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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꼬투리 May 16. 2022

순자의 변심

41세 언니를 응원하며

지난주, 목요일부터 내 뇌리 속을 떠나지 않는 인물이 있다.

요즘 핫한 드라마 속 주인공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고, 남자 친구도 아니고

바로 <나는 솔로> 7기 출연자인 ‘순자’ 언니다.

친한 친구 몇 명과 함께 나누는 이 프로그램은 나에게 ‘길티 플레저’ 다.


<짝>을 시작으로 <스트레인저>를 거쳐 <나는 솔로>까지.

몇 해전 한창 핫했던 프로그램이었던 <짝>의 남규홍 PD를 만난 적이 있다.

그때 그는 예능이 아닌 시사/교양 프로그램 연출자였고,
이 프로그램의 시작은 인간에 대한 실험의 성격에 가까웠다고 했다.

사실 재기 발랄하고, 명랑한 예능 PD 감성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조금 실망스러운(?) 인터뷰이의 캐릭터였지만 그래서 더 인상적이었던 인터뷰이였다.

불미스러운 일로 <짝>이 폐지되고, 변방(?)의 채널에 편성된 <스트레인저>는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건지, 금세 종영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솔로>의 반영이 시작됐다.

SBS PLUS 케이블 채널이기는 하지만 넷플릭스에까지 태우고 있으니 <짝>과 같은

‘극사실주의’의 연애 프로그램을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것은 명백한 사실인 듯하다.


<나는 솔로>를 보며

겨드랑이 냄새를 맡으며, 싫지만 좋고, 좋지만 싫은
그런 복잡다단한 감정은 이 글에서는 각설하고-

오늘 내가 말하고 싶은 인물은 41세, 대치동 국어 학원강사인 순자 언니다. 


사실 그녀의 첫인상은 히스테릭 그 자체였다.

거침없는 말투와 직설적인 말투는 솔직함을 너머 신경질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자기소개를 3가지에 걸쳐 말하겠다 선언하던,
그 특유의 일목요연함,
귀에 콕콕 박히는 정확한 발음과 전달력,

단호한 말투,
이 모든 것이 ‘나는 강사다’ 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은 학원강사이지만, 연애 상대가 학원강사인 게 싫다고 했다.
질색팔색(!)하는 기색까지 역력했다.

(사진=sbs plus <나는 솔로> 중)

그런 그녀가 최종선택을 받지 않은 상대에게 고백했다.

거기에 결코, 절대 싫다던 학원 원장인 그 남자 ,

영호에게 말이다.


나는 40대 순자 언니의 변심이 흥미로웠다.

그만큼 쉽지 않은 것이 40대 여성의 마음이라는 걸,
나는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내가 조만간 40대가 되는 30대 후반이기도 하고, 주변에 그 나이대의 언니들을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변심이 놀라운 건 다음과 같은 이유다.

(사진=sbs plus <나는 솔로> 중)


첫째,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깼다.

순자 언니도 말했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고. 그리고 그녀는 보통 “할까 말까”할 때는 하지 않는 쪽을 택하는 사람이라고.

대치동에서 잘 나가는 학원 강사라는 직업을 가진 자가 하는 말이니, 또 납득이 된다.

수십 년 넘게 그 일을 했으니 인정도 받을 것이며 그에 상응하는 수입도 있을 것이다.

방송 초반부터 자기 확신에 찬 사람의 모습이 보였기에 그녀의 변심은 놀라울 수밖에 없다.


(사진=sbs plus <나는 솔로> 중)


둘째, 40대가 용기를 내는 건 어렵다.

이번 <나는 솔로> 7기 40대 특집은 유독 쳐지는 분위기였다.
그 어떤 반전도, 깜짝 데이트도 없었다. 납득가지 않는 도발, 급발진, 좀처럼 풀리지 않는 대화 등 한마디로 '노잼'이었다. 순자 언니의 변심이 있기 전까지.

그런데 이 7기를 막판까지

멱살 잡고 끌고 간 건 순자 언니였다.

최종 선택 전까지 순자는 열심히 ‘영호 광팔이’ ‘영호 도우미’ 역할만 해주었다.

결혼이 준비된 사람, 인간적으로 너무 좋은 사람…

마음에 담아둔 것을 말로 표현하는데 능숙한 순자의 칭찬이라 다른 출연 여성들은 더욱 솔깃해했다.
7기 인기녀였던 ‘옥순’이 마지막 데이트 상대로 영호를 택한 것 역시 순자 언니의 역할이 컸다.

스스로 영호의 상대가 되길 주저했던 순자 언니는 최종 선택 전 영호와 대화를 했고,

비록 영호가 최종적으로 자신을 택하지 않았지만 그에게 용기 냈다.

(사진=sbs plus <나는 솔로> 중)

<나는 솔로>에 출연을 결심한 이후부터 남의 눈 신경 쓰지 않고 솔직하고 싶었다는 것이 그녀가 용기 낸 이유였다. 결심한 걸 실제 행동까지 해내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나이를 먹을수록 그건 어려워진다. 모두가 알 듯 사회에서의 지위, 역할 등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사진=sbs plus <나는 솔로> 중)
셋째, 변심을 인정했다.

(자꾸만 나이 얘기를 해서 미안하지만, 나이를 먹어서 좋은 것은 나이 핑계를 대는 게 아무렇지 않고 좀 뻔뻔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이를 먹고, 꼰대가 되는 가장 쉬운 길은 ‘나는 옳고, 너네는 다 틀려’식의 생각이며,
말과 행동이 불일치하는 것이다.

순자 언니는 스스로의 마음이 변한 사실을 자각했고, 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순순히 인정했다.

나이를 먹고 공고했던 자신의 선입견이 깨지는 걸 인정하는 건
아주 단단한 사람마저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감정정으로 흔들릴 수 있는, 극적이고도 어려운 일이다.

순자 언니가 20년간 고수한 생각을 깨는데
단 2일밖에 걸리지 않았다며 고백하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바뀐 마음을 인정하는 게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가를 보여주는 거라 생각한다.

아무리 그녀가 20년간 한 우물을 판, 고인물이라고 할 지라도 같은 여자로서, 멋있다고 엄지 척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내가 잘못된 생각을 했고,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인정하는 사람은
고인물일지라도 탁함의 정도는 덜할 거라는 믿음이 생긴다.

직장 생활을 하며 닳고 닳은 생각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사랑 앞에서는 순수하고 맑아질 수 있다.

순자 언니는 많은 이들에게 그 사실을 온몸으로 보여줬다.


그래서 좋았다.

그리고 응원하고 싶어 졌다.

세상의 모든 순자 언니들에게.

누구든 순자 언니처럼 변신하고, 또 변심할 수 있다.

그래도 된다. 아니, 왜 안 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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