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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세영 Apr 16. 2023

정신과일지] 사람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MBTI 검사 해보신적 있으신가요? 나 역시 MBTI 검사를 해보았다. 유행이 시작되기 한참 전인 10여년 전, 인터넷 서칭을 하다 우연히 알게 되어 해본 적이 있다. 당시 내 검사 결과는 INFJ. 그때 당시에는 그렇구나 정도로 넘어갔다. 이후 몇해 전 MBTI가 급물살을 타며 인기몰이를 하던 때, 다시 한번 해보았다. 검사 결과는 똑같았다. INFJ. 각각의 알파벳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해서 조금 더 알게 되면서 공감되지 않는 결과도 있지만,  내가 I  성향이라는 사실에는 일말의 의심도 없었다.  사람들을 만나며 에너지를 얻는 E 성향을 이해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나는 사람 만나는 일이 힘들었다.


'사람을 만난다'는 말은 관계를 맺고 상호 교류하는 것 뿐만 아니라 말 그대로 정말 사람을 마주하는 것을 뜻한다. 나는 사람이 근처에 있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걸어다니면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베는 듯 날카롭게 느껴졌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여러 소리들이 고막을 찢을 듯이 강렬했다. 나를 스쳐가는 사람들에게서도 이정도 시달림을 느끼는 정도였으니 누군가와 교류하는 일은 더 힘들었음은 당연지사이다.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이 내뿜는 수많은 언어적, 비언어적 정보들이 내겐 폭력이었다.


그래서 나는 고립을 택했다. 외출 할때면 시선은 바닥을 향하고, 귀에는 이어폰을 꽂았다. 최대한 외출을 피했고, 꼭 나가야 하는 일에만 외출을 감행했다. 집안에서도 식구들과 함께 하기보단 홀로 암막커튼 꼭꼭 닫아 둔 컴컴한 방에 스스로를 가두었다. 수백 수천개의 무의미한 시간이 그렇게 흘러갔다.


나는 이게 병이라고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그냥 내 성향이 그런 것일 뿐 나는 문제 없다고 생각했다. 지나가는 사람을 향해 이유 없는 살의를 느껴서야 나는 내가 잘못됬음을 자각했다. 처음에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싫었다. 나를 쳐다보는 시선도, 그들이 내는 소리도 그냥 마냥 힘들었다. 이 감정은 내 속의 부정적인 기운을 먹고 자라서 이내 곧 그들을 향한 살의로 변했다.


'왜 나를 저렇게 쳐다봐.'

'눈을 왜 저따위로 뜨고 지나가.'

'왜 내 옆에서 통화를 하는거야.'

'저런 행동을 하다니, 정말이지 머리를 후려치고 싶군.'

'그냥 다 죽었음 좋겠다.' 


매일 같이 나도 죽고 너희도 다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득차서야 나는 내 병을 인정했다. 나는 정상이 아니다. 이건 절대로 내향적인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내 병을 '성향'이라고 더이상 우길 수 없게 되었다.




질병코드조차 처방전에 적히지 않는 그런 병이라 진단받았다. 몇 개의 약을 처방받고 상담을 받았다. 더이상 나를 외면하지 않고 직시 할 수 있게 되었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약을 복용하고, 규칙적으로 잠을 잔다. 낮에는 되도록이면 방에 처박혀 가만히 누워 있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처음 약을 복용 할 당시만 해도 여전히 나는 사람들이 싫었고 그래서 외출이 힘들었다. 하루 외출을 하고 들어오면 삼일은 집에 처박혀 있어야 했고, 산책을 한 번 가려 해도 산책로 까지 가면서 마주하는 사람과 사람들이 만들어낸 소음에 괴로워 이어폰을 뺄 수 없었다. 하지만 산책도, 치료도 멈추지 않았다. 내가 좋아지는 것을 느끼지도 못하며 평생 나는 병신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에 떨기도 했다. 당시에는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도 몰랐다. 그러던 어느날  그냥 갑자기 깨달았다.


더이상 이어폰을 꽂지 않고도 돌아다닐 수 있다. 가방에서 언제 이어폰을 꺼냈는지도 기억이 가물가물 했다. 오랜만에 꺼내 들은 무선 이어폰은 충전조차 되지 않은 완전 방전 상태였다. 더욱이 그 사실을 알아차린 곳은 다름아닌 수원역 안이였다. 쇼핑몰과 기차역이 같이 있어 늘 사람들이 북적이는 그곳에 나는 내 두발로 서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머리를 부숴버리겠다는 생각도 안하고, 흘러가는 구름을 보면서 죽고싶다는 생각도 안하며 그냥 여느 사람처럼 그렇게 그들 속에 섞여 서있었다.


내가 언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지 떠올려 보았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일부러 하는거냐며 의사 선생님 앞에서 펑펑 울던 내가 아지랑이처럼 사라졌다. 지나가는 아주머니가 깔깔 웃으며 통화를 하는 모습을 봐도 별 생각이 들지 않고, 나를 빤히 쳐다보고 가는 어린아이를 봐도 싱긋 웃어줄 수 있게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내 병은 치료 중이다. 약을 끊으면 다시 과거로 돌아갈까봐 두려워하고, 약 없이는 잠들지 못할까봐 불안하다. 하지만 괴롭지 않다. 사람은 서로 기대 있기에 사람(人)이라는 사실을 이제서야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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