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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oung Apr 25. 2019

여전히 성장 중...

Navy (아들과 딸)

예전 드라마 중에서 '아들과 딸'이란 드라마가 있었다. 주인공은 김희애배우와 최수종 배우였었고 그 외 다수의 배우들이 나왔던 드라마였는데, 얼마 전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최수종 배우의 역대 출연 드라마들이 소개가 되었고 그러면서 '아들과 딸'이란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나오게 되었다. 그러던 중 그 드라마를 보던 당시의 나의 모습이 새삼 떠오르게 되었다.

아마 많은 분들이 기억을 하시겠지만 그 드라마는 우리나라의 남아선호 사상을 그린 드라마였고 아들을 귀히 여기는 가족 안에서 딸들과 아들 사이의 갈등과 또 그러한 차별을 행하던 부모님과 자녀들 사이의 갈등이 주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 '저건 바로 내 이야기야'하고 엄청난 공감을 했었다. 그 드라마처럼 우리 집도 딸이 여럿에 아들이 하나이고 그리고 그 귀한 아들 바로 윗 누나가 나이기에 그 드라마의 상황들이 나의 삶과 사뭇 닮아있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 나는 엄마에게 맘껏 어리광을 부리지도 그렇다고 엄마 옆에 찰싹 달라붙어있을 수도 없었다. 늘 엄마 옆은 남동생 차지였기에 나는 엄마보다는 늘 언니들의 보살핌을 더 많이 받고 자랐다. 더욱이 어린 남동생이 조금 아팠던 관계로 엄마 아빠의 관심은 늘 남동생에게 향해 있었다. 부모님이 안 계실 때는 어린 남동생을 울리지 않고 잘 데리고 놀아야 했으며 남동생의 잘못은 당연히 나의 잘못이었다.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내고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 조금이나마 남동생으로부터 해방이 되기도 했었지만 남동생 또한 초등학생이 되면서 내가 남동생을 챙겨야 하는 일은 다시 시작이 되어 버렸다. 등교할 때 그리고 하교할 때 늘 동생을 챙겨야 했으며, 학교는 가기 싫어하고 집에는 일찍 가고 싶어 하는 동생으로 인해 동생반에 가서 동생의 나머지 공부를 대신해주고 동생이 청소해야 하는 곳을 대신 청소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러다 보니 나는 우리 담임선생님보다 동생반 선생님과 더 친해져 버린 웃픈 일도 일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남동생으로 인해 발생한 수많은 일들 중에서 나의 마음에 아직도 아프게 남아있는 일이 하나 있다.....

내가 고학년이 되어 하교시간이 동생과 달라졌었던 어느 여름날, 아침까지 맑았던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고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비는 제법 많이 내려 온 운동장과 학교를 흠뻑 적시고 있었다. 수업을 하다가 무심코 창밖을 보게 되었는데, 저학년 아이들이 막 학교가 끝나서 다들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비에 무작정 뛰어가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부모님들께서 우산을 들고 오셔서 아이들과 함께 하교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빗속으로 다정하게 우산 하나를 쓰고 가는 엄마와 남동생이 보였다. '아, 엄마가 동생을 데리러 오셨구나.' 그리고 그렇게 그 둘의 모습은 아직도 나의 눈에 아련하게(조금 아프게) 남아있다.

나의 수업도 모두 끝나고 내가 하교할 시간이 되었을 때에도 비는 여전히 억수로 내리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방을 챙기고 교실 밖을 바라보았지만 그곳엔 다른 아이들의 부모님들만 계셨다. 나는 '잠깐 기다려 볼까?' 하고 잠시 생각했지만 그러면 더 마음이 아플 거 같아서 그냥 실내화 가방을 머리에 얹고 운동장으로 걸어 나갔다. 우산이 없는 아이들은 냉큼 뛰어서 달려 나갔지만 나는 뛰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집으로 걸어가는 내내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꼭 나의 마음을 후벼 파는 아픈 꼬챙이 같았다.

'엄마가 바빠서 오시지 못하는 걸 거야', '분명 얄미운 남동생이 엄마를 잡아두고 움직이지도 못하게 하고 있겠지.'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또...  '엄마는 나는 생각이 안 나시나 보다.'  '데리러 못 오시면 동생 데리러 오실 때 우산만이라도 전해주고 가시지'  '내가 감기 걸려서 아파도 엄마는 신경도 쓰지 않을 거야'....

집으로 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에 떠올랐고 그 모든 생각들은 하나같이 전부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막상 집으로 돌아와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차라리 울며불며 엄마께 대들었다면 괜찮았을까?) 그저 아무 일도 없었던 양 그렇게 조용히 그 아픈 하루를 마음속에 묻어두게 되었다.

