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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세영 Jan 10. 2024

미끄럼 주의

지난 여름, 계단에서 대차게 미끌어졌다. 전적으로 내 탓이었다.


마른 하늘 보기 힘들던 장마철, 빗물에 운동화가 젖는 것이 싫어 크록스를 신고 나왔다. 맨발에 크록스를 신으면 발이 홀딱 젖어도 금방 마른다는 이유였다. 물론 떡집이나 학교에 도착해서는 주섬주섬 양말을 꺼내 신긴 했지만, 크록스를 운동화로 갈아 신지는 않았다. 그 상태로 퇴근 길에 올랐다. 퇴근 종이 땡 울리면 부지런히 걸어야 한다. 버스 시간이 퇴근 시간과 거의 맞물리기 때문에 조금만 늦어도 한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버스 정류장까지의 길은 걸어서 약 10분. 학교 정문을 나서면 바로 버스 정류장이기 때문에 내가 걷는 그 10분 중 대다수는 교내이다. 매일 걷는 익숙한 길이라고 방심했다.


그 날은 퇴근 시간에 옆지기의 연락까지 겹쳤다. 급한 연락이라 1분 1초가 아까워 나는 발걸음을 옮기며 메신저를 보내기 위해 손가락도 움직였다. 비까지 부슬 부슬 오던 날이었으니 나는 우산을 턱과 어깨로 받치고 손으로는 메신저를 보내고 눈도 핸드폰에 고정 한 채 발걸음만이 익숙한 그 길을 내달리고 있었다.

 

그 순간, 눈 앞에 별이 반짝였다. 그야말로 스턴 상태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계단에서 대차게 미끌어져 자빠져 있었다. 우산은 뒤집어져서 계단 위에 나뒹굴고 있고, 핸드폰은 저편에서 비를 맞으며 옆지기의 연락이 도착했음을 열렬히 알리고 있었다. 엉덩이 위, 허리 아래 그 어디쯤에 상상도 못할 고통이 퍼져 나가고 살짝 부딛힌 뒷통수가 아려왔다. 물리적 고통이 너무 심해 사실 정신적으로는 창피하다거나 이 상황이 부끄럽다는 것을 인지하지도 못했다. 한참을 빗속에 주저 앉아 있다 겨우 정신을 붙잡고 살살 일어났다. 가장 세게 부딛힌 엉덩이 윗쪽은 살점이 떨어져 나간 것 처럼 아파왔지만 나는 달려야만 했다. 버스를 놓치면 홀딱 젖고 아픈 이 몸으로 한시간을 더 기다려야만 한다.


축축하고 지치고 아픈 몸을 이끌고 나는 겨우 버스에 올라탔다. 엉덩이가 미친듯이 쑤셔 왔지만 눈물보단 웃음이 나왔다. 사람이 너무 아프면 웃는다는걸 그때 처음 알았다. 나는 그 엉덩이를 하고 마라탕을 먹었다. 이런 재수 없는 일이 있었으니 먹는걸로 풀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엉덩이가 화끈거리는 것인지 마라탕 먹은 속이 화끈거리는 것인지 구분도 안가는 채로 긴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당일은 괜찮았다. 팬티까지 홀랑 벗고 본 내 엉덩이는 살색이었고, 그렇게 부풀어 오른 느낌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고통은 자정이 넘어서 시작됬다. 자정이 조금 넘어간 그 시점부터 엉덩이가 불타는 느낌이 들더니 똑바로 누워 있지도 못하겠고, 심지어 그 부분에 잠옷의 천이 닿는 느낌만으로도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고통이 찾아왔다. 밤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채 눈도 거의 못 붙이고 일어나 거울울 보니 어제 밤과는 다른 내 엉덩이가 나를 반겼다.


차마 여기에 내 알궁둥이 사진을 첨부할 수 없음을 이해 해 달라. 하지만 나는 정말이지 내 엉덩이 사진 보여 주고 싶다. 살면서 피부가 이런 색이 될 수 있을 꺼라고는 상상도 못할 만큼 시커매진 엉덩이가 나를 반겼다. 그것도 한뼘 크기로 커다랗게 말이다.


