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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달리다

- 한 망나니 가족의 막장 인생사를 심윤경이 지었다.

사랑은 비명보다도, 운명보다도 빨리 달린다.




완전히 웃긴 천방지축의 소설이다.

막가는 패밀리들의 광폭 질주가 시작된다. 돈을 향한 맹목적 추종은 인륜과 도덕성은 팽개치고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적당한 사랑의 대상을 물색해서 전광석화처럼 공략한다.

심윤경 작가, 서울대학교 대학원 분자생물학 석사 출신의 특이한 경력 소유자(사진 출처: 예스 24 웹진 제공)


어미를 팔아 빚을 갚고, 남편을 버리고 새 남자를 찾고. 가족을 버리고 어린 영계를 찾고. 인간 말종들이 벌이는 해괴망측한 사건들이 난무한다.


조금 더 자세히 이 가족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아버지: 트럭 초콜릿 배달 장사로 일확천금을 모은 후 병원장이 된 입지전적인 인물. 그러나 망나니 가족들의 돈 찍어 내는 기계를 단호히 거부하고 과감하게 20년 연하의 여자와 결혼하여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인물


2. 어머니: 서울 모대학 퀸카 출신.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60대 아줌마도 아닌 할머니도 아닌 여성. 일찍이 부모를 잘 만나 세상 물정 모르고 자란 여인. 남편에게 이혼당한 후 평범한 주부로 추락했지만  둘째 아들의 주선으로 돈 많은 사채업자를 만나 VIP 계층에 남고자 몸부림치는 천한 여자.


3. 첫째 아들: 오직 돈만 밝히는 장남. 돈 앞에 아비와 에미도 없는 불효 막심한 놈. 오직 돈신을 추앙하는 인물


4. 둘째 아들: 배임, 횡령, 사기 등 금융 범죄를 밥 먹듯이 저질러는 탕자 중의 탕자. 외제 스포츠 카를 수시로 바꿔 타며 고속도로에서 스피드를 즐기는 속도광.  마누라보다 여동생을 더 좋아하는 놈. 자신의 부채를 탕감하기 위해 채권자인 사채업자에게 제 어미를 팔아넘기는 부도덕한 인물.


5. 막내 혜나: 금수저로 태어나 평생 돈 걱정 없이 살아온 철부지 공주. 어릴 적 동네 친구와 결혼한 낭만성도 있지만 법적인 부부일 뿐. 섹스는 하이파이브로, 남편에 대한 이해와 양보, 배려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39세의 여성. 성실 근면한 남편을 버리고 유명 산부인과 의사를 유혹하고자 발광하는 된장녀의 표본.


대충 이런 인물들이 소설 전편에 등장하여 웃음과 짜증, 황당함을 쉴 새 없이 제공한다.





이 소설은 돈으로 모든 것은 살 수 있지만 인간의 도덕과 품격만은 구입하지 못한 어리석은 인간들이 벌이는 블랙 코미디.  조롱과 풍자의 소설이 아니라 웃음과 웃음이 짬뽕처럼 얽혀있는 웃긴 소설이다.


모 재벌가의 돼먹지 못한 인간들의 순악질적 행패가 연상되지만 그에 비하면 이 막장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귀염둥이에 속하는 편이다. 그래도 일말의 현실 인식과 자기 성찰이 있기 때문이다.

때론 철부지 같은 어른들이 세상 물정 모르고 일찌감치 돈 맛에 길들여져 돈을 좇는 형국이지만 어찌 이들만 그러하겠는가? 인간의 근본은 비슷비슷하다. 누구나 다 돈을 좋아하고 추종하는 것이 현대인의 솔직한 모습이다. 작가는 아예 이 소설의 방향을 재미로 삼은 듯하다. 무조건 독자들을 웃겨야겠다는 목적의식을 갖고 신나게 써 내려갔다.


자고로 한국 소설에서 대표적인 웃기는 소설가는 그 원조격인 '유자소전'을 쓴 이문구,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의 성석제, '갈팡질팡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의 이기호 소설가 등이 있다.


이들 소설가들은  지방 사투리의 적절한 활용, 등장인물들이 툭툭 던지는 대사들의 기막힌 개그적 요소, 자연스럽게 웃음을 유발하는 기상천외한 상황 연출 등을 통해 독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심윤경 작가는 특이하게 돈 밖에 모르는 천한 가족들을 내세워 막장 드라마를 연출함으로써 재미와 웃음을 준다. 특히 웃음 유발의 주인공은 철부지 막내딸 '혜나'가 맡고 있다. 그녀의 말 한마디는 언어유희적이며 행동은 철부지 같지만 때론 사랑스럽기도 하다.


작가는 "혜나는 함께 일하기 대단히 좋은 파트너다. 복잡할 것이 하나도 없다. 혜나는 어차피 내 의견 따위는 듣지도 않는다. 그녀가 원하는 방향으로. 그녀가 원하는 속도로 달린다"라며 단순 무식한 혜나를 앞세워 별 특별할 것도 없는 이야기를 쭉 끌어당긴다. 때론 웃음과 욕설도 나오지만 일단 재미있다.

이 재미 하나로 이 소설은 성공한 셈이다. 나머지는 이 소설에서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후속작으로 '사랑을 채우다'편이 출간되었는데 그다지 읽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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