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이 되어 새로 사귄 친구는 핸드폰을 가지고 있었다. 무려 카메라 기능이 달린 최신 슬라이드폰이었다. 그 친구의 핸드폰 속에는 자신의 방을 찍은 사진이 한장 있었다. 사진 속 방은 너무나도 내 취향이었다. 보드랍고 레이스 달린 침구는 물론이고 침대 위쪽을 장식한 캐노피까지 완벽한 공주님 방이었다.
그 친구의 방을 찍은 사진을 본 이후로 나는 끙끙 앓기 시작했다. 사진 속 그 캐노피가 너무나도 가지고 싶어졌다. 하지만 차마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식구들의 반응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모기장이다 모기장!'
'거추장스럽게 이런걸 뭐 하러 하니?'
'천장에 달아도 고정이 잘 안될텐데...'
그러던 어느날 식구들과 함께 한 백화점 나들이에서 꿈에 그리던 그 캐노피를 발견하고야 말았다. 나는 그 앞을 떠날 수가 없었다. 친구 방에서 보았던 흰색도 물론 예뻤지만 그보다 더 어여쁜 분홍색의 레이스 달린 캐노피와 마주한 나는 차마 만져보지도 못한채 황홀경에 빠져들었다. 내 방에 이걸 달면 내가 디즈니 만화속에 나오는 공주님처럼 우아하게 잠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뒤늦게 따라오지 않는 나를 찾으러 온 식구들이 와서 캐노피 앞을 떠나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고선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곤 흔괘히 캐노피를 구매 해 주었다. 심지어 그 옆에 있던 구슬이 조롱조롱 달린 예쁜 커텐도 사주었다. 나는 너무나 기뻐서 얼굴이 쌔빨개졌다.
나는 서둘러 집에 가고 싶어졌다. 얼른 가서 내 방에 이 모든 아이템을 장착시키고 싶었다. 밥도 먹는둥 마는둥 하며 식구들을 재촉해 집에 도착하자마자 신발도 채 안벗은 아빠에게 얼른 달아달라고 졸랐다. 그때의 아빠 표정이 어땠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 그런 내 모습이 귀여워 한껏 웃었던것 같다.
베란다 쪽 창문에 커텐을 달고 그 옆에 있는 내 침대 머리 맡에 캐노피를 달아 레이스를 한껏 펼쳐 내었다. 평범했던 내 방이 공주님 방으로 변신한 순간이었다.
꿈에 그리던 공주님 방을 가지게 된 나는 집에서 못난이 공주라 불리기 시작했다. 나는 부끄럽고 수줍고 창피한 한편 그토록 원하던 방을 가지게 된 것 같아 마냥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