이걸 본 동생은 뒤집어졌다. 언니 당장 병원으로 가라고. 그런데 나는 의문이었다. 도대체 계단에서 미끌어져 멍든거 가지고 어느 병원을 가야 하냐는 것이다. 뼈가 뿌러졌으면 정형외과를 가고 머리를 다쳤으면 신경외과를 갈텐데 멍든 것은 어딜 방문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피부과인가?) 그래서 그냥 참았다. 멍든건 시간이 가면 빠질 것이테니까. 그래서 병원 방문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옆지기의 성화에 가게 앞 마취통증의학과로 향했다. 그곳에서 멍 든 부위를 보이고 소염제를 처방받고, 결국 초음파를 찍어 피가 고여있는 것을 주사로 빼내었다. 주사기 가득 찬 피가 웃기고 서글퍼 사진까지 찍어두었다.


시간이 흘러 뒤늦게 이 소식을 접한 이모에게서 연락이 왔다. 당장 정형외과로 튀어 가라고. 너 이거 크게 수술 해야 될지도 모르는거라고. (이모는 현직 간호사이시다.) 어렸을 적 부터 호랑이 같던 이모의 불호령이 내려지자마자 나는 정형외과를 향했다.  정형외과에서는 그때까지도(사건 발생 약 2달 후 이다) 가득한 내 멍을 보고 심각해졌다. 당장 mri를 찍자고 예약이 잡혔다. 나는 순식간에 옷이 갈아입혀저 시끄러운 기계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정신을 차려 보니 의사 선생님 앞이었다. 선생님은 왜 이제 왔느냐며 나를 나무랐다. 게다가 주사바늘을 꽂는 행위까지 했다니 이건 정말 큰일 날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병명이 뭐라더라...? Morella velle? 뭐 이런 이름이었던거 같은데, 정확히 기억 안나지만 염증치료 중 염증 부위에 감염이 일어 날 수 있는 (주사기 꽂는 등의) 행위는 정말 위험한거라더라. 치료법은 딱히 없고 보존치료 해서 자연적으로 나을 수 있기를 바래야 한다길래 그런가보다 하고 나와 일상생활을 이어갔다.


늦여름에 다쳐 가을이 지나 겨울이 올때까지도 내 엉덩이는 여전히 퉁퉁 불어 있었다. 멍들었던 부위의 붓기(안에 피가 고여 있는거겠지만)가 빠지지 않아 옆에서 보면 약간 우스꽝 스러운 꼴을 하고 있다. 하지만 자는데도 문제가 없고, 피부 색도 제 본연의 색을 찾아서 나는 별 생각 없이 병원도 자주 방문하지 않았다. 그러다 사건이 터졌다.


지난해 연말, 종무식 겸 송년회로 진행된 회식에서 과하게 술을 들이킨 것이다. 소맥으로 달리다 막걸리로 끝냈으니 떡이 나인지 내가 떡인지 모를 정도로 마셨다고 할 수 있다. 숙취 없는 편인데 숙취도 쎄게 오고, 더 큰 문제는 엉덩이가 아파서 밤에 잠을 못이뤘다는 것이다. 당장 병원으로 날아갔다. 의사선생님께 술 마셨다 이실직고 하고 처분을 기다리는 어린애 마냥 선생님을 쳐다보니 선생님께선 어이 없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푹 쉬셨다. 염증에 쥐약인 것이 술인데 그 술을 떡이되도록 마셨다니 나는 입이 열개여도 할 말이 없었다. 선생님께서는 술만 마셨냐, 기억은 다 있냐, 얼마나 마셨냐, 넘어진데 또 넘어진건 아니냐며 취조를 하셨고 내려진 처분은 술 금지령 그리고 주사!  결국 아픈 엉덩이 말고 반대편 엉덩이에 주사 한대 맞고 지금까지 계속 약을 먹고 있는 중이다. 매주 염증 수치 검사를 위해 피 뽑는건 덤이고.


어제 눈이 참 많이 왔다. 몇해 전 눈폭탄에 큰일 겪은지라 철저히 대비한 덕에 차도는 문제가 많이 발생하지 않았지만, 인도는 예외였다. 여전히 눈이 쌓여있고, 녹은 눈이 다시 얼어 빙판을 만들었다. 나는 오늘도 이 길을 걸어 퇴근 할 것이다. 빙판길에 또 넘어질까 무서워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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