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고3 아이와 수업을 하던 중, 그 아이가 갑자기 잊었던 무언가가 생각난 듯 가방을 뒤지더니 나에게 선물이라며 작은 봉지 하나를 건네주었다. 아이는 학교 앞 문구점에 볼펜을 사러 갔다가 선생님이 생각나서 같이 샀다며 뿌듯한 표정으로 불량식품 한 개를 나에게 살포시 내미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불량식품은 바로 나의 어린 시절에도 문구점에 한 자리를 늘 차지하고 있었던 '아폴로'였다. 아이가 내민 '아폴로'를 보자 나는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는 아이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쏟아붓게 되었다.
"이걸 아직도 팔아? 딸기맛도 있어?" (아이가 사 온 것은 포도맛이었습니다.) "혹시 쫀드기도 파냐?""문어다리는?"
그러자 그 아이는 당연한 질문을 왜 하냐는 듯이 시크하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당연하죠. 선생님! 다 있어요." "다음에 쫀드기도 사다 드려요?"
내가 학생이었던 이후로 강산이 여러 번 바뀌었는데 학교 앞 문구점은 여전히 나의 어린 시절과 별반 달라지지 않고 있으며, 나의 학창 시절과는 다른 시절을 보내고 있는 요즘 학생들도 나와 같은 것들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웃음이 나오기도 그리고 안심이 되기도 하는 순간이었다. (만약, 문구점 불량식품들이 사라진다면 그건 나의 추억의 한 자락이 없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 것 같기 때문입니다.)
초등학생 시절, 학교 앞 문구점은 우리들에겐 천국이었다. 온갖 물건들이 다 있고 신기한 것들도 많아서 학교가 끝나면 으레 무언가를 사지 않아도 친구들과 문구점에 들려 이것저것 구경들을 하고는 집으로 가곤 했었다. 봄이 되면 문구점은 늘 병아리들을 팔았고 (매년 500원씩 주고 병아리를 사 오고, 그러면 부모님께 야단을 맞고.. 어쩌다 병아리가 닭으로 성장하면(드물긴 하지만) 어느 순간 아빠가 몰래 잡아서 백숙을 끓여놓으시고... 그러면 나는 또 대성통곡하고 매년 봄 연례행사였네요.) 문구점 사장님이 달고나를 만들어서 별 모양, 비행기 모양으로 찍어주시면 우리는 침을 발라가며 눈이 빠져라 달고나를 열심히 파다가 부러뜨려 좌절하고 금세 친구를 꼬셔서 또 도전하고, 그렇게 문구점은 딱히 놀거리가 없었던 우리들에게는 없어서는 절대 안 되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물론, 쫀드기나 문어다리 같은 간식거리는 요즘 대형마트를 가더라도 간간히 목격이 되지만 나는 여전히 학교 앞 문구점에서 주인아주머니가 빨간 네모 바구니에 아무렇게나 쌓아놓은 불량식품들이 늘 마음속에서 추억거리로 그리고 그리움으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 학생이 건네준 그 '아폴로' 하나가 어린 시절 학교 앞 문방구의 모습을, 그리고 그 당시 그곳에서 복작거리며 달고나를 기다리던 우리들을 기억나게 해 주었으며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게 만들어 주었다.
