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금각사

- 미시마 유키오 지음/허 호 옮김

소멸과 생성의 청춘 광시곡, 미에 대한 극단적인 집착과 탐닉!




미시마 유키오. 일본 자위대의 궐기를 촉구하며 할복 자결한 극우주의자.

그리고 금각사. 이 두 상징성은 부조화의 극치이다. 

이토록 탐미적인 작품을 쓴 사람이 군국주의 부활을 획책했던 극우 성향의 작가라니 놀랄 울뿐이다. 

다행스럽게도 이 작품은 유키오의 정치적 성향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전의 작품이다.


이 소설은 실제 1950년 7월 2일 일어난 금각사 방화사건을 다루고 있는 시사소설이자 작가의 내면적 자아의식이 반영된 사소설이기도 하다.
탐미문학의 거봉이었으나 극우주의자였던 미시마 유키오, 1970년 할복 자살했다


단지 사회적 사건을 소설화했다고 해서 흥미 위주의 이야기라고 속단한다면 오산이다. 이 소설에는 알듯 모를 듯 심오한 철학적 논제들을 인물들의 말과 행동과 서사 구조 등에 나타나 있다.


물론 실제 방화범 하야시 쇼켄의 가족과 성장환경, 외모와 성격을 바탕으로 소설 속 주인공을 재창조해 내고 금각사 도제 생활과 방화에 이르기까지의 상세한 과정을 사실적 취재를 통해 재구성해 놓았다. 여기에 유키오는 인간의 본성적인 선악의 문제와 '미'의 상징성에 대해 자기만의 철학을 덧칠해 두었던 것이다.


인간은 선한 존재인가 악한 존재인가. 맹자와 순자의 주장과 맥락을 같이 하지만 유키오는 이 두 본성의 교합을 주장하는 듯하다. 즉 선한 것은 악한 것의 독성을 제거하고 양으로 지향하는 특성이 있으며 악한 것은 터부시 되는 배척의 대상이 아니라 고유의 특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등장인물인 '쓰루카와'와 '가시와기'를 통해 잘 보여준다.

극단적인 미의 상징이었던 금각사, 1950년 7월 2일 일어난 방화사건을 소설화했다



소설 속 '쓰루카아'는 선의 상징이며 나약한 존재이다. 한 때 주인공 '미조구치'의 악성을 순화시키는 밝음의 역할을 수행하지만 결국 여자 문제로 자살하고 마는 인물이다.

'가시와기'는 안짱다리라는 육체적인 장애에도 불구하고 숱한 여성들을 유혹하고 파멸시키는 어둠의 모습이지만 미조구치의 임무를 완성케 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렇듯 선악의 문제는 이분법적으로 분리된 본성이 아니라 고유한 역할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금각사를 방화했을까? 이토록 아름다운 것을 본 적이 없다고 경탄했던 '미조구치'의 행위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의 입장에서 금각사는 미의 상징이자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다. 아름답지만 소유할 수 없는 질시의 대상이다. 소유할 수 없는 것은 파멸뿐이며 이것은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는 '미조구치'의 왜곡된 미의식에서 나타난다. 


해사 생도의 아름다운 단검의 칼집 뒤쪽에 보기 흉한 칼자국을 새기는 행위,  사랑하지만 사랑할 수 없었던 '우에코'의 처연한 죽음 등에서 엿볼 수 있다.

아름다움은 소멸과 파괴 속에서 영원할 수밖에 없다. 결국 금각사 또한 방화의 숙명 앞에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녹원사 주지의 위선적인 말과 행동. 자신을 향한 압박과 무관심 등도 방화의 원인으로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치밀하고 연계성 있는 서사구조와 금각사의 입체적인 건물 구조 모습, 주변 환경과 어울린 아름다운 풍경을 유키오 자신만의 문체로 잘 전달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생각으로 인도하는 질문 여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