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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세영 Mar 22. 2023

정신과일지] 헌혈하러 갔다가 퇴짜 맞았다.

 내가 나온 대학은 졸업 요건에 봉사 시간 60시간 이수가 있었다. 다들 이 봉사 시간을 이수 하기 위해 다양한 곳을 찾아가 봉사를 하곤 했다. 핑계처럼 들릴 수도 있으나, 나는 정말로 봉사를 위한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전공으로 가득 채운 시간표와, 저녁시간 이후에 진행되는 특별수업, 그리고 연극과 아르바이트까지 몸이 열개라도 부족할 만큼 하루를 쪼개 살았다. 때문에 나는 헌혈을 선택했다. 헌혈 1회에 4시간 봉사 시간이 인정되니 15번의 헌혈을 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헌혈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혈압이 낮거나 높아도 안되고, 식사를 안하고 와도 안되고 심지어 전날과 당일에 설사를 해서도 안됬다. 그야말로 최상의 컨디션과 최상의 건강상태일 때만 헌혈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여성일 경우에는 한달에 일주일 가량 생리 중일 때 역시 헌혈이 불가능했다. 


 누군가는 이렇게 까다로운 과정이 헌혈에 대한 인식을 부정적으로 만드는 것이라 비난의 소리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의학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이 과정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검사를 진행한다는 점에서 안심도 되고, 개인적으로도 오히려 좋았다. 앞서 말했듯, 나는 대학 시절을 매우 열정적으로 살아 냈다. 그 과정에서 건강을 놓치기 쉬운 환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헌혈을 하기 위해서라도 건강 관리를 했다. 그러니 헌혈도 하고 건강도 챙기는 일석이조였다. 


그렇게 나는 대학시절 동안 60시간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횟수의 헌혈을 했다. 사회에 나와서도 헌혈의 끈을 놓지 않고 꾸준히 헌혈을 해왔다. 정신과 약을 먹기 전까진. 마음이 무너지고 속이 타들어갈 그 때에도 나는 헌혈을 했다. 오히려 혈관을 타고 나오는 붉은 피를 보며 살아 있음을 느꼈다. 아직 내 몸에 붉은 피가 흐르는 구나 안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신과 약을 복용한 이후 나는 단 한번도 헌혈을 하지 못했다. 약을 복용하면서 몸과 정신이 이처럼 개운한 적이 없을 정도로 맑고 밝아 졌고, 심지어 정신과 선생님께 헌혈을 해도 된다는 허락(?)까지 받았지만 적십자의 벽은 높았다. 아무리 병원에서 헌혈을 해도 되는 약품이라고 했더라도, 약의 갯수가 적지 않고 또한 그냥 약을 복용하는 것 자체가 헌혈이 불가능 하다는 설명이었다. 


결국 나는 지금 일년 쯤 헌혈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는 중국에 교환학생으로 나가 있던 무헌혈 4개월의 기록을 아득히 넘어 선 것이다.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니 혈액이 늘 우수한 상태로 공급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먼저 떠올려 본다. 그리고 나 역시도 더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혈액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조그만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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