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망나니 가족의 막장 인생사를 심윤경이 지었다.
사랑은 비명보다도, 운명보다도 빨리 달린다.
완전히 웃긴 천방지축의 소설이다.
막가는 패밀리들의 광폭 질주가 시작된다. 돈을 향한 맹목적 추종은 인륜과 도덕성은 팽개치고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적당한 사랑의 대상을 물색해서 전광석화처럼 공략한다.
어미를 팔아 빚을 갚고, 남편을 버리고 새 남자를 찾고. 가족을 버리고 어린 영계를 찾고. 인간 말종들이 벌이는 해괴망측한 사건들이 난무한다.
조금 더 자세히 이 가족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아버지: 트럭 초콜릿 배달 장사로 일확천금을 모은 후 병원장이 된 입지전적인 인물. 그러나 망나니 가족들의 돈 찍어 내는 기계를 단호히 거부하고 과감하게 20년 연하의 여자와 결혼하여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인물
2. 어머니: 서울 모대학 퀸카 출신.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60대 아줌마도 아닌 할머니도 아닌 여성. 일찍이 부모를 잘 만나 세상 물정 모르고 자란 여인. 남편에게 이혼당한 후 평범한 주부로 추락했지만 둘째 아들의 주선으로 돈 많은 사채업자를 만나 VIP 계층에 남고자 몸부림치는 천한 여자.
3. 첫째 아들: 오직 돈만 밝히는 장남. 돈 앞에 아비와 에미도 없는 불효 막심한 놈. 오직 돈신을 추앙하는 인물
4. 둘째 아들: 배임, 횡령, 사기 등 금융 범죄를 밥 먹듯이 저질러는 탕자 중의 탕자. 외제 스포츠 카를 수시로 바꿔 타며 고속도로에서 스피드를 즐기는 속도광. 마누라보다 여동생을 더 좋아하는 놈. 자신의 부채를 탕감하기 위해 채권자인 사채업자에게 제 어미를 팔아넘기는 부도덕한 인물.
5. 막내 혜나: 금수저로 태어나 평생 돈 걱정 없이 살아온 철부지 공주. 어릴 적 동네 친구와 결혼한 낭만성도 있지만 법적인 부부일 뿐. 섹스는 하이파이브로, 남편에 대한 이해와 양보, 배려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39세의 여성. 성실 근면한 남편을 버리고 유명 산부인과 의사를 유혹하고자 발광하는 된장녀의 표본.
이 소설은 돈으로 모든 것은 살 수 있지만 인간의 도덕과 품격만은 구입하지 못한 어리석은 인간들이 벌이는 블랙 코미디. 조롱과 풍자의 소설이 아니라 웃음과 웃음이 짬뽕처럼 얽혀있는 웃긴 소설이다.
모 재벌가의 돼먹지 못한 인간들의 순악질적 행패가 연상되지만 그에 비하면 이 막장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귀염둥이에 속하는 편이다. 그래도 일말의 현실 인식과 자기 성찰이 있기 때문이다.
때론 철부지 같은 어른들이 세상 물정 모르고 일찌감치 돈 맛에 길들여져 돈을 좇는 형국이지만 어찌 이들만 그러하겠는가? 인간의 근본은 비슷비슷하다. 누구나 다 돈을 좋아하고 추종하는 것이 현대인의 솔직한 모습이다. 작가는 아예 이 소설의 방향을 재미로 삼은 듯하다. 무조건 독자들을 웃겨야겠다는 목적의식을 갖고 신나게 써 내려갔다.
이들 소설가들은 지방 사투리의 적절한 활용, 등장인물들이 툭툭 던지는 대사들의 기막힌 개그적 요소, 자연스럽게 웃음을 유발하는 기상천외한 상황 연출 등을 통해 독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심윤경 작가는 특이하게 돈 밖에 모르는 천한 가족들을 내세워 막장 드라마를 연출함으로써 재미와 웃음을 준다. 특히 웃음 유발의 주인공은 철부지 막내딸 '혜나'가 맡고 있다. 그녀의 말 한마디는 언어유희적이며 행동은 철부지 같지만 때론 사랑스럽기도 하다.
작가는 "혜나는 함께 일하기 대단히 좋은 파트너다. 복잡할 것이 하나도 없다. 혜나는 어차피 내 의견 따위는 듣지도 않는다. 그녀가 원하는 방향으로. 그녀가 원하는 속도로 달린다"라며 단순 무식한 혜나를 앞세워 별 특별할 것도 없는 이야기를 쭉 끌어당긴다. 때론 웃음과 욕설도 나오지만 일단 재미있다.
이 재미 하나로 이 소설은 성공한 셈이다. 나머지는 이 소설에서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후속작으로 '사랑을 채우다'편이 출간되었는데 그다지 읽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