중학교 시절(아마도 1학년 때이었던 것 같다.), 나랑 일도 친하지 않은 수학 시간이었다. 이 수학 시간을 왜 내가 기억을 하게 되었지는 지금 생각해 보아도 참 어이가 없다.(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창피하기도 하다.) 그 당시 수학선생님은 우리 학교에서 알아주는 괴팍한 선생님이었다. 외모도 우락부락하신 데다가 여자아이들에게 아무 말이나 막 하시고 체벌도 좀 과하셨던.. 그야말로 아이들이 기피하는 일순위 선생님이셨다. 나 역시 그 선생님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었고(뭐.. 수학은 저랑 철천지 원수라고나 할까... 그다지 선생님 때문은 아니었죠.) 수학 시간은 늘 나에겐 그저 공상의 시간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우연인 건지 아니면 운명인 건지, 그날 수업 중에 '아들과 딸'이라는 드라마 이야기가 흘러나오게 되었고 선생님께서 혹 그 드라마와 비슷한 가족관계를 가진 사람이 있냐고 물어보셨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참 친절하기도 한(너무 오지랖이 컸었지. 이 친구는..) 내 짝꿍이 냉큼 손을 들고는 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당연히 시답지 않은 농담을 하실 거라 생각했던  수학선생님께서는 모두가 놀랍게도(그날 해가 서쪽에서 떴었던가?) 으레 무섭던 말투를 치우시고는 반 친구들에게 다정한 말투로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다.

"저 친구한테 잘해주거라.. 엄청 고생하는 친구다."

 그리고 선생님의 그 말 한마디는 그만 나를 울컥하게 만들어 버렸다. 가족도 몰라주는 나의 마음을 선생님께서 들여다보시고 알아주시는 것 같아서 마음의 작은 파도가 밀려왔다. 눈물을 참기 위해 간신히 버티고 있는데 선생님께서는 다정하게 잠깐 나를 바라보시더니 이내 수업을 이어가셨다.

그 어리던 나는 같은 여자인 엄마가 왜 그렇게 아들만 귀히 여기시는지 이해하지 못했었다.(우리 엄마는 지금도 여전히 아들이 최고이시다.) 엄마가 어렸을 때도 분명히 오빠들과 차별을 당했을 터인데 왜 엄마는 그 똑같은 일을 우리들에게 행하고 계시는지 정말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세월이 많이 흐르고 어른이 된 지금 많이 늙고 지쳐버린 엄마를 보면서 그 알 수 없었던 일들이 조금 이해가 되고 그리고 또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엄마는 그렇게 해야만 살아갈 수 있었으며 또 그것이 유일한 희망이었고 자존심이었던 것이다. 주변의 수많은 무시와 시집살이에서 벗어나게 해 준 것이 아들이었으며 그 아들로 인하여 엄마는 숨죽여 속으로 삮이고만 있었던 본인의 목소리를 그제야 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엄마는 나와 동생에게 차별 아닌 차별을 행하고 계시지만 이제 나는 그저 웃으며 넘어갈 수 있다. 누군가가 옆에서 나의 마음을 알아준다 하더라도 지금은 울컥하지도 눈물이 고이지도 그렇다고 마음속에 파도가 일렁이지도 않는다. 그저 그렇게 익숙해져 버린 엄마의 삶이 안쓰럽고 애틋할 뿐이다.  그리고 이제 어른이 되어 인생을 조금 이해하게 된 나는, 우리 엄마는 나 또한 많이 사랑하고 계신다는 걸 알고 있다.....

얼마 전 우연히 엄마가 나의 초등학교 시절에 관한 한 이야기를 다 자란 나에게 해주셨을 때가 있었다. 그날도 역시 엄마는 동생 때문에 학교에 오셨다가 집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우연히 나의 반을 지나치게 되셨다고 했다. 쉬는 시간이어서 아이들이 부산하게 돌아다니고 있던 그 시간, 교실 안 한가운데에서 책 속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내가 보였다고 했다. '쟤는 왜 쉬는 시간에 저러고 있어?'라고 생각하던 찰나, 엄마는 눈물이 났다고 했다. 알고 보니 우유급식시간이었는데 우유급식을 신청하지 못한 내가 다른 아이들이 우유 먹는 것을 보지 않기 위해서 책을 억지로 보고 있더라는 것이다.(나는 기억이 안 납니다. 하하.. 그랬을까요? 혹, 엄마가 잘못 기억하시는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그 길로 엄마는 바로 우리 담임선생님을 만나 나의 우유급식을 신청하셨다는 것이다.(사실인가 봐요.. 엄마의 기억은 너무 또렷하네요. 하하하..)

우리네 부모님들이 늘상 자식들에게 하시던 말씀이 있다.

"열 손가락 깨물어 봐라. 안 아픈 손가락이 있나."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었다. '안 아픈 손가락은 없지만, 덜 아픈 손가락은 있겠지.' 그러나 이제 나는 알고 있다. 그 덜 아픈 손가락도 나의 손가락이라는 것을... 덜 아픈 거지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님을...

우리가 어디에 있든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 우리는(그리고 나는) 우리의 부모님(엄마)들의 마음속에서 늘 아픈 손가락들임을 이제야 슬쩍 어른의 향기를 풍기게 된 나는 깨닫게 되었다. 이 깨달음이 너무 늦은 것이 아니기를 그래서 같은 여자인 나의 어머니를 이제는 내가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는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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