문방구에서 팔던 대부분의 불량식품들은 아주 싼 가격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주 어린아이들이었기에 그러한 간식들을 매일 사 먹을 수는 없었다. 학용품을 사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딱히 용돈을 허락하지 않으셨던 부모님이었기에 그런 소소한 간식들을 사 먹기 위해서는 며칠간 엄마의 심부름을 하고 잔돈을 남기거나 아빠의 구두를 닦고 흰머리를 뽑으면서 백 원씩 얻어내야만 문방구의 간식들을 구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유일하게 우리가 집에서도 시도해 볼 수 있었던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달고나였다. 설탕과 약간의 소다, 그리고 국자와 젓가락만 있다면 집에서도 언제든지 만들어 먹을 수 있었던 것이 달고나였으니, 어린 시절 우리들에게 있어서 달고나는 최애 간식이었음에 틀림없다. (진정한 달고나를 만들고자 한다면 반드시 흰 설탕을 사용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온전한 달고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했다. 소다의 양이 적을 경우에는 설탕이 너무 빨리 까맣게 타버리고 소다의 양이 많을 시에는 설탕이 쉬이 국자를 넘어 버렸기에 국자에 남는 양보다 버리는 양이 훨씬 많았었다. 넘쳐버린 설탕물이 연탄을 적시면 온 집안 가득 고약한 냄새를 풍겼으며 그럴 때에는 엄마, 아빠 몰래 멀쩡한 연탄을 갈아버리기도 했다. 심지어 국자는 까맣게 태워버리기가 일상이었기에 우리는 그 국자들을 감나무 아래 땅에 묻어버리고는 완전범죄를 꿈꾸기도 했었다. 그러고 나면 엄마께서는 사다 놓는 국자가 자꾸 없어진다며 귀신의 곡할 노릇을 자주 언급하셨고 우리는 서로 눈짓만 주고받은 체 모른 척들을 하곤 했었던 것이다. ( 요럴 때만 우리들은 도원결의의 굳은 맹세를 하는 형제들이었다.)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세월이 흘러 내가 대학생으로 첫 발을 내 디딘 바로 그 해 봄, 우리 집은 대대적인 공사를 감행했다. 워낙 오래된 기와집이었기에 많은 보수가 필요했었고 그렇게 우리 집은 일하시는 분들까지 동원해서 큰 공사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던 어느 날, 화장실 정화조를 묻기 위해 땅을 파게 되었고, 공사를 하시던 분들이 감나무가 다치지 않게 조심스레 땅을 파시던 중, 갑자기 웃음들을 터뜨리셨다. 그 이유는 바로 땅속에서 까맣게 타버린 국자들이 대거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그때의 우리 엄마의 분노의 눈길은 아직도 나의 등을 서늘하게 만든다. (역시 세상에 완전범죄란 없습니다. 착하게 삽시다..)
현재의 나의 학생들에게 (이들도 여전히 달고나를 알고 있지만..) 이런 나의 옛 시절을 얘기해주면 아이들은 의아하다는 듯이 나에게 질문을 한다.
"선생님, 달고나 만드는 장비 파는데요. 그걸로 만들면 되죠. 왜 힘들게 국자에 해요?"
"자고로, 달고나는 국자를 태워가며 만들어야 진정한 달고나란다. 바로 추억의 맛이란 것이지. 추억이 방울방울 몰라?"
".......................... 달고나 너무 달아요."
".......................... 그래! 당뇨 걸리지 않게 조심하자."
이런 허무한 대화 속에서도 나는 속으로 조용하게 속삭여 본다.
'얘들아, 그래도 나는 기분이 좋단다. 왜냐하면 지금 너희들의 문방구에도 내가 먹었었던 아폴로도 있고 쫀드기랑 문어다리도 있으며 달고나도 있으니까.. 그렇게 나의 추억의 기억들이 여전히 나보다 한참 어린, 그리고 강산이 몇 번이나 변한 시대의 너희들에게도 존재하고 있으며 너희들도 다 알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나는 기쁘고 행복한 기분이 든단 말이지...'
나는 이제 웬만한 산전수전 다 겪어본 어른이 되었고 (물론, 살날이 많이 남았기에 아직도 엄청 많겠죠?) 최첨단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돌고 돌아 다시 세월을 반복하는 유행들처럼 세상의 일어나는 모든 일은 분명 과거에도 있었으며 현재도 일어나고 있고 미래에도 일어날 것이다. 이 하늘 아래, 사람들이 살고 있는 모든 곳에 새로운 것은 없다. 그렇기에 나는 그리고 우리는 나의(우리의) 삶을 견딜 수 있으며 추억할 수 있고 같이 나누며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타버린 국자의 달고나가 세월을 돌고 돌아 지금의 아이들에게도 전해지는 것처럼 우리의 추억의 기억들도 우리를 돌고 돌아 영원히 남아있게 될 터이니 나는 그리고 우리는 지금의 모든 순간을 소중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간직하고 있기만 하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