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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oung Apr 22. 2019

여전히 성장 중...

Yellow Ocher (The power of '풋' feat 순식이)

이 세상 모든 만물들은 어느 거나 할 것 없이 희로애락을 느끼고 산다. 들에 피는 들꽃들도 바람의 소리에 즐거워 춤을 추고 천둥소리에 겁을 먹고 움츠러드는 걸 보면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에게는 감정이라는 것이 있음에 틀림없다.

그중 우리 인간들은 세상에 있는 어떤 존재들보다도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일에 능하며 소리 내어 울고, 소리 내어 웃을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유일한 생명체들이다. 이러한 특권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산다면 그것 또한 엄청난 낭비이며 직무유기가 아닐까 싶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 또한 요 근래 크게 웃어본 기억도, 그렇다고 목놓아 울어본 기억도 없다. 그저 하루하루가 덤덤히 지나가는 세월과 짝을 맞추듯이 그렇게 아무 감정 없이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소리를 달리 내며 감정을 표현하는 자연 만물들과는 다르게 우리는 그저 그날이 그날인 똑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유일하게 소리 내어 맘껏 웃을 수 있으며 또 눈물 콧물 짜내며 울 수 있는 우리는 왜 이런 인간만의 특권을 누리지도 그렇다고 쉽사리 표출하지도 못하게 된 것일까? 웃을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세상일지라도 울고 웃는데 능한 우리가 좀 더 이 능력들을 맘껏 펼칠 수 있다면 좋겠다.

우리 집이 하숙을 치던 어린 시절에 우리 자매들은 다 어린 고로 좁은 방에 한데 모여 자고 생활하면서 엄청나게 다투고 부대끼며 지냈다. 그러다 보니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 일이 다반사에 가끔 유혈사태도 일으켰으며 그럴 때면 늘 엄마께 일렬로 서서 회초리를 맞곤 했다. 그러나 그 수많은 투닥거림 속에서도 늘 고고한 자태를 유지하며 장외로 빠져있던 인물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우리 둘째 언니였다. 어린 시절 때부터 책벌레였던 둘째 언니는 우리보다는 책과 더 친했으며 우리랑 어울려 노는 일도 극히 드물었다. 그러다 보니 둘째 언니는 말수도 적고 행동도 조신 조신한 천상 여자여자한 캐릭터였다.

그리고 그 당시, 우리 집에서 막 하숙을 시작한 한 대학생이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대학교 4학년이었고 교생실습을 다니던 오빠였다. 그런데 이분에게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그분의 이름이었다.(이유가 이제 나옵니다.. 기대하시라!!)

내가 기억하고 있는 한 우리 식구들은 언제나 강아지와 함께 살았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강아지가 없었던 시간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당연히 그 당시에도 우리 집을 오랫동안 든든하게 지켜주던 누렁이 한 마리가 있었으며 그 누렁이의 이름은 순식이었다. 엄마가 지어주신 이름이었는데 입에도 착착 붙으며 또 우리 누렁이도 분명 그 이름을 좋아했다. 그래서 우리는 아침에 밥을 줄 때 그리고 같이 뛰어놀 때 그리고 밤에 누렁이가 짖어댈 때

"순식아~~~~~~~~"   

라고 시도 때도 없이 불러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께서는 우리 모두를 모아놓으시고는 지금 이 시간부터는 절대 우리 누렁이의 이름을 크게 부르지 말라고 엄포를 놓으셨다. 그 이유는 하숙을 시작한 그 대학생 오빠의 이름이 바로 순식이었던 것이다. (사람 이름이 개 같은 건지(절대 욕 아닙니다.) 아니면 개 이름이 사람 같은 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더불어 부득이하게 실명을 거론한 점 죄송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알겠다고, 조심하겠다고 엄마께 약속을 했다. 그러나 중대한 그 순간에도 우리의 여자여자한 둘째 언니는 아마도 책에 빠져 있었을 것이고 엄마의 얘기는 귓등으로도 듣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그 사달이 났지..)

우리 형제들도 그리고 하숙생들과 부모님도 편히 쉬고 있던 어느 휴일날, 우리 자매들은 어김없이 방에서 멀쩡히 잘 놀다 말고 투닥거리기 시작했고 곧 서로의 머리를 잡아 뜯으며 싸우고 있었다. 난데없는 난투극에 결국 빨래를 널고 계시던 엄마께서 달려오셨고 우리 모두는 다시 한번 방에 일렬로 서서 아빠의 일장연설과 엄마의 회초리를 달게 받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밖에서 둘째 언니의 아주 우렁찬 소리가 들려왔다.

