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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oung May 10. 2019

여전히 성장 중...

Thankful Red (감사합니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듯이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 날을 필두로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 등 정말로 많은 기념일들이 모여있는 달이 5월이다. 꽃을 파시는 분들이 엄청 바빠지시는 시기이며, 여기저기 선물들을 안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목격되기도 하고, 이곳저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다니는 부부들, 부모님들을 모시고 다니는 가정들을 흔히 볼 수 있는, 말 그대로 가정의 달을 열심히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들로 가득한 달이 바로 5월인 것이다.

어린 시절, 5월은 나에게 있어서도 즐겁고 행복한 달이었다. 학교들은 중간고사가 끝나는 시기이며 체육대회, 소풍, 수학여행 등 행사들이 많고 휴일도 많은 (제가 아주 어렸을 때는 어버이날도 휴일이었기에 어린이날, 어버이날, 석가탄신일까지, 휴일이 정말 많았었죠.) 학교 가는 것이 전혀 부담이 아니었던 즐거운 시기였다.

특히 어린이날이 되면 엄마, 아빠께 선물을 받을 수도 있었으니 5월은 새해가 시작되고 나서 가장 기다려지는 달이기도 했었다. 다만, 우리 집은 형제도 많고 식구도 많았던 관계로 매 기념일을 다 챙겨서 서로 선물을 주고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고로 어린 시절 우리의 선물은 과자류가 대부분이었다. 어린이날, 그리고 성탄절 아침이 되면 우리의 머리맡에는 항상 과자가 놓여있었고 그 과자는 거의 항상 산도와 새알 초콜릿이었다. (통에 들어있던 새알 초콜릿이었는데, 지금은 그 통 초콜릿을 못 보게 되었다.) 아주 아기였을 때는 그것도 너무 좋아서 며칠을 들고 다니며 먹었던 기억이 있지만 (그때만큼은 언니들 그리고 동생과 나누지 않고 혼자서 다 먹을 수 있었으니까...) 나이가 좀 들어서 다른 아이들이 받는 선물들이 눈에 들어오게 되면서 나의 그 과자 선물들이 초라하고 작게 느껴지기도 했었다. (어린이 날이라고 또 성탄절이라고 최신 장난감이나 인형을 선물로 받던 다른 아이들이 부러우면서도 나는 왜 어린이날인데도 늘 과자만 선물로 받는지가 화가 나기도 서운하기도 했었던 것이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아쉬워했던 그 마음은 하등 하찮은 서러움이 아닐 수 없다. 어린이날이 뭐 그렇게 대단한 날이라고(어느 누구나 어린이였지 않았나.), 더욱이 성탄절은 나의 생일도 아니지 않은가..(성탄절은 예수님 생신이시다. 내가 축하받을 일이 아니란 말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 그러한 기념일들에 남들처럼 대접받지 못한 것에 대한 서운함은 그야말로 어렸었기에 그리고 나와 나의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눈에 보였기에 마음에 남아있었던 거 같다.

그에 반해, 우리네 부모님들은 본인들의 서운함을 표현하시기보단 늘 그러한 기념일들을 책임지시고 베푸시며 사셨다. 어린이날이 되면 자녀들에게 작은 무언가라도 선물로 주어야 했으며 또 어버이날에는 나이 든 부모님들께 정성을 다하여 대접을 해 드려야 했다. 정작 본인들도 부모님들이셨는데 어린 자녀들은 아직 능력이 되지 않기에 무언가로 보답을 받을 수 없었고 삶의 어중간한 위치에 놓여있었기에 항상 위아래로 늘 주고만 살아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내가 바로 그러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물론, 아직 미혼이기에 어린 자녀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신 어린 조카들이 있고 그리고 부모님이 계시기에 이제 나도 어중간한 어른이 되어 위아래로 베풀어야만 하는 나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5월이 되면, 우선은 아이들의 시험이 끝났다는 후련함이 먼저 찾아오고(저는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니까요.) 그리고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에 대한 걱정이 찾아온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매년 의례상 주고받는 꽃을 드리기도, 또한 뻔한 선물로 마음을 표현한다는 것도 영 내키지 않기 때문에 고민이 많아지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같이 살고 있는데 꼭 일일이 다 챙겨야 하나?'라는 마음이 들 때도 있음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게으름이 피어오를 때, 철없는 귀차니즘이 생길 때마다 나는 어린이 날과 성탄절에 받았던 산도 과자와 새알 초콜릿을 떠올려 본다. 넉넉지 않았던 형편에서도 우리 부모님은 항상 우리들에게 선물들을 챙겨주셨다. 남들처럼 장난감이나 인형 같은 선물들은 아닐지라도 어린 우리들을 위한 날과 예수님의 탄생일에 우리들에게 선물로 사랑한다는 마음을 표현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본인들을 위한 날에는 아무것도 받지 못하시곤 했었고, 그러면서도 어린 우리들에게 어떠한 서운함도 티 내지 않으셨다. 이제 나이가 많이 드시고 다시 어려지신 부모님들이 우리에게 어버이날에 대한 서운함을 표현하신다면 그건 지난 세월, 자식들에게 헌신만 하셨던 그들의 당연한 요구이며 지당한 외침일 것이라고 이제 어중간한 위치의 놓여있는 지금의 나는 생각해 본다.

