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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oung May 17. 2019

여전히 성장 중...

나의 영화 이야기-엘리자베스 타운 (feat.스포가득)

일에서 좌절을 맛본 한 남자가 있었다. 승승 가도를 달리던 중, 그에게 엄청난 프로젝트가 맡겨졌고 그는 반드시 성공시키고 말겠다는 의지로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고 그는 쓰디쓴 실패를 맛봐야만 했다. 

모든 걸 걸었던 일에서 실패하고 회사에까지 막대한 피해를 입힌 그는 결국, 본인의 삶까지도 포기하고자 하는 마음을 먹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삶과의 작별을 고하려던 바로 그 순간,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이혼하고 떨어져 살았던 아버지의 유골을 고향에서 가져오라는 부탁을 한다. 어린 시절 헤어져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아버지이지만, 그리고 돌아가실 때 조차도 만나지 못했던 아버지이지만 아들은 어차피 마지막이기에 그 부탁을 들어주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그는 본인의 계획은 잠시 미뤄두고 아버지를 만나러 아버지의 고향으로 떠나게 된다. 

아버지의 고향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 승객이라고는 그밖에 없다. 승객이 한 명뿐이라 할 일이 없어진 여승무원은 밤새 그와 얘기를 나누게 되는데, 마침 그 여승무원이 아버지 고향 출신이었고 그렇게 그 둘은 도착하는 시간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위로 아닌 위로를 나누게 된다.

그가 아버지의 고향의 도착하고 차 한 대를 빌려 아버지의 동네를 들어서는 데, 동네의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인사를 건넨다. 분명 그는 아주 어린 나이에 그곳을 떠났지만 동네의 모든 사람들은 마치 어제도 만났던 이들처럼 그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따뜻한 인사말을 건넨다. 그리고 그가 동네에 머무르는 동안 사람들은 그에게 그의 아버지에 대한 수많은 얘기들을 들려주고 아버지와의 추억들을 끄집어낸다. 그는 그저 아버지의 유골을 찾아 바로 고향을 떠날 생각이었지만 동네 사람들은 오랜 친구였으며 가족이었던 그의 아버지를 위해 성대한 장례식을 준비하고 있었고 그에게 그 이후에 떠날 것을 권유하게 된다. 그는 그곳에서 꽤 여러 날을 머무르며 동네 사람들과 함께 과거에 관한 추억을 더듬고, 아버지와 어머니에 관한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되었으며, 그리고 어린 시절 그와 그의 가족들이 얼마나 행복했었는지를 차츰 깨달아가게 되고, 또한 우리의 진정한 행복들을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는지도 진정으로 알아차리게 된다.

마침내, 아버지의 장례식날, 온 동네의 마을 사람들은 한 곳에 모여서 함께 아버지를 기억하고 혼자가 아닌 모두가 행복했었던 시간들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남자가 놀랍게도 그곳엔 그의 어머니도 참석을 하게 된다. 어머니는 동네 사람들 앞에(무대 위에) 서서 이제는 떠나간 남편을(물론, 아주 오래전에 헤어졌지만) 소개하고 욕도 하고 그리고 추억하면서 그들만의 이야기를 담담히 전해준다. 그리고 어머니는 남편과의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무대 위에서 음악 없이 남편과 함께 했던 춤을 추게 된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어떤 이는 행복한 미소를 그리고 어떤 이는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와의 진정한 마지막을 보내게 된다.

이 이야기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엘리자베스 타운'의 줄거리이다. 꽤 오래전에 봤었던 영화이고 그리고 잘 알려지지도 않은 영화이지만 (그러나 영화의 출연진은 훌륭합니다. 올랜도 볼룸과 스파이더맨의 제인이었던 커스틴 던스트, 그리고 수잔 서랜든까지... 사실 저는 이영화를 배우들 때문에 그리고 제작진 때문에 보게 된 영화였습니다.) 영화가 주는 잔잔한 울림이 너무 좋아서 아직도 나의 노트북에 고이 남아있는 영화이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신기한 건 제목의 '엘리자베스 타운'은 미국에 실제로 존재하는 지역 이름입니다.) 내가 아주 나중에, 혹 이 세상을 떠나게 되는 날이 올 때, 행복했었던 그리고 고마웠었던 이 세상과의 작별을 하게 될 때, 바라는 나의 모습을 꿈꾸게 되었다. 

영화의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주인공의 아버지처럼 모든 이에게 기쁨을 주고 떠날 수 있기를... 나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건 잘 모르는 사람이건 간에 모두들에게 내가 즐거운 축제가 되기를 이 영화를 통해 바라게 되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아들이 장례식장을 떠나 다시 본인이 삶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장례식장으로 비행기에서 인연을 맺었던 승무원이 (물론, 중간중간 둘의 사랑이야기도 나옵니다.) 떠나는 남자에게 여행가방을 선물로 전해준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은 비행기가 아닌 차로 이동할 것을 권하게 된다. 아버지를 차에 모시고 떠나는 남자는 여자의 선물을 열어본다. 그곳엔 여러 장의 음악 CD, 그리고 여자가 적어둔 도로여행의 일기장들이 들어있다. 남자는 여자가 적어둔 길을 따라 이동하며 여자가 적어둔 장소에서 여자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그리고 여자가 녹음해둔 음악을 들으며 아버지와 함께 여행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남자는 가는 곳곳에 멈춰 그곳에서 아버지의 유골을 조금씩 남겨두고 온다. 아름다운 길들에, 그리고 추억의 장소의 아버지가 머물기를 바라며 그렇게 그는 아버지와 아름다운 이별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영화는 나에게 나직이 속삭여 준다. 실제로 존재하는지 조차 몰랐던 '엘리자베스 타운'처럼 나 역시 이 세상 속에서 조용히 살아가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보다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곳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고 있는 나란 사람도 나름의 의미를 지니고 살아가고 있다고 따뜻하게 말해주고 있다.  그러니 행복하라고, 곳을 떠나게 남은 이들에게 축제의 기억으로 남겨지라고 말이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주인공의 아버지가 영화 내내 함께 한 기분이 들었다. (주인공에게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역시..) 그리고 저 아버지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지막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었으므로, 그리고 아들과 함께 여행을 하고 머물고 싶었던 곳에 영원히 머물 수 있게 되었으므로 말이다. 

'엘리자베스 타운'은 그렇게 나의 인생영화로 그리고 내 삶의 마지막 모습이길 바라는 꿈으로 남아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이자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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