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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한없이 결곡한 문장으로 빚은 순도 높은 청춘의 서사. 여백을 음미하고
삶을 긍정하는 웅숭깊은 장편소설


참 부드럽게 흘러가는 아름다운 소설이다. 

특별한 사건이나 갈등구조 없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작가의 글담이 참으로 대단하다. 책 표지 또한 하나의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건축 사무소의 여름 별장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풍경들을 무리 없이 부드럽고 감칠 나게 잘 표현하고 있다. 

다소 지루하기 쉬운 이야기이지만 스웨덴의 숲의 묘지와 스톡홀름의 시립 도서관, 일본의 산리즈카 교회 등 해외 유명 건축물들의 해설과 이를 제작한 아스플룬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등 건축 예술가들의 에피소드 등.

마치 건축학 개론을 듣는 듯한 해박한 지식들이 성찬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아사마 산 일대의 자연 풍광과 산골 마을에 대한 묘사적 표현은 읽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고 숲 속을 거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곳에는 황금새와 호반새, 쇠딱따구리와 산초나무와 삼색 제비꽃이 여름 별장과 함께 있다.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요시무라 준조가 1962년에 건축한 숲 속의 집


엔진이 꺼지고 문이 열리자 순식간에 공기가 달라졌다. 잎사귀 스치는 소리와 매미, 벌레, 새소리가 한데 섞여 머리 위에서 쏟아져 내린다. 풀과 잎사귀 냄새를 머금은 약한 바람. 올려다보니 주변보다 훨씬 밝은 파란 하늘이 나무 사이로 보인다.


이 소설은 자연 친화적인 생태소설이라고 불러도 큰 이의를 달지 못할 것이다. 그 속에서 벌어지는 무라이 건축 사무소 직원들의 열정적인 작업의 모습과 사카니시와 마리코의 비밀스러운 사랑 이야기를 훔쳐보는 재미도 괜찮다.

국립 현대 도서관 입찰 경쟁이라는 이야기의 큰 줄기 속에서 작가는 간간이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과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21 등의 음악과 요리, 여성 패션의 스타일, 볼보와 르노 등의 자동차 소품들을 적절히 배치하여 소설을 읽는 풍미를 더하고 있다. 이는 마치 하루키 소설의 소품들을 옮겨 놓은 듯하다.


갓 구운 스콘을 밝고 마른 햇볕 냄새가 났다. 차가운 클로티드 크림과 딸기 잼을 스콘 위에 얹어 입으로 가려간다. 온도도 감촉도 가각 다른 단맛이 입안에서 섞인다.


작가는 자신의 풍부한 건축학적 지식의 전달, 아사마 산 일대의 풍경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형상화, 등장인물들의 개성적인 연출. 한 건축장인의 집념을 잘 표현하고 있다. 그야말로 아름다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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