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너무 시끄러운 고독

- 체코의 국민작가 보후밀 흐라발 필생의 역작

지하실에 스스로를 감금한 한 남자의 끝없는 노동과 고뇌. 절망적이고도 시끄러운 세계의 고독 속에서 실존적 해방을 꿈꾼 어느 늙은 몽상가의 불꽃같은 독백!



참 놀라운 소설이다.

카프카와 밀란 쿤데라 이후의 새로운 체코 소설가를 만나게 되었다.

35년째 폐지 더미 속에서 생활하는 지하 노동자의 삶을 이토록 집요하게 관찰하여 세밀하게 표현하는 대작가의 능력은 탁월 그 이상이다. 어쩌다 이런 위대한 소설가를 그동안 만나지 못했을까?

현대 소설은 그동안 끊임없는 형식의 파괴와 내용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세계사적 흐름을 보여주었다.

파괴는 새로운 형식의 창조이며 실험적인 시도는 독자들의 안일한 정신을 일깨우고 감동은 준다. 


소설 읽기의 즐거움은 형식의 파괴에서 오는 내용의 충만함에서 완성된다.
체코의 국민작가 보후밀 흐라발


"태양만이 흑점을 가질 권리가 있다"라는 괴테의 인용구를 속표지에 달고 전체 8장으로 구성된 이 소설은 한 인간의 절대적 고독 속에서 전개되는 반복적인 노동의 신성함을 느끼게 하며 사유와 상상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는 마치 현실과 비현실적인 세계가 교차되는 듯한 마술적 경험을 독자들에게 제공한다.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 내려오는 지하 작업장에서 주인공은 단지 폐지를 압축해서 꾸러미를 만드는 단순노동자가 아니라 동서양의 철학과 문학, 종교, 미술 등을 섭렵한 박학다식의 독서가이다.

그는 세상에서 정치적으로 버림받은 프라하의 석간신문, 팸플릿, 잡지 또는 다양한 책들을 단지 재활용 용지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어둡고 습한 지하 작업장에서 읽고 읽어서 새로운 작품으로 재창조한다. 

오직 고독의 영역에서 일구어 내는 집념의 소산들이다.

 그의 지하 작업장에 플라톤과 칸트, 예수와 노자, 고흐가 방문했고 맥주를 함께 마셨다. 


수많은 책들의 인상적인 문구들이 인용되고 주인공에 의해서 새롭게 해석된 의미들이 날개를 달고 책과 책 사이를 배회한다. 


어떻게 보면 한 애서가의 독서 편력기를 다루고 있는 듯 하지만 체코 프라하의 암울한 정치 현실과 체코를 점령한 독일군에 대한 반감과 저항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더구나 체코가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전환된 이후의 체제를 상당히 풍자적으로 그리고 있다. 

독서 편력과 현실에 대한 풍자. 그리고 블랙 코미디와 같은 웃음의 소품들이 긴장된 문장들 사이에서 은근슬쩍 재미를 주고 있다. 


무지한 나에게 다소 낯선 '보후밀 흐라발'이지만 그는 카프카와 밀란 쿤데라와 견주어도 절대 문학적 가치가 뒤떨어지지 않는다. 도리어 카프카는 유대인 출신의 독일어를 사용했고 밀란은 프랑스로 망명하여 프랑스어로 창작하였다. 하지만 '보후밀 흐라발'은 프라하의 봄 이후 1989년까지 자신의 작품이 출판금지 당했지만 결코 조국 체코를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평론가들은 그를 "체코 소설의 슬픈 왕"이라고 부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달의 영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