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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세영 Mar 28. 2024

잠옷 연대기]나도 내가 안어울리는거 잘 알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키와 몸무게가 쑥쑥 자랐다. 몸은 엄마와 체격차이가 별로 나지 않을 정도로 자라났다. 사춘기가 시작된 것인지 그때까지도 엄마가 챙겨준 옷을 입던 내가 스스로 옷을 입겠다 선언하고 나섰다. 남들 특히 또래 친구들 시선을 의식하면서 어른스러운 옷, 무늬가 없고 무채색의 옷을 주로 입기 시작했다. 겉은 이렇게 자라났지만 내 속의 아이는 자라지 못하고 유아기의 취향을 여전히 고수 하고 있었다. 그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는 지금도 성업중인 '더 데이 걸즈'였다. 어린 내 눈에 비친 '더 데이 걸즈'의 옷은 분홍색과 보라색이 많이 쓰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스럽고 사랑스러웠다.


덩치가 남들보다 컷던지라 이 옷을 입은 내 모습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옷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어깨 한쪽이 살짝 드러나는 꽃분홍색의 칠부티셔츠를 큰맘먹고 학교에 입고 간 날이었다. 별로 친하지도 않았고, 지금은 이름도 생각 나지 않는 친구가 내게 와서 말했다


"세영아. 너 이런옷 입고 다니면 6학년 언니들한테 찍혀"


그리고 나는 그 옷을 두번 다시 입지 못했다. 안어울린다는 말을 하는 것 같아서...



이제와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친구는 정말로 걱정되는 마음에 내게 그런 말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춘기 예민한 나이의 나에겐 그 말은 상처로 다가 왔다. 내가 늘 좋아하는 그런 스타일의 옷이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 왔다. 나와 친하지도 않은 사람이 내게 와서 저런 말을 할 정도인가 고민했다. 그 이후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옷을 더이상 입지 않게 되었다. '더데이걸즈'도 더이상 가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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