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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 가쿠다 미쓰요 지음, 권남희 옮김

돈과 쾌락 자존감에 대한 현대인의 딜레마를 실감 나게 쫓는다




종이달.

가짜와 짝퉁의 이미지 속에서 기쁘게 웃는 인간들.

그것이 진짜 달인 것처럼 행복한 미소를 띠지만 일순간 가짜 종이달임을 알고 비통한 민낯을 드러내는 인간들. 어쩌면 진짜를 갖기보다 가짜를 소유하는 것이 마음 편한 일인지도 모른다. 진짜를 소유하기란 만만치 않은 돈과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짜를 소유하면서 가짜 행복을 얻는 가짜 인간들. 감히 진짜를 소유하지 못하는 용기 없는 자들.

우리 인생이 어쩌면 영원히 가짜를 소유하기 위한 일발의 오발탄이지 않을까?



종이달.

여기 합성어의 뒷 어근에 달 대신에 돈을 넣으면 이 소설의 주제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종이돈. 가짜 돈. 너무 많이 소유하거나 집착하게 되면 가짜 인생을 살게 되고 때로는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물론 돈의 절대적인 부정은 아니다. 땡전 한 푼 없는 가난한 인생보다 탐욕적인 부자가 훨씬 나을 수도 있다.

돈을 너무 밝히면 돈이 된다. 즉 돼지가 된다. 꿀꿀꿀 꿀꿀이는 먹기만 하고 싸기만 하는 짐승. 개같이 벌어서 똥처럼 소비하기 바쁜 인간. 돈은 그래서 어쩌면 악마의 금전일 수 있다.

소설가 가쿠다 미쓰요


굳이 돈의 기원을 따질 필요도 없고 돈의 미래를 예측할 필요가 없다. 돈은 엄연히 현실이고 인간을 더욱 빛나게 만드는 마법과 같은 것이다. 볼품없는 외모를 화용월태로 탈바꿈해주고 꿈꿀 수 없는 남자와 여자를 만나게 해 주고 무너져 버린 자존심을 불끗 성난 성기처럼 일으켜 세운다.



이 평범한 여인 '우메자와 리카'는 왜 공금횡령죄를 저지른 범죄자가 되었나? 돈의 맛에 길들여진 불쌍한 여인. 무미건조한 결혼생활. 그림자 남자와 동거하는 듯한 기괴한 결혼생활. 의무적인 대화와 의례적인 인사. 섹스에 대한 갈망마저 고갈돼 버린 무미건조한 남녀 관계.


결국 탈출구로 직장을 갖지만 그것은 더욱더 그녀를 미궁의 지옥 속으로 빠뜨리는 위험한 선택이었다. 은행과 돈. 그리고 어린 남자. 이 세 개를 갖게 되는 순간 그녀는 욕망의 포로가 될 수밖에 없다. 어린 남자를 위해 스스로 부나비가 되어 돈의 화덕으로 뛰어들고 마는 불쌍한 그녀. 고객의 돈이 자신의 돈인양 아무런 도덕적 죄책감도 없이 마구마구 써버리고 만다.

처음에는 분명 갚을 수 있다는 자기 합리화로 면죄부를 삼지만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되는 법. 결국 들통나는 법.

분명 그녀는 고객의 돈을 횡령한 범죄자이지만 역설적이게도 돈을 맛보고 돈을 숭배하면서 자유를 얻은 깨달은 자가 된다.

미야자와 이레 주연의 동명 영화 '종이달'
천하의 돈. 쓸 때까지 써 봤더니 아무것도 아니더구나.


내 돈이 아니라 남의 돈이라 아까운 줄도 모르고  인간으로서 맛볼 수 있는 모든 희로애락을 느꼈으니 후회가 없다는 식이다. 누구는 고행을 통해 도를 깨닫고 누구는 쾌락을 통해 고해를 뛰어 넘은 새로운 진리를 인식한다.

이 소설이 단지 돈의 폐해. 쾌락과 욕망을 뒤쫓는 인간군상들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그져 그런 소설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메자와 리카'를 통해 돈의 맛과 쓰임새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진정 돈으로부터 자유는 무욕과 무소유가 아닌 적당한 물욕과 적당한 소유욕에 있다는 역설을 보여준다.


한편 돈에 대한 상대적인 관점들을 보여주며 독자들의 균형적인 시각을 유도하기도 한다. 과도한 근검절약형의 인물과 소비를 통해 존재를 확인하고 인생을 만끽하는 돼먹지 못한 인물들을 상호 대비하고 있다.

나는 과연 어떤 유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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