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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세영 Nov 03. 2023

중드에 빠지니 뽀뽀가 하고 싶어져

중국어 실력을 높히려면 중드를 보세요. 두번 보세요.

중문과를 나와 석사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어를 잘 하지 못하는 편인데, 당장 얼마 뒤 부터 실전에 투입되게 생겼다. 정확히 말하면 중국어가 혀끝에서 맴돌고 입 밖으로 안나온달까... 다 알아듣고 다 읽을 줄 아는데 말할줄을 모르니 중국어를 할 줄 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실전 회화가 필요한 상황이니 급한대로 중국 드라마를 찾아 보기 시작했다. 뉴스를 보면 더 좋겠지만 솔직히 뉴스는 재미 없잖아.


 첫 드라마는 '겨우,서른'. 세 여성의 상하이 생활기를 담은 삼인삼색의 드라마로 예전에 누군가 매우 재미있다고 추천한 것이 떠올라 맨 첫 드라마로 선정했다. 추천 받은 만큼 정말 재미있는 드라마였다. 하지만 40부작이 넘는 장편극은 역시나 쉽지 않았다. 더욱이 나는 영상보다 텍스트가 익숙하고, 드라마 보는 것은 바보 상자 앞에 앉아 멍하니 보내는 시간 낭비라 여겼으니 말이다. 그래서 결론은 다른 사람의 리뷰를 찾아 봤다. 십 몇화 정도 까지 보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블로그 리뷰를 통해 결말까지 완주했다. 중국어 말하기 실력은 커녕 듣기 조차 훈련 되지 않았다. 하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 없지 않은가. 중국 드라마에 흥미가 생겼다는데 의의를 두자고 마음 먹고, 다음 드라마를 찾았다.


두번째로 본 드라마는 '이지파 생활'이다. 넷플릭스에 추천 드라마로 뜨길래 보기 시작했는데, 첫 화부터 결혼을 닥달하는 엄마의 강압적인 모습에 조금 낯설고 불편했지만 여자 주인공을 맡은 '친란'이 너무 아름다웠고, 중국어 발음과 톤도 매우 우아해서 보기로 결심했다. 무료하게 앉아 시간 떼우면서 화면 보는 일은 내겐 지루하다는걸 깨닫고 이번엔 작전을 바꾸었다. 지루하기로 따지면 우열을 다룰 수 없는 유산소 운동 중에 드라마를 보기로 한 것이다. 요즘 헬스장에는 모든 기구에 핸드폰 거치대가 설치되어 있으니, 집보다 더 편리하게 영상을 볼 수 있었고 작전은 크게 성공했다. 지루함 더하기 지루함이 즐거움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영상을 보느라 유산소 운동이 힘든줄도 모르고 한시간 훌쩍 넘게 운동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30부작이 조금 넘는 드라마를 다 보고 나니 말문이 트이기 시작했다. 대사를 듣고 중얼중얼 따라 한두마디씩 하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말문이 트이기 시작하니 이 공부법이 내게 효과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또 다른 드라마를 찾게 되었다. 전 작 '이지파 생활'이 여자가 12살 많은 드라마였으니 이번엔 남자가 10살 많은 '친애적, 열애적'으로 결정했다. CTF라는 생소한 소재에 시작은 좀 어려웠으나 보면 볼 수록 남자주인공에게 내 남자의 향기가 뭍어나 단숨에 끝까지 보게 되었다. 남자주인공이 정말로 내 옆지기를 똑 닮았다. 물론 옆지기가 좀 더 뚱뚱하지만, 표정이나 말투, 연애에 서툴러 쑥스러워 하는 모습, 자신의 일에 열정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모습 등 보면 볼 수록 옆지기를 꼭 닮아 더 즐겁게 볼 수 있었다. 이 세 드라마까지 보고 나니 중국어 말하기에 자신감이 붙어 한국어로 해도 되는 상황에 중국어를 쓰기 시작했다.


이 세 드라마를 보고 나니 주변에서 내 중국어 억양이 남방 사람 같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중국 남부는 여행으로 몇 번 가본게 다인데, 오히려 베이징에서 잠깐이나마 유학을 했던 내가 이런 말을 들을 줄이야. 앞서 본 세 드라마 모두 상해가 배경이라 그런건가보다 하는 생각에 상하이가 배경이 아닌 드라마를 찾았다. 결론만 말하자면 역시나 남방이 배경인 드라마지만 상하이가 아니라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 일단 시청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본 드라마 중 제일 짧은 '치아문 ,난난적소시광'이다. 24부작으로 한국 드라마보다는 길지만 중국 드라마 치곤 비교적 짧은 회차도 마음에 들었다. 주인공이 대학생, 혹은 사회 초년생이라는 점도 가산점을 받은 부분 중 하나이다. 좀 더 요즘 내 또래들이 말하는 방식에 대해 배우고 싶었는데, 드라마 만한 것이 없다.


아. 너무 중국 드라마 소개에 치중되었는데 글 제목을 왜 뽀뽀가 하고 싶다고 지었는지에 대해 잠시나마 언급을 해야 할 것 같다. 내가 본 4편의 드라마 모두 연애물이다. 근 10년 연애 했고, 같이 살기까지 했으니 이제 설렘보단 편안함이 더 커진 나와 옆지기의 관계에 불만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연애 하기 전 서로 호감이 생기는 과정과 점점 빠져드는 단계 그리고 연인이 되어서 잔뜩 간지러운 시간들을 보내는 주인공들을 보니 우리의 그 시절이 떠오르며 어쩐지 연애 세포가 깨어나는 기분이랄까. 덧붙여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주인공들이 뽀뽀세례를 날리는 모습을 보자니 나도 질 수 없다는 생각까지 더해졌다.


덕분에 요즘 나와 옆지기는 얼굴만 보면 뽀뽀하기 바쁘다. 처음엔 쑥스럽다고 이게 무슨 짓이냐며 호통 아닌 호통 치던 옆지기도 이젠 포기했는지 내 장단에 맞춰 뽀뽀 세례를 퍼붓는다. 이거야 말로 일석이조 아닌가. 중국어 실력도 높히고 애정 전선에도 불을 지폈으니. 중드. 처음이 어렵지 빠지면 헤어나오기 어렵다. 여러 의미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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