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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세영 Feb 26. 2023

정신과 일지10] 손톱을 잘랐다.

어린시절부터 손톱을 자르지 못했다. 어린 시절 생긴 손톱 물어뜯는 버릇 때문이기도 했지만, 손 끝에 닿는 손톱깍이의 감촉을 견딜 수가 없었다. 발톱은 잘만 잘라 내면서 같은 행위를 손톱에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 했다.  '또각'거리는 소리도 소름끼쳤다. 게다라 잘라낸 손톱의 이질감은 예민한 나에게 지독히도 생경했다. 손톱을 잘라 낸 뒤, 손끝에 남은 그 감촉을 없애기 위해 더더욱 손톱을 물어 뜯었다. 그렇게 나는  손톱깍이를 사용하지 않아 왔다. 20대 초반에 네일아트를 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손톱을 길게 기른 적이 있다. 이 때에도 손톱깍이는 사용하지 못했다. 길게 자라난 손톱을 자르기 위해서는 손톱깍이가 아닌 네일파일을 이용했다. 손톱을 잘라 내는 것이 아닌 갈아 냈다. 물론 이 역시 오래 가지 못했다. 그렇게 잠시간의 긴 손톱을 뒤로 하고 나는 다시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약을 복용한지 수 개월이 흘렀을 무렵, 나는 문득 손톱이 자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늘 손톱을 물어 뜯던 내가 특별히 신경 쓴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습관을 고친 것이다. 어쩐지 나는 2mm가량 자라난 손톱만큼 내 병이 치료된 기분을 느꼈다. 고작 손톱 하나에 위안 받는 내 모습이 우습게 느껴지면서도 기특했다. 오랜만에 네일파일을 샀다. 샤워 한 후, 손톱이 조금 부드러워졌을 때, 나는 네일파일을 이용해 손톱을 조심스럽게 갈아 냈다. 왼손 엄지 손가락부터 새끼 손가락까지. 다시 오른손 엄지 손가락부터 새끼손가락 까지. 열 손가락의 손톱을 모두 갈아내고 나니 해가 저물었다. 네일파일을 이용해 손톱을 짧게 만드는 일은 시간이 필요하다. 손가락 하를 갈아내는 것에만 수십번의 움직임이 요구된다. 뒷처리 하는 것도 영 번거롭다. 내 눈이 차마 보지 못하는  손톱 가루가 방안에 떠다닐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손톱깍이를 사용할 용기가 아직 생기지 않았었기에.  


시간은 언제나처럼 묵묵히 흘러갔고 그리고 오늘, 나는 드디어 손톱깍이를 손에 들었다. 따스해진 날씨 만큼이나 내 마음을 꽁꽁 얼린 얼음도 조금 녹아내린 것인지 어쩐지 용기가 샘솟았다.  햇살이 잘 드는 곳을 찾아 숨을 크게 한번 들이 쉬고, 손에 손톱깍이를 들었다. 약간의 시간이 흔 뒤에야 손 끝에 손톱깍이를 댈 수 있었다.


'또각'


소리를 내며 드디어 손톱깍이로 첫 손톱을 잘라내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또각, 또각'


나는 열 손가락을 모두 잘라 냈다. 물어 뜯은 것도, 갈아낸 것도 아닌 잘라낸 것이다.


타이핑을 하는 지금도 손끝 감각이 생경하긴 하다. 이 이질감이 즐겁다. 단단한 씨앗 속에서 영 싹트지 못했던 내 새싹이 드디어 그 머리 끝을 살풋 내보인 기분이다. 나는 오래 웅크렸던 만큼 더 크게 자라날 것이다. 오늘의 손톱깍이는 그 첫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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