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태고적부터 자유롭게 하늘을 활보하는 새를 보며 날고 싶다는 욕망을 키워왔다. 그리고 하늘로 날아오르기 위해 새를 흉내내기도 했다. 그러나 새를 쫓아 두 팔로 날갯짓을 하며 하늘로 뛰어올랐던 모든 인간은 결국 날아오르지 못하고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이유는 너무나 분명하다. 사람이 날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와 방식은 새가 날기 위해 필요한 그것이 전혀 다른 차원의 무엇이기 때문이다. 날아오르고 싶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새의 날갯짓이 아니다. 공기역학을 이해하고, 이 이해에 기반해 만들어진, 인간만을 위한 무엇이다. 우리는 이것을 비행기라고 부른다.
“저급한 자는 베끼고 위대한 자는 훔친다.” - 피카소
피카소에게 모방은 창작의 시발점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비록 다른 화가의 작품으로부터 영감을 얻었지만 그는 작업에 자신만의 시각과 통찰을 담아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창조’해냈다.
비즈니스의 세계에서도 이런 사례를 종종 발견할 수 있다. 경쟁사의 장점과 단점을 분석해 나의 제품과 실행에 반영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고, 어떤 면에서는 시행착오를 줄이고 성공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반드시 수행되어야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왜'를 정확히 이해하고 나의 비즈니스나 고객에 맞춘 추가적인 고민과 실행이 더해진다면 성과가 커지고, 경우에 따라 달라진 방법론에 기반해 더 큰 성취를 이뤄내기도 한다. 피카소는 이처럼 모방에 추가적인 고민과 재해석이 더해져 완전히 내재화된 결과물을 ‘훔친다’라고 표현했으며 비즈니스의 세계에서는 이것을 ‘벤치마킹’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그러나 선도업체의 어떤 실행을 큰 고민이나 의심 없이, 그대로 ‘베끼는’데 급급한 회사들도 있다. '왜'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 없이 겉모습만 따라 하면 대부분 시간과 자원만 낭비하는 실패로 이어진다. 운이 좋아 단 기간의 작은 성취를 이뤄내더라도 이것을 지속 가능한 큰 성취로 만드는 건 쉽지 않다. 우리는 이것은 ‘카피캣’이라고 부른다.
최근 라인이 베트남에서 서비스하는 ‘GET IT’이라는 중고거래 서비스가 당근 마켓을 그대로 베껴서 만들어 논란이 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나는 이 서비스의 성공에 긍정적이지 않다. 단순히 경쟁 서비스를 모방했기 때문이 아니다. 어떤 추가적인 고민이나 노력을 통해 경쟁사의 제품을 이해하고 재해석해 더 나은 제품으로 만들려는 흔적을 발견하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성공 또는 실패와 무관한 정서적인 관점에서도 경쟁 서비스를 벤치마킹하는데 그치지 않고 ‘GET IT’ 만의 고민과 노력을 담아 더 나은 제품을 만들려는 시도가 느껴졌다면 이처럼 여론이 부정적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안타까움도 있다.
역설적으로, 어떤 프러덕트가 누군가 베낀다고 해서 베껴지고 그래서 베낀 회사가 원래 회사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라면, 그 프로덕트뿐만 아니라 그걸 만든 사람의 능력과 시장에 대한 통찰력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결국 남들이 다 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골라서, 남들보다 더 잘할 수도 없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근 마켓 팀의 치열한 고민과 투쟁의 시간을 고려한다면, 이번에는 쉽게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지 않다.
김재현 대표님의 포스팅에서 크게 공감했던 내용을 발췌했다.
“당근 마켓의 현재 화면과 기능들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2015년 7월 판교 장터라는 이름으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여러 번의 실패, 시행착오를 통한 개선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작은 버튼 하나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이것이 핵심이다. 공기역학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새의 날개를 본떠서 날갯짓을 시도한 인간은 모두 추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