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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oung May 05. 2019

여전히 성장 중...

Reddish Face (민망함은 왜 나의 몫인가?)

요즘 들어 많이 듣게 되는 말이 있는데  그건 바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연을 맺을 때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유머 코드라는 것이다. 남들이 듣기에는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웃어야 하는지 모르는 개그도 웃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는 평생을 지내도 심심치 않지만, 나에게는 배꼽 빠지게 웃긴 일이 같이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 느낌도 없다면 그 얼마나 뻘쭘하고 민망한 일이겠는가. 고로 내가 '쿵'하면 '짝'하고 받아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거야말로 나의 인생에 있어서 크나큰 행복이고 축복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개인과 개인 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이 모여있는 가운데에서도 유머는(웃음 혹은 웃긴 상황들은) 매우 중요한 우리 인생의 행복 촉진제이며 맛을 내주는 양념이다. 서먹서먹한 분위기 속에서 누군가의 민망한 혹은 어색한 개그 한마디가 분위기를 완전히 바꿀 수도 있으며(물론, 더 험악해지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그것 또한 오랫동안 기억 속에는 남게 될 테니 그것도 유머는 유머다.) 사람들 사이의 간극을 메꿀 수도 있는 것을 보면, 유머는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없어서는 안 되는 삶의 고급 기술일 것이다.


나의 큰언니는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결혼을 했다. 그리고 언니는 결혼한 그 해, 예쁜 여자 조카를 나에게(우리 모두에게) 안겨주었다. 내 남동생이 태어났을 당시는 나도 아기였기에 기억이 없었으므로 그렇게 갓난아기(첫 조카)는 내 생에 있어서 처음이었다. 물론, 그 뒤로 무려 다섯 명의 또 다른 조카들이 태어났지만(둘째 언니, 셋째 언니의 자녀들 포함입니다.) 첫 조카를 만났을 때의 감동은 지금도 여전히 잊히지 않고 생생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웃기기도 또 민망하기도 한 기억으로도 우리 모두에게 남아있다.(우리의 큰 언니는 임신이라는 강력한 유머 코드가 있었던 것이다.)

큰언니가 만삭이 되어 출산이 임박하던 그때는 가을이 막 시작되던 시점이었다. 언니는 산후조리를 친정에서(우리 집에서)하기로 했었기에 우리 모두는 한 집에서 복작거리며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당시,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국제적인 스포츠 경기가 한창 열리고 있었기에 우리 모두는 너나 할 것 없이 매일매일 TV 앞에 모여 함께 응원하고 소리 지르며 열광적인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마도 축구경기가 열리고 있었을 것이고 우리 식구 모두는 TV 앞에 모여 앉아 열정적으로 응원을 하면서 열광들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나라 선수가 득점을 올리게 되었고 우리 모두는 얼싸안고 환호하며 목이 쉬어라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꽤나 길었던 흥분이 가라앉고 다시 TV로 집중들을 하던 바로 그 순간, 뒤에서 큰언니가 여전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우리 모두는 큰언니가 '저렇게 축구를 좋아했었나?'하고 뒤를 돌아보았는데.....

"오 마이 갓쉬!... 애가 나온다!!!!"

큰언니의 비명소리는 축구 때문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순간, 우리 모두는 발을 동동 구르며 어찌할 바를 몰라 서로 비명만 지르고 있었고 큰언니는 배를 잡고 괴성을 지르고 있었으며 정말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환희와 충격과 아비규환 속에서는 우리는 우리의 조카를 만나고야 말았다. (큰언니는 급하게 택시를 불러 병원으로 실려갔고 무사히 출산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정신없던 하루를 마무리하고 집에 돌아온 우리들은 그 어이없던 순간을 떠올리며 말없이 서로 웃음을 터트렸고 그 순간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기억 속에서 한 편의 코미디로 남아있다.

 

고등학생 시절, 우리 학교에는 이상하리만치 특이한 선생님들이 많았었다. 그중 기억에 남는 선생님 두 분이 계신데, (물론 저희 담임선생님들이 가장 기억에 남지만 담임선생님들은 다음 기회에..) 먼저, 내가 정말 어려워했던(싫어했던) 화학 과목의 선생님이 기억에 남는다. 목소리가 성우 뺨을 치실 정도로 멋지던 선생님이셨고 (이 선생님께서 방송을 하시면 한 편의 영화를 방송으로 듣는 느낌이었다.) 아이들에게도 꽤나 인기가 있었던 선생님이었다. 나도 처음 선생님을 만났을 때 너무나 멋진 목소리에 혹해서 '화학을 공부해 볼까?'라는 헛된 꿈을 꾸기도 했었으나 그 환상은 선생님의 농담 같지 않은 농담 한마디에 날아가 버렸다.

