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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체험

- 오에 겐자부로 지음/ 서은혜 옮김

출구 없는 현실에 놓인 현대인에게 재생의 희망은 있는지 물음을 던지는
오에 겐자부로의 수작!




199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오에 겐자부로.

인류에 대한 끝없는 사랑, 일본의 우경화를 반대하며, 국제적인 평화운동을 전개하는 오에는 지식인의 양심과 책무를 다하는 일본의 대표적인 지식인이다. 또한 1963년 6월에 출생한 정신 장애아를 가진 아버지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에를 가리켜 '전후 민주주의자'이며 '장애아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이 소설은 그야말로 개인적인 체험에 관한 사적 소설이다.

199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오에 겐자부로


정신 장애자 '히카리'의 출생은 인간 존엄성의 문제, 부성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와 삶의 방향성을 뒤흔드는 일대 사건이었다. 오에는 지적 장애를 가진 장남의 출생으로 끝없는 번민과 절망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자신에 닥친 불행의 운명을 저주한다.


하나의 불행은 작가에게 사색과 성찰을 가져다주었으며 창작의 동기와 주제를 깊게 파고들 수 있는 인내력을 주었다.


결국 아들과의 공생을 선택한 그는 자신의 체험을 소설화하였고 장애와 관련된 많은 작품들을 생산해 내며 자신만의 소설 세계를 확장해 나갔다.



오에의 분신인 주인공 '버드'는 한 마리의 새이다. 철없던 어린 시절 바보스럽게 자신을 불렀던 별명이다. 

이 별명은  영국 시인 H.W 오든의 시구 중 '이미 어린아이도 새도 아니다'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버드는 아프리카 지도를 펼쳐놓고 그곳을 향해 비행하고자 하는 현실도피적인 인물이지만 바람을 거슬러 날지 못하는 퇴화된 새에 불과하다. 대학 중퇴자에 불과한 자부심 없는 학원 영어 강사.

새로운 출발지를 꿈꾸지만 '뇌 헤르니아'로 예상되는 아이를 출생하면서 꿈은 멀어지고 현실은 고통과 비참함으로 다가온다. 

오에 겐자부로의 부인과 아들 히카리


아이가 탄생한 날 10대와의 집단 싸움은 무너진 꿈과 아들의 비극적 탄생을 파괴적으로 자학하고자 하는 내면 의식의 발로이다.

큰 혹이 달린 장애아의 출산은 인간의 본능과 이성의 치열한 갈등을 보여주고 불행을 대하는 인간의 추악한 면을 보여준다. 즉 인간의 본능적인 부성애의 존재 유무와 이를 이성적으로 판단하고자 하는 사유의 능력이 그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보여준다.

결국 '버드'는 아들과의 공생 대신 '쇠약사'를 선택한다. 분유 대신 설탕물을 먹이며 서서히 죽이는 살인자의 탈을 쓰고 자신의 꿈과 미래를 한순간에 빼앗아 간 '혹 달린 아들'을 저주한다.

그리고 부성을 포기한 죄의식을 달래기 위해 오랜 여자 친구 '히미코'를 찾아 섹스를 하고 한동안 끊었던 '조니 워크'를 대낮부터 마신다. 그리고 다음 날 강의실 교단에서 구토를 하고 학원에서 해고당하는 '버드'. 모든 것이 비틀어진 일상생활.

'버드'가 불행에 대처하는 방식은 자학적인 폭력과 알코올, 섹스 그리고 '히미코'뿐이다. 그의 여자 친구 '히미코'는 삼국지 '위지 왜인전'에 나오는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영매인 일본의 '야마타이국 여왕'이라고 한다. 그녀는 '버드'를 위해 몸과 집을 내어주는 위안의 대상인 것이다.

'버드'의 일탈은 마치 까뮈의 이방인에 나오는 뫼르소가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여자 친구와 영화를 보고 데이트를 즐기는 장면을 연상하게 한다.


어쩌면 삶의 무의미, 불행과 슬픔은 나와 아무 관계없는 무관심의 대상이며 이를 삶의 테두리 바깥으로 밀어 버리고자 하는 도망자의 의식이다.


그러나 그의 의식은 점차적으로 변해간다. 변화의 요소는 치열한 내적 사색을 통한 자기 내면에 있지 않고 주변 인물과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이뤄진다. 그는 서서히 아들과의 공생이라는 운명 순응의 형태로 나아간다.


'머리가 두 개 달린 것처럼 보일 정도로 지독한 증상의 뇌 헤르니아랍니다.

'어째서 수술을 하지 않고 쇠약사 하기를 기다리는 거지?'


이 소설과 무관해 보이는 '델 체프'와의 대화는 서서히 '버드'의 내면 속으로 침투하며 심장 속에 각성의 똬리를 틀게 된다. 또한 델 체프는


'카프카가 아버지에게 쓴 편지에 있는 말이지만 아이에 대해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찾아오는 아기를 맞아들이는 것뿐이랍니다.  자네는 아기를 맞아주는 대신 그를 거부하고 있는 건가요? 아버지라고 해서 타인의 생명을 거부하는 에고이즘이 허용되는 걸까?
클래식 작곡가로 활동 중인 오에의 아들 히카리


'델 체프'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버드'의 이기주의와 부도덕함의 얼음을 깨는 도끼와 같았다. 그러면서 그는 버드에게 사전을 선물하며 '희망'이라는 글자를 적어 준다.

결국 '버드'는 자신의 정신을 마비시켰던 위스키를 다 토해 낸 후 '더 이상 도망가지 않겠다' 라며 자신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 다시 병원으로 돌아간다. 

오에 자신이 실제 선택한 것처럼 아들과의 공생공존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결말을 지었다. 하나의 주제를 구현하는 그의 서술 방식은 섬세한 관찰 뒤에 얻게 되는 묘사의 정교함과 치열한 문장 다듬기 끝에 표현된 참신한 비유들이 눈과 머리를 즐겁게 한다. 그리고 그는 인간이 처한 불행 앞에 구원의 단어를 마지막 문장 속에 내어 놓는다. 


"본국 송환을 당한 델체프씨가 표지에 희망이라는 낱말을 써주었던 발칸 반도의 조그만 나라의 사전에서 맨 먼저 인내라는 낱말을 찾아볼 작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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