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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 리처드 플래너건 지음/ 김승욱 옮김


사랑도 잃고 전우도 잃은 전장에서 삶을 짓누르는 떠안고 살아야만 자의 트라우마를 담아낸 최고의 소설





그 해 여름 7월.

충청도 j읍에 유폐된 나는

호구지책으로 냉면 공장에서 일을 했다.

남들은 일주일도 버티지 못하고 도망간다는 제면실에서 무려 60일 동안 일을 했다.


나의 일은 각종 냉면 원료들을 정확히 계량하여 배합기에 넣는 일이었다.

고구마 전분 3g, 소맥 0.6g, 알파 메밀 1.28g을 눈금 저울에 정확히 달아서

소금 4g과 알칼리 4g의 혼합된 물에 넣은 후 

2등 밀가루 3포와 함께 배합기에서 6분 동안 돌리면 실뱀처럼 면발이 뿜어져 나왔다.


한여름의 제면실 기온은 35도까지 치솟았고 습도는 90%를 육박했지만

나는 이 일을 오전 8시 50분부터 저녁 10시까지 

묵묵히 수행했다.


그때는 극한의 노동이 나를 살리는 유일한 길이었다.


이처럼 사람을 살리는 노동도 있지만 사람을 죽이는 노동도 있다.



호주 출신의 작가인 ‘리처드 플래너건’은 

‘먼 묵으로 가는 좁은 길’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포로로 잡혀 

타이에서 미얀마까지 415km에 달하는 

죽음의 철도 ‘라인’ 건설에 강제 동원된 호주 군인들의 생환기를 담고 있다. 


2014년 맨부커상 수상자인 리처드 플래너건과 소설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폭우가 끊임없이 쏟아지는 밀림 속에서 

울창한 나무와 잡초 그리고 암석 지대를 거의 맨손으로 헤치고 깨뜨리며

망치와 곡괭이, 정, 삽만으로

'지옥의 구간'을 건설한 호주 출신의 전쟁포로들의 극한적인 강제노동을 다루고 있다.


주먹밥으로 연명한 낡은 육체는 죽은 매미처럼 말라비틀어졌고 

일본군인들의 잔혹한 폭력이 일상화된 '광기의 정글' 속에서 말라리아와 콜레라, 뎅기열과 

각종 감염병으로 죽어갔다.


이 소설은

포로수용소의 지휘관 역할을 했던 '도리고 에번스' 대령과 다양한 인물들의 시각을 통해

참혹한 강제노동의 참상을 섬뜩할 정도로 세심하게 묘사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일제가 아시아 지역에서 자행한 무차별적인 학살, 생체 실험, 위안부 등의

전쟁범죄들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

어쩌면 이 소설은 한 권의 역사 교과서 인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소설의 p391에서 p402에 이르는 한 조선인에 대한 이야기는 가슴이 너무 아파다.

"난 조선인이 아니야 난 일본인도 아니야 난 식민지 백성이야 내 50엔은 어디 있어?"라고 외치며 전범으로 몰려 억울하게 교수형을 당한 조선의 청년의 슬픔.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는 조선인 BC급 전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작가는 약 12년간 '죽음의 철도'에 대한 각종 기록물과 사료 조사, 생환자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소설의 뼈대를 만들어 완성했다. 특히 실제 일본군 전쟁포로로 이 철도 공사에 참여했던 작가의 아버지의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속표지에 실린 '335번 포로'는 바로 자신의 아버지에게 바치는 헌사이다.  


"기억이 진정한 정의"라는 소설 속 문장처럼 

기억은 기록되어야 하고 그 기록은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심판의 거울이다.


또 다른 이야기의 한 축인 '도리고 에반스'의 사랑 이야기는 이 소설의 덤이며 

특이하게도 일본의 유명 하이쿠 시인인 '바쿠''잇사'의 작품이 소설의 목차를 대신하고 있으며 소설의 중간에 하이쿠 시들을 삽입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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