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봄날 나는 학원 문을 열고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그때 학원 문이 빼꼼히 열리고는 한 남자아이가 조심스럽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뉘신지?"
그러자 그 남자아이는 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는 결의에 찬 말투로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선생님! 저를 경찰대학에 보내주십시오."
"..................., 그나저나 자네는 왜 이 시간에 학교에 안 가고 이곳에 있는 것인가?"
"..................., 개교기념일인데요."
내가 학원을 운영한 지 아직 6개월도 안되던 시기였었다. 그 아이는 그 당시 고1이었고 경찰대학을 목표로 하던 남자아이였다. 서울대보다도 문제가 더 어렵다던 경찰대학을 보내달라며 무작정 학원 문을 열고 들어온 그 아이와 나는 그렇게 인연이 되어 그 아이가 대학을 갈 때까지 같이 공부를 했다.
그 아이는 수학천재였다. 학교에서 수학과 과학은 늘 전교 1등을 하던 아이였으며 전국 수학경시대회에 나가서도 늘 순위권에 들던 나와는 정반대의 두뇌 상태를 가진 보기 드문 청년이었다. 그에 반해 그 아이는 영어와 국어를 조금 힘들어했었고, 그래서 영어를 배우고자 나를 찾아왔던 것이다. 특히 경찰대학의 입학시험은 영어가 어렵기로 소문이 자자한지라 그 아이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었고 그렇게 자발적으로(요즘애들이 이렇습니다. 과외선생님도 스스로 찾아다니더라고요.) 공부를 하고자 나와의 인연을 시작한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경찰대학을 목표로 일주일에 두 번을 만나 열심히 공부하고 미래에 대해 얘기하고 그리고 가끔 잡다한 농담들을 주고받으며 같이 세 번의 사계절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던 그 아이에게 불쑥 질문을 던지게 된다.
"ㅇㅇ군아! 너는 수학천재잖아. 근데 왜 경찰대학을 가려고 하는 거냐?"
"........, 그게 왜요?"
"........, 경찰은 문과잖아."
"............., 헐!!!"
"............., 몰랐냐?"
"몰랐는데요."
그렇게 그 아이는 경찰대학을 접고 살포시 하늘을 나는 파일럿이 되었다. (자식, 역시 결단력 하나는 빠른 넘이구나. 너란 녀석은..)
어린 시절 나는 밤하늘이 너무 좋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까만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이 항상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마도 나의 올빼미 생활의 시작은 그렇게 밤하늘의 별 때문이지 싶다. 내가 어렸을 적 우리 동네는 높은 건물도 없고 길가의 가로등 같은 조명시설들도 별로 없어서 자정이 넘어 밤하늘을 바라보면 정말로 많은 별들을 볼 수 있었다. 은하수도 보였으며 오리온자리. 북두칠성. 카시오페이아 등등 수많은 별자리들이 나의 머리 위에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별들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러다 예고 없이 별똥별이 떨어지면 나는 벌떡 일어나 얼른 두 손을 모으고 소원을 빌었다. 그리고 그 소원의 내용은 항상 '천문학자가 되게 해 주세요.'였다.
별자리에 대한 책들을 사서 읽고 그리고 밤에는 하늘이라는 거대한 실물 책에서 그 별자리들을 찾아보고 그렇게 밤마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살았다. 유성우가 내리는 날에는 밤을 꼬박 새워가며 밖에서 밤을 지새우곤 했으며 천체망원경을 사고자 돈을 모으기도 했었다. (물론, 천체망원경은 너무 비싸서 나의 능력 밖이었으며 머지않아 포기해버렸다.) 겨울이 되면 정말로 많은 별들을 볼 수 있기에(겨울 밤하늘을 특히 까맣고 깨끗해서 별들이 훨씬 선명하게 보였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휴지로 양코를 막고는 이불까지 둘러메고 밖에서 밤을 지새우곤 했었다.
그러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나는 깨닫게 되었다. '아! 나는 천문학자가 될 수는 없겠구나. NASA를 정말 가고 싶었는데. 안 되는 거였구나.'
나는 수학과 과학을 정말로 못했다. 아주 뼛속까지 문과 체질인 나는 수많은 수학공식들과 과학원리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으며 그러다 보니 천문학자의 꿈은 이룰 수 없는 슬픈 바램이 되어버린 것이다.
내가 먹을 만큼 먹은 나이 속에서도 여전히 풀지 못한 난제가 바로 꿈이다.
내가 할 수 있으며 내가 잘할 수 있는 일들 중에 나의 꿈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나의 꿈은 내가 잘할 수도 그렇다고 잘할 자신도 없는 그야말로 꿈이다. 그렇지만 그렇기에 또한 나는 꿈을 꾼다. 잘하고 싶어서 그리고 잘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서 그렇게 꿈을 꾸고 있다. (이뤄지면 좋겠지만 이뤄지지 않더라도 손해 볼 것도. 그렇다고 욕먹는 일도 아니니 맘껏 꿈꾸는 거지...) 그리고 내가 이룰 수 있는 작은 것들을 이루게 되면 그 또한 엄청난 성과가 아니겠는가.. (천문학자가 될 수는 없지만 천문대는 세울 수 있지 않을까? 돈 벌어야겠다. 아자아자!)
오래전 한 기사에서 영화감독인 팀 버튼의 인터뷰를 읽은 기억이 있다. 그리고 팀 버튼 감독이 전한 한 이야기가여전히나의 마음속에 남아있다.
"우리가 계속 꿈을 꾸고 상상을 멈추지 않는 한 영화는 계속될겁니다."
물론 팀 버튼 감독은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한 것이었지만 내가 이 인터뷰를 읽었을 때 나는 잊고 살았던 나의 천문학자로의 꿈이 떠올랐으며 마음속으로 작은 희망의 빛이 하나 피어올랐다. (이제 와서 천문학자가 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계속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계속 꿈을 꾸다 보면 언젠간 전 세계 천문대는 다 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 내가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 한 나의 꿈은 항상 나와 함께 할 것이고 난 여전히 밤하늘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빛줄기를 남기며 떨어지는 별똥별을 발견하게 되는 날이면 조용히 두 손을 모으고 소원을 빌게 될 것이다.
나는 꿈을 꾼다. 나의 꿈속에서 나는 전 세계 천문대를 둘러보며 천체망원경에 나의 눈을 대고 있다. 까만 밤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간혹 밝은 빛줄기가 마지막 여정을 떠난다. 아이들에게 별자리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고 별자리 신화와 전설에 관한 대화를 나눈다. 수학과 과학은 못하지만 그래도 별이 좋고 밤하늘이 좋다. 그리고 꿈을 꾸고 있는 내가 좋다. 나는 계속 꿈을 꿀 것이고 그리고 그렇게 계속 꿈을 꾸는 한 나의 행복한 인생은 계속될 것이기에 나는 꿈을 이루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