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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치마를 입은 아이

- 이경란


이 소설집은 빨간색의 집합체이다.


빨간 지붕 아래 다락방에서 빨간 국물을 먹고 바퀴 달린 빨간색 의자를 타며 붉은 홍차를 마셨더니 발등이 붉어졌다. 빨간 구두를 신고 빨간 치마를 입고 새빨간 루즈를 바른 소녀는 붉은 피를 흘리고 붉은 단풍잎이 질 때 끝순이 할멈은 폐렴에 걸렸다.


소설 곳곳에 배치된 빨강은 이야기의 주목도를 높이고 묘한 흥분감을 조성하며 작가의 주제의식을 밝고 강하게 드러낸다. 빨강은 이 소설의 색조등이다. 전체 소설 8편 중 4편에 빨강이 파편처럼 분산되어 나타나고 슬그머니 사라진다.


이 소설집은 소녀와 여자 그리고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이다. 


시장통 공중변소에서 늙은 남자는 빨간 노끈으로 문을 잠그고 분뇨보다 독한 입냄새와 구더기보다 더러운 손으로 빨간 치마를 입은 아이를 유린했다. 그 후 다시 찾은 시장통, 늙은 남자는 노인이 되었고 소녀는 여자가 되었다. 아득한 기억과 현재의 시간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구분이 없다. 무엇이 과거이고 무엇이 현재인가? 그날의 상처는 여전하다. 이 단편에 구사된 억센 경상도 사투리는 정겹기보다 기괴하고 공포스럽다.


라일락 나무 아래 연두의 가족은 행복했다. 꽃이 피면 엄마가 지은 다홍치마와 녹색 저고리는 덩달아 너울너울 춤을 추었고 어린 연두는 행복했다.


하지만 라일락 나무를 벗어난 연두는 불행했고 생과 말을 잃었다. 우연히 낳은 아이는 라일락 나무 아래 탯줄만 남긴 채 빼앗겼고 자신이 데려온 팝콘이라 불렀던 늙은 개도 이웃 남자들의 먹잇감이 되었다. 세상의 폭력 앞에 연두는 모든 것을 잃었다. 

그 폭력은 소녀에서 여자 그리고 할머니로 이어진다. 메르센, 끝순이 할머니는 사람 속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얻고자 사람에게 다가갔지만 도리어 집단에서 배척당한 소수자로 전락한다. 이미 우리 생활 곳곳에서 일상화된 왕따 문화는 남보다 뒤떨어진 사람을 더욱 배제하고 무시한다. 


다정과 배려보다 배척과 무시가 한 인간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메르센’에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놈의 탁구와 단풍놀이가 무엇인지. 애달픈 사투리로 하소연하는 끝순이를 끝내 밖으로 밀어내고 그들만이 즐거움에 빠져 있는 장면을 생각하면 슬픔이 치밀어 올라온다.


이 소설집은 남과 여에 관한 사랑 이야기이다.


애초 달짝지근하거나 지고지순한 연애담은 찾아볼 길 없고 오직 교환적 가치로 일관된 계산된 관계만이 애정의 주종을 이루고 있다. 창문 없는 고시원이나 편의점 알바로 쫓겨나지 않기 위해 남자의 성적학대와 폭력을 견뎌야 했다. 남자는 안락한 집과 정기적인 현금을 제공했고 여자는 밥과 잠자리를 제공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남편은 종신직 가정부를 나는 피부양자 자격을 원했다’는 말에서 알 수 있다.


사랑이란 거래조건을 감춘 껍데기에 불과하며 가난이 주는 공포는 남편의 부재와 폭력보다 더 무서운 법이다. ‘라면과 홍차와 미자’ 편의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 그것을 말한다.


더욱 치졸한 남녀 간의 사랑은 ‘페어웰, 스냅백’ 편에서 한없이 가볍고 가벼운 관계의 끝을 보여준다. 이별에 대한 상호 간의 예의는 이미 사라지고 여자에게 투자한 현물을 회수하고자 하는 지질한 남자의 계산방식과 이별과 동시에 새로운 남자를 끌어들이는 여자의 순발력은 이 시대의 잘못된 사랑 방식을 보여준다.


그러나 ‘연두’ 편의 애자와 사내의 사랑은 눈물겹기도 하다. 중풍으로 쓰러진 아내, 굳은 혀 속으로 밥과 국을 떠먹이고 젖은 아랫도리를 씻어내며 아내 애자를 위해 염색공장에서 잃은 손등으로 곱고도 고운 다홍치마와 초록빛 저고리를 짓는 사내. 그리고 아내와의 어설픈 애무는 마지막 작별의 의식이다. 젊은 사랑보다 사내가 보인 늙은 사랑이 우주와 같은 깊이와 한없는 끝을 보여 준다. 


그리고 생기발랄한 이런 사랑놀음도 있다. 돈벌이도 없고 팬티도 없는 남자는 ‘아내에게 사육당하며 무대 아래에서 주춤거리는’ 인간동물에 불과하다. 약속한 기한 내에  박사 학위를 따고 교수 부인이라는 칭호를 바치기 위해 사육당하는 남자. ‘요일 팬티 7종 세트’는 여자가 주는 몇 푼의 용돈에 의존한 채 인생의 주체를 잃어 버린 남자의 이야기이다. 잃어 버린 팬티를 찾듯 자신의 인생을 찾기 위해 코만도처럼 동분서주하는 남자. 그 는 달콤한 침대 위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까? 


이 소설집은 버림받은 자들을 위한 연대의 노래이다. 


미자는 아들에게 버림을 받았고 루프탑의 노인은 며느리에게 버림을 받았다. 미자와 노인에게 라면을 끓이고 밥을 먹이며 변 냄새가 나는 몸을 씻긴다. 


버림 받은 자는 버림받은 사람에게서 구원을 받는다. 구원이란 나라님이나 천상의 절대자가 아니라 동병상련의 마음의 가진 버림받고 배제된 사람만이 행한다는 사실을 ‘라면과 홍차와 미자’ 편에서 그리고 ‘오늘의 루프탑’에서 잘 보여준다.


학교에서 밀려 나온 메르센의 엄 씨는 ‘소수에도 그 자신 말고 남들 다 갖는 약수 1이 있어요 무시할 일이 아니라고요’라며 주변으로 밀려 나온 끝순이를 변호한다.


이경란 소설가는 작가의 말에서 ‘옷핀을 조립하듯 문장과 인물들을 다독거리고 보살펴서 세상에 풀어놓는다’고 밝혔다. 소외와 배제,남성들의 폭력, 생의 절망과 공존의 방식 등 다양한 주제를 천착하고 있는 소설집 ‘빨간 치마를 입은 아이’는 작가가 갖고 있던 세계관과 경험 활동의 소산들을 잔뜩 풀어놓았다. 


그 라일락 꽃이 핀 이야기의 마당에서 빨간 치마를 입은 아이를 많은 사람들이 만나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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