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천안의 북페어를(사진 에너지경제)
천안은 빵의 도시이자 춤의 도시다. 누군가는 그리 말한다. 그렇다면 이제는 책의 도시도 되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오래전부터 책방을 하며 그런 상상을 해왔다. 책을 읽는 도시, 책으로 토론하고 사유하는 시민들, 그리고 독자와 책이 만나고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새로운 책의 축제.
그 상상의 이름을 나는 이렇게 붙여보았다. ‘천안만세책터’. 책(Book)과 장터(Fair)가 만나는 열린 공간, 그리고 독립의 정신과 독립출판의 흐름이 만나는 축제이다.
천안에는 매년 가을이면 ‘북페스티벌’이라는 이름의 책 축제가 열린다. 천안시 도서관본부가 주관한 행사다. 이 축제는 독서문화의 확산, 가족참여형 프로그램을 통한 세대 간 ‘책 경험’ 제공, 다양하고 풍성한 공연 등으로 많은 성과를 얻었다.
하지만 넓고 깊은 책의 전시는 빈약했고 청년과 성인의 참가는 부진했다. 다양성과 실험성을 가진 독립서적들은 실종되었고 ‘텍스트 힙‘을 주도하는 젊은 여성들을 위한 콘텐츠는 전무했다. 무엇보다 천안이 갖는 독립운동의 역사성을 책 축제로 연결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
그래서 나는 ’ 천안만세책터‘ 를 상상한다.
이제는 지난 북페스티벌의 성과와 오류를 받아 안고 더 좋은 책 축제를 위해 행정주도의 책 축제를 벗어나 민간과의 협업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미 민관 협력방식은 전주와 군산, 제주, 광주 등에서 검증된 성공적인 모델이다. 이제 독립서점과 지역문화인들이 기획을 주도하고, 지자체는 이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책 축제의 모델을 만들어 내고 있다.
천안도 행정 주도의 단발성 행사를 넘어서야 할 때다. 행정은 공간 인허가와 예산, 홍보를 맡고, 지역 예술가, 독립서점, 작가, 출판인들이 기획과 운영의 주체가 돼야 한다.
우리 천안은 개성만점의 독립서점과 지역의 이야기를 발굴하는 출판사, 기성작가와 독립출판 작가들도 다수 있다. 이런 인적문화자원을 최대한 활용하여 행정과 민간이 협업한다면 천안만의 독창적인 책 문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축제를 만들고, 시민이 자연스럽게 참여하며, 천안의 역사와 정신이 콘텐츠로 녹아드는 축제가 필요하다.
그게 바로 ‘ 천안만세책터’의 철학이다.
무엇보다 천안은 다른 도시와 달리 ‘항일과 독립’의 상징성이 강한 도시이다. 독립기념관, 유관순 열사 기념관, 아우내장터 등 상징적 장소들이 우리 곁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이런 역사적 공간과 ’천안만세책터‘와 연결될 때 천안만의 독창성과 정체성을 가진 책 축제가 된다.
지금까지 책 축제가 열린 천안시청 버들광장보다는 독립기념관이나 아우내 장터를 ‘천안만세책터’ 가 열리는 장소로 활용하거나 상징적 차원에서 유관순 체육관을 이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올해 10월, 또다시 시청 앞 버들광장에서 ‘북페스티벌’이 열린다고 한다. 물론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이제는 묻고 싶다. 천안만의 책 문화는 무엇인가?
우리는 이 도시에서 어떤 책 문화를 만들고 싶은가?
나는 오늘도 가문비나무아래 책방에서 그 질문을 되새긴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해본다.
우리가 한 번 ‘천안만세책터’ 축제를 만들어보자고. 상상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