도 잘 자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나를 내버려두고 어떻게 매일 그렇게 꿀잠을 잘 수 있냐는 양가감정이 들었다.


잠에 들더라도 금방 깨어났다. 뭐때문인지 나는 참 많이 놀랐다. 소리가 들리면 소리때문에 놀라 깬다 하고, 불빛이 들어오면 불빛에 놀라 깬다지만 나는 그냥 놀랐다. 잠에 들려는 그 순간 갑자기 화들짝 놀라 잠이 홀랑 달아나버린다. 왜 그런거 있지 않은가. 자다가 뚝. 떨어지는 느낌. 내가 놀라는 느낌은 이 놀람과 확연히 달랐다. 갑자기 넘어지거나 떨어지는 느낌은 그 느낌대로 따로 들었다. 그리고 놀라는 것은 이것과는 다르게 정말 누군가 나를 놀래킨 것 처럼 심장이 빠르게 두근두근거리고 일부러 날 깨우려는 느낌이다.


더욱이 심할때는 공포심에 사로잡혀 잠에 들 수 없었다. 누군가 나를 노리고 있다는 불안감, 이 집에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있을 것만 같은 느낌, 내가 잠들면 나를 해칠것 같다는 두려움까지. 나는 온갖 공포에 휩쌓여 눈을 감지도 눈을 뜨지도 못했다. 심한 날에는 환청까지 들려왔다. 도대체 누구냐고 소리치면서 방문 밖으로 나서면 정막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 날이면 나는 내가 무서워서 더더욱 잠들 수 없었다.


잠을 자면 악몽의 연속이었다. 나를 죽이러 오는 사람을 피해 밤새도록 달리고 숨고 피하기를 반복한다. 그러다 내가 죽기도 하고, 너를 죽이기도 했다. 그 감정을 고스란히 가진채 나는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하루 시작부터 기분이 더럽고 일진이 사납다.


처음에는 수면영양제였다. 그 다음은 수면유도제, 그리고 수면제까지. 나는 자기 위해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수면제를 먹으면 마치 강제로 로그아웃 시킨 것 처럼 불쾌하다. 수면에도 단계가 있다는데 그 단계를 모조리 건너 뛰고 갑자기 모든 신경계가 전원 오프를 시킨 기분이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도 개운하지 않다. 아무리 잠을 잤더라도 늘 피곤했다. 언제쯤이야 나는 편하게 남들처럼 잠을 잘 수 있을까 울며 지새운 밤도 여러 날이었다.




이런 내가 요즘 잠을 참 잘 잔다. 악몽을 꾸지도 않는다. 놀라지도 않고, 잠에서 깨도 다시 쉽게 잠든다. 이제서야 조금 사람 사는 것 같다. 내가 이렇게 잠이 많은 사람인 것 역시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다. 아니 사실 알고 있었다. 나는 참 잠이 많은 사람이었다. 어린시절, 일요일 아침에 하는 텔레비젼 프로그램 '동물농장'을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제시간에 일어나질 못해서 늘 못보곤 했으니 말이다. 내가 잠을 자지 못한것은 비단 우울증 때문만은 아니었다. 우울, 불안, 신경과민 그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를 잠재우지 않았다.


잠을 잘 자니 피곤하지 않아 하루 일상이 더 긍정적이게 된 것도 사실이다. 반대로 말하면 나는 잠들지 못해 우울했고, 우울해서 잠들지 못하는 뫼비우스의 띠에 갇혀 있던 것이다. 그 고리를 이제 끊어낸 것이다.


이제 나를 우울하게 만든 일도, 불안하게 만든 일도, 과민해지게 만든 일도 다 이겨내고 있는 중이다. 여전히 남들보단 우울하고 부정적이고 극단적이고 자해도 하지만 나 스스로 내가 참 많이 좋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이겨낼 수 있다. 길고 길었던 터널의 끝, 한줄기 빛이 저 멀리에서 아스라이 피어오르고 있다. 나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걷고 또 걷고 결국은 그 빛 한가운데에 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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