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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삼열 Oct 11. 2023

아이들은 어른의 스승2

어쩌면 우리... 초능력자일지 몰라!

  한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을 잠시 훔쳐 보자.

  이 사람, 칠흑같이 어두운 밤, 책을 자유롭게 읽는다. 대낮에 그러하듯 막힘없이 독서한다. 그리고... 글까지 써 내려간다. 빛이 필요없는 것처럼 보인다.    

  글을 쓰다 말고, 이 사람, 음악을 듣는다. 그런데... 악보도 없이 모든 악기의 음을 알아맞춘다. 더 나아가 각 악기들이 어떤 화음을 만들며 어떻게 어우러지는지까지 환하게 알아맞춘다. 마치 머릿속에 악보가, 악기가 들어 있는 것 같다.     


  위에서 훔쳐본 사람이 어떠한가? 신기하지 않은가? 혹시 초능력자 같지는 않은가?

  지금 시각은 새벽 04시 30분. 세상은 어둠에 잠겨 있고, 방은 빛 한 점 없이 캄캄하다. 그리고 나는 눈을 감은 채 글을 쓰고 있다. 이렇게. 시각장애인용 노트북을 이용해서. 

  그뿐인가. 나의 귀에는 에어팟이 꽂혀 있고, 스티브 바라캇의 노래가 이어폰으로 흘러나온다. D장조의 '플라잉'이란 노래이다(중간에 장조에서 단조로 변하기도 하는). 독서하거나 글을 쓸 때 내가 자주 듣는 곡이다. 나는 머릿속에서 악보를 그려본다. 약한 시력 대신, 강한 청력을 주신 신께 경의를!      


  오해가 없으시길 바란다. 당연히 나는 초능력이라고 할 만한 능력이 아예 없고, 그런 비슷한 생각을 해 본 적 또한 전혀 없다. 

  단지, ‘평범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을 조금만 다르게 바라보면, 새로운 관점으로 그를 인식할 수 있겠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요컨대 ‘낯설게 바라보기’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고 싶은 것이다.          


  우리 모두가 주지하다시피 ‘장애’는 핸디캡이고 불편이다. 이러한 장애가 능력일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을 스스로 떠올리고, ‘그렇다’라고 답한 중학생이 있다. 맹랑하게도 ‘장애는 초능력이고, 초능력은 장애의 다른 말이다.’라고 주장한 학생의 발표가 참 인상적이었다.       

  ‘아이들은 어른의 스승1’에 이어, 또 하나의 발표를 간단히 소개해 보려 한다. 우리 어른의 관점과는 조금 이질적인 낯선 생각을 한번 들어 보자.       



          


  장애인이 겪는 불편과 차별을 초능력자들의 그것과 비교한 발표였다. 장애인이나 초능력자나 주류 사회인과는 다를 수밖에 없고 그러한 차이 때문에 이들은 불편을 겪는다는 주장이었다. 다소 거칠고 논리의 비약이 보이기는 하지만, 나는 무척 창의적인 발표였다고 생각한다.

  중학생이 위와 같은 주장을 하면, ‘치기 어린 생각이군.’하는 평가를 받기 쉬우나, 유명한 소설가가 저런 류의 발상을 소설화한다면 어떨까. 그때도 ‘풋내 나는 생각이군.’할 수 있을까. 


  소설가 김중혁의 도서 ‘내일은 초인간 1: 유니크크한 초능력자들’의 일부를 소개해 볼까 한다. 팔 길이가 길지만 그것으로 생산적인 일을 하지는 못하는 주인공, 그 밖의 특이한 능력을 가졌지만 역시 그 능력을 유용하게 발휘하지는 못하는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공상우의 윙스팬은 1,982밀리미터, 인치로 하면 78이다. 180센티미터의 키를 고려하더라도 무척 긴 편이다. 팔이 길어서 좋은 건 별로 없었다. 놀림거리나 됐지. 원숭이 새끼, 공상우랑우탄. 초등학교, 중학교 때 체육 선생들은 그에게 다양한 종류의 스포츠를 권했다. 농구부에 들어가. 농구 선수들은 원래 팔이 길어. 윙스팬이 바로 재능이지. 학생 골키퍼 해볼 생각 없나? 배구 선수로 딱 좋은 몸이야. 세계 최고의 블로커로 키워줄게. 귓구멍이 마비될 정도로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들었던 공상우는 정말 재능을 타고난 줄 알았다. 테스트를 마친 체육 선생들은 그의 운동신경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포기했다. 공상우는 그저 팔이 길 뿐이었다. 



 

  소설 속에서 공상우를 비롯한 인물들은 주류 사회에서 살아가지 못한다. 자신의 특이한 겉모습, 능력 때문에 언제나 편견 어린 시선을 받고, 차별을 경험하면서 점차 사회 밖으로 밀려나 주변인으로 살게 된다. 마치 장애인이 그러하듯이. 

  이들에게 있어 재능 혹은 특이한 능력은 신의 축복일까, 저주일까. 작가는 이에 대해 쉽게 답하지 않는다.      

  나는 이 짧은 글에서 ‘장애’와 ‘초능력’의 관계를 장황하게 서술할 생각도 그럴 능력도 없다. 다만, 얼핏 무관하게 여겨지는 이 둘을 연결해 보임으로써 ‘장애’를 낯설게 인식해보고 싶을 따름이다. 


  심리학자 고든은 인간의 창의력을 신장시킬 목적으로 ‘고든 기법’을 창안한 바 있다. 이 기법은 얼핏 보았을 때 무관하게 여겨지는 것들, 예컨대 ‘장애’와 ‘초능력’ 같은 개념을 어떡하든 연결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기법이다. 무관한 것을 연결하는 과정에서 창의력이 신장되고, 어떤 문제를 해결할 대안이 도출된다고 본다. 이때 두 개념의 거리가 멀면 멀수록 창의력이 더욱 신장된다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위 학생은 발표 수행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지는 못했다. 발표 시간 3분을 다 채우지 못했고, 발제문 및 발표 내용이 거칠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수에 상관없이 나는 해당 발표가 무척 좋은 말하기였다고 생각한다. 발표를 준비하는 내내, 학생은 쉽게 연결되지 않을 개념을 어떻게 해서든 연결해 보이기 위해 노력했고, 많은 자료를 찾으며 연구했다. 나는 예쁘지만 획일적인 발표보다, 거칠지만 개성 있는 사고, 그러한 수행이 더욱 가치롭다고 믿는다.      


  당연하게도 나는 장애를 가지고 있고, 그것은 보는 관점에 따라 핸디캡일 수도, 반대로 능력일 수도 있겠다.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 어느 쪽을 세상에 내보이느냐는 전적으로 내게 달려 있지 않을까.

  성별, 국적, 종교, 빈부 또한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우리를 만드는 건 성별이나 국적 같은 게 아니다. 이러한 것과 전혀 무관한 어떤 대상을 가져와서 연결할 때, 비로소 우리는 완성되는 게 아닐는지.

  중학생에게서 ‘낯설게 보기’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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