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슬로우 맨

-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청춘과 노년, 사랑과 욕망 그리고 집과 예술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는 '그 남자'의 고독하고 불편한 행보가 시작된다.





불의의 자전거 사고. 

다리 한쪽의 절단. 보행의 불편은 영역의 축소이며, 자유의 억압이며, 사람 관계의 단절이다. 

절망의 연속에서 자신의 몸을 스스로 돌보지 못하는 이 늙은이는 오직 간호사의 돌봄이 없다면 죽은 시체에 불과하다. 더 이상 자신이 좋아하는 자전거도 탈 수 없고 오직 아파트 안에서 자신을 소진할 뿐이다. 

오래전 이혼한 부인은 완전 잊혀진 존재이며 자식마저 한 명 두지 못한 거세당한 늙은이. 우습게도 다 늙어버린 나이이지만 성적 욕망은 살아 있어 간호사의 조그만 터치에도 본능적으로 반응한다. 


소멸되지 않는 욕정의 분출과 그 배출의 방법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사이 한 간호사의 리드미컬한 마사지에 흥분하고 엉덩이와 발목. 입술 등 볼품없는 육질을 훔쳐보며 욕망을 키운다. 그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욕망의 가면을 뒤집어쓴 가식적인 사랑의 감정.


2003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존 쿳시


일방적인 사랑의 고백은 한 가정의 풍비박산을 가져오고 돈 보따리를 통해 그 여인의 가족을 소유하려는 엉뚱한 발상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언뜻 보면 사랑의 줄타기 같은 스토리가 있지만 연애의 실패에서 성공으로 이어지는 극적 전환이 없어 심심하고 재미없다. 늙은이의 성적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눈먼 여인을 등장시켜 절름발이와 맹인 여자와의 어설픈 교접을 시도해 보지만 신체를 일부 잃은 그들의 행위는 애처롭게 여겨진다. 

그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가 어떻게 장구하게 연결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다만, 불현듯 튀어나온 한 할머니의 개입은 사건을 이리저리 흔들기도 하고 작가의 분신인양하고자 하는 말을 들려준다. 그것은 이런 것이다. 


폴, 중요한 사람이 되세요. 영웅처럼 살아요. 고전은 우리에게 그렇게 가르치잖아요. 

주요 인물이 되세요. 그렇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살죠?


아마 목발 신세의 늙은이에게 따끔한 일갈을 퍼부어 시간을 탕진하는 게으른 영감으로 살지 말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마치 내게 던지는 말처럼....

혹시 이것 하나만 깨달아도 훌륭한 독서가 된 셈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황금 물고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