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 히가시노게이고 장편소설, 양윤옥 옮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기묘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가슴 훈훈한 이야기

살다 보면 그런 날이 있다. 앞뒤가 꽉 막혀 어디로 가야 할지 종 잡을 수 없는 오리무중의 인생살이.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 가늠하기 힘든 불안의 생애. 

무슨 일로 여기에 왔는지, 도대체 나는 누구인지. 어디로 나는 가고 있는 것인지. 존재의 이유와 의미에 대한 불가사의한 의문은 고금부터 이어진 난제 중의 난제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리송한 인생의 길에서 허둥지둥되며 갈팡질팡한다. 한 잔의 독주와 깊은 한숨으로 해소되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인생사. 

자신의 가진 고민과 고뇌가 세계 최고의 수수께끼가 될 때 우리는 절대자를 찾곤 한다. 

그렇다. 우리는 용한 무당님 치마 밑에 숨겨둔 천기라도 도둑질하여 이 곤궁한 삶의 늪에서 빠져나가고 싶어 한다. 아니면 부처 혹은 하느님, 알라의 신을 찾아 길을 묻고 길을 달라고 간청한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의지처와 조력자가 필요하다. 결코 혼자 만의 힘으로 살아갈 수 없는 지구별의 삶이다.




내게도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 등장하는 우편함이 있다면 내 비밀과 고민이 담긴 편지를 보내고 싶다. 

삶의 고민마저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 홀로의 시대에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지극히 고전적인 풍미가 느껴진다. 어쩌면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초코파이 같은 정'이 아닐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가벼운 답장이 아닌 진지하고 때론 무겁고 단호하게 일침을 내리는 방식은 타인에 대한 진정한 배려이다. 진정 누군가가 나만을 위해 정성 어린 답장을 보내 준다면 이 막막한 생을 향해 돌진할 용기가 생기지 않을까?


"당신의 노력은 절대로 쓸데없는 일이 되지는 않습니다. 마지막까지 꼭 믿어 주세요. 마지막의 순간까지 믿어야 합니다"라는 '나미야 백화점'의 답신은 불안과 절망 속에 갈팡질팡하는 인생들에게 수리수리 마하수리 같은 주문을 건다. 그리하여 별 볼 일 없는 인생들은 삶의 기적을 일으킨다. 그렇다. 누군가가 나를 응원해주고 용기를 준다면 삶은 다시 한번 살아볼 만할 것이다.  


'나미야 백화점'은 또 다른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는 '포털'과 같은 곳이다. 다소 SF적인 기묘한 설정이지만 이 장치는 소설의 재미를 더욱 배가시킨다. 단순한 인생 상담이 아닌 천기를 누설할 정도로 미래의 일까지 점지해 주는 전지전능한 상담자는 절대자 그 이상이다. 


그야말로 꿈과 희망이 없는 사람들에게 절망하지 않는 정신 승리 법을 전수하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의 저자 '히가시노 게이고'는 일본 추리계 소설의 독보적인 존재이다. 쉽고 단순한 문장으로 구성돼 있어 술술 페이지가 넘어가고 재미와 흥미를 마술처럼 부려 금방 읽을 수 있다. 

그렇다고 단순한 이야기라고 판단한다면 큰 오산이다. 그물망처럼 엮인 인간관계의 복잡 미묘함을 추리 소설가답게 아주 짜임새 있게 서술해 두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조선 여성 첫 세계 일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