나른하고 잠이 솔솔 오던 어느 오후, 당연히 화학 시간이었다. 그날은 그 좋던 선생님의 목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렸고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졸음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 상황을 알아차린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의 잠을 깨우고자 여쭤보지도 않았던 선생님 자녀들의 이야기를 하시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는 이야기를 우리들에게 들려주시게 되는데...

"내가 딸이 두 명인데 첫째 딸 이름이 우연이야. 우연히 생겨서, 그리고 둘째 딸 이름은 필연이란다. 이유는 알겠지?"

순간, 우리 모두의 머릿속에서는 아마 똑같은 생각이 지나갔을 것이다.

'.... 오 마이 갓쉬! 갑자기 추위가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인가? 어디서 웃어야 하는 걸까나?.......'

아무리 목소리가 좋으셔도 나, 그리고 대부분의 아이들과의(듣는 우리가 더 민망해진) 유머 코드는 전혀 안 맞는 선생님이셨던 것이다.

또 다른 선생님 한 분은 사실 수업을 들어본 적은 없다. 아마도 윤리 선생님이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고등학교 내내 단 한 번도 나와는 인연이 닿지 않았던 선생님이셨다. 말수도 없으실뿐더러 행동 자체도 크지 않으셨던(발소리도 안 내셨다.) 정말로 조용하신 분이셨는데,  이 선생님께서 유명하신 이유는 바로 선생님의 별명 때문이었다.

예전 드라마 중에 '고개 숙인 남자'라는 드라마가 있었고(이 드라마는 저도 사실 잘 모릅니다. 워낙 오래된 드라마여서 저도 본 기억이 없습니다.) 선생님께서 걸어 다니실 때 늘 고개를 살짝 숙이고 다니시는 습관이 있으셔서 우리 학교 이전 다른 학교들에서도 별명이 '고개 숙인 남자'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별명은 줄임말로 발전해서 아이들 사이에서(심지어 선생님들 사이에서는 암암리에) 그 선생님은 멀쩡한 본명을 놔두고 '고숙남'선생님으로 불리시게 되었던 것이다.

여름방학을 얼마 안 남기고 있었던 어느 청소시간, 그때는 마침 교생실습을 나온 예비 선생님들도 함께였던 시기였었다. 우리들 모두는 각자 맡은 청소구역들을 청소하고 있었고(당연히 대충대충 하고 있었을 겁니다.) 선생님들께서는 그런 우리들을 감독하시면서 학교 이곳저곳을 관리하고 계셨다. 나는 교문을 지나 학교 건물에 이르는 길을 친구와 함께 청소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때 "딩동댕동"하고 방송 알림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곧이어 청소를 하고 있었던 전 교생을 비롯하여 선생님들까지도 마치 '얼음땡' 놀이를 하고 있었던 거 마냥 각자 자리들에서 얼음들이 되고 말았다.

"교내에 계시는 '고숙남'선생님께서는 교무실로 속히 와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교내에 계신 '고숙남'선생님께서는 교무실에 전화가 와 있으니 속히 교무실로 와주십시오."

바로바로 순진한 교생 선생님의 청아한 목소리였다. 교생 선생님은 타지에서 온 선생님이었고 '고숙남'이 선생님의 본명이라고 착각을 했었던 것이다. (아마, 누군가가 교생 선생님께 방송으로 '고숙남'선생님을 찾아보라고 시켰을 것이고 교생 선생님은 본명 확인 없이 곧이곧대로 방송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어찌할 바를 몰라 얼음들이 되어있던 그 순간, 빨개진 얼굴의 윤리 선생님이 고개를 더욱 숙이시고는 우리의 옆을 빛의 속도로 지나가시고 말았던 것이다.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선생님들까지도) 크게 웃을 수는 없었기에 입술을 꼭 물고는 눈물을 참아야만 했었다. 우리 모두를 한방에 보내버린 교생 선생님 유머감각 대박 짱!! (더불어 하나 궁금한 점은, 과연 교생 선생님은 '고숙남'선생님께 혼이 났을까?)


한 사람만을 위한 유머감각이든 모두를 위한 유머감각이든 우리를 웃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나 훌륭한(인생에 꼭 필요한) 기술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나와 우리 모두는 많은 사람들은 아닐지라도 누군가(단 한 명일 지라도)에게는 분명 유머감각이 있는 사람으로 보일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우리 모두가 꼭 각자만의 '쿵''짝'을 잘 찾아가기를, 혹은 찾았기를 바래본다. 나의 유머에 눈물 나게 웃어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나는 분명 나름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나름 잘 살고 있다고) 기꺼이 자신해 볼 수도 있을 거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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