"순식아~~~~~~~~~~ 밥 먹어라."

그 순간 엄마의 회초리는 공중에서 멈췄으며 아빠의 일장연설은 중단되었고 매를 맞고 있던 우리 모두는 울던 것도 멈춘 채 서로의 얼굴만 보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들려오는 소리는 대학생 오빠의

"예, 나갑니다.. 어머니!"

5초간의 정적 후, 옆에 서있던 셋째 언니가 "풋"하고 웃음을 터트렸고 이내 우리 모두는 허리가 끊어지게 웃고 있었다. 영문을 모르는 둘째 언니는 멀뚱히 마당에 서있었고 그 대학생 오빠는 빨개진 얼굴로 열던 방문을 잡고 있었으며 엄마는 간신히 웃음을 참으시면서 그 오빠한테 연신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셨다. 분명 우리는 아빠 엄마께 눈물 나게 혼나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현장은 코미디로 바뀌어버렸다. (후에 그 오빠는 아빠 엄마께 우리 누렁이 이름을 개명해 달라며 간곡히 요청을 했다. 근데, 그게 뭐 쉬운가? 우리 누렁이도 평생을 순식이로 살았는데..)

내가 한창 입시생 연기를 하고 있었던(연기 잘했다니까요.) 고3 시절, 여름방학을 앞두고 있던 기말고사 기간이었다. 그 당시 시험을 보는 동안에는 3학년과 1학년들이 반반 섞여서 한 교실에서 시험을 봤고(부정행위 방지용이었답니다.) 그리고 그날은 한 과목의 시험을 치르고 나서 한 시간의 자습을 하고 있던 시간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는 우리(고3 친구들) 모두는 끝을 향해 달려가면서도 많이 지치기도 그리고 무력해지기도 했으며 내가 시험을 보고 있는 건지 아니면 시험이 나를 잡아먹고 있는 건지도 모른 채 그저 멍하게 자습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에 반해 옆줄에 있는 1학년들은 불타는 열정을 가지고 뚫어지게 책들을 파고 있었다. 그렇게 아무 소리도 나지 않던 자습시간에 갑자기 교실 앞문이 열리더니 생물 선생님께서 등장하셨다. (나이가 지긋하신 정말로 인자하고 멋진 선생님이셨습니다.) 선생님은 내 옆자리에 앉아있는 1학년 아이를 찾으시더니 교실 밖으로 데리고 나가셨다. 그리고는 복도에서 한참 얘기를 나누신 후 선생님께서는 교무실로 그리고 그 아이는 다시 교실로 들어왔다. 그 아이 앞에 앉아있던 그 아이의 친구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그 아이에게 생물 선생님의 방문 이유를 물었고 그 아이는 조금 머뭇거리더니 대답을 하였다.

"어, 그게.. 생물 주관식 문제 중에 모르게 있었는데 답지를 빈칸으로 남기기 싫어서 '차인표'라고 적었어. (아마 그 아이는 차인표 님의 팬이었나 봅니다.) 근데, 생물 선생님께서 차인표가 뭔지 몰라서 물어보려고 오셨데. 본인이 그런 걸 수업시간에 가르쳤나며.."

순간 옆에서 얘기를 듣던 내가 그만 "풋"하고 웃음을 터트렸고, 곧 시험에 지쳐있던 우리 모두는 한바탕 시원하게 웃고 말았다.(물론 차인표 님이 계속 생각나서 이후 시험에 지장이 좀 있었지만 그래도 즐거운 기억이었습니다.)

우리에게 감정이라는 것이 있는 이유는 아마도 세상살이에 힘들 때, 그리고 무언가 문제가 생길 때, 한바탕 웃음으로 그리고 모든 걸 쏟아낼 수 있는 울음으로, 또 때로는 화를 내고 같이 슬퍼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같이 기뻐하고 행복해하면서 그렇게 우리는 서로서로를 나눌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인간들임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지 않을까?  분명 우리에겐 수많은 즐거웠던 일들도, 그리고 슬프고 아팠던 일들도, 그리고 다 같이 행복하며 기뻤던 일들도 많았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그 감정들에 무뎌지며 표현에 어색하고 불편한 우리가 되어버렸다.

맘껏 소리 내어 울어버릴 수도 그리고 '풋'하는 누군가의 웃음소리에 다 같이 시원하게 웃을 수도 있는 우리였음을(그리고 우리임을) 잊지 말고 우리만 가진 그 특권 속에서 맘껏 나를 표현하면서 살아야겠다. 내가 웃으면 내 사랑하는 사람들도 분명 즐거울 테니 내가 가지고 있는 그 모든 것을 열심히 누리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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