'받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일까? 아니면 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일까?'라는 질문을 던져 보았을 때, 나는 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그리고 아마도 그것은 어린 시절 작으나마 늘 베푸시던 나의 부모님의 영향일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받는 일도 무척이나 기분 좋은 일이지만 그 후, 다시 보답을 반드시 해야만 한다는 몹쓸 부담감이 생기는 것은 성격상 어쩔 수가 없다. 그에 반해, 내가 무언가를 주는 일은 딱히 부담감도 생기지 않으며 즐거운 기분이 들게 하는 일이다. (상대방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데... 그저 나 자신의 만족감만 생각하는, 어쩌면 이기적인 행위일 수도 있을 거 같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일은 예전 나의 한 제자가 지적했었던 나의 타고난 성격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밸런타인데이를 앞두고 있었던 어느 날, 불현듯 나의 학원 아이들과 조카의 유치원 친구들을 위해 초콜릿을 선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냥 사서 선물로 주는 것보다는 정성스레 포장을 하고 예쁘게 꾸며서 주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았다. 그러나 그 많은 양을 혼자서 다 할 수는 없었기에, 나의 제자 중의 단짝으로 지내던 여자아이 두 명을(그 당시, 중학생들이었습니다.) 먹거리로 유혹하여 강제 노역을 시키게 되었던 것이다. 부모님들께 허락을 받고 늦은 시간까지 열심히 포장을 하고 장식을 하다가, 정작 이 일을 벌인 내가 먼저 지쳐서 푸념과 한탄을 하기에 이르렀다.

 "얘들아, 왜 나는 매년 기념일마다 이렇게 생고생을 하고 있을까? 그냥 간단하게 돈 주고 사던가 안 챙겨도 그만인데.. 왜 나는 매년 늦은 밤까지 사서 고생을 할까나?" 이런 나의 궁시렁에 무념무상으로 포장을 하고 있던 한 여자아이가 나의 뼈를 때리는 말을 던지는 것이었다.  

"선생님!! 정말 몰라서 말씀하시는 거예요? 쌤, AB형 이잖아요."

'아하! 그렇군... 올~~ 자식, 천잰데..' (성격 이상하단 얘기를 저렇게 순화해서 말하다니, 역시 나의 제자로군..) 그리고 그렇게 나는 조용히 남은 리본을 묶고 있어야만 했다.

1년 365일 동안(딱히 5월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수많은 기념일들을 가지고 있다. 개인의 기념일, 혹은 나의 가족의 기념일 말고도 우리는 여러 기념일들을 지나치면서 살고 있다. 누군가는 그러한 날들이 상술이라고 하기도 하고 우리나라와는 전혀 관계없는 외국에서 들어온 날들이라고도 하며, 또 어떤 이는 그저 특정 사람들에게만(연인들 같은) 한정된 날들이니 모르고 넘어가도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기념일들을 (전부는 아니지만) 챙기는 것을 좋아한다. 그게 나의 성격 탓일 수도 있지만 (AB형 이니까요... 과학적 근거는 없어요.) 나처럼 마음을 표현하는데 서툰 이들에게 그러한 기념일들 만큼 은근슬쩍 고마움을 표현하기 더 쉬운 방법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나의 그러한 챙김들이 누군가에겐 상술이고 누군가에겐 쓸데없는 행위일지라도 나는 기념일을 핑계로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감사한 분들에게 작은 보답으로나마 나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말로는 쑥스러워 못하지만 작은 챙김들로 나는 그들에게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라고 소심하게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나의 고백들이 받는 이들에게 작은 행복과 즐거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소망이기도 한 것이니 부담 갖지들 마시고 기꺼이 받아주시면 정말로 감사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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