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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꼬투리 May 31. 2022

비혼과 이혼 사이

인생에 '빼박'은 없다! 


주변 사람들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추진하고 있는 친구 C.

모르는 사람들은 그녀가 엄청난 ‘세기의 사랑’을 하고 있다 생각할지도 모른다. 어느 정도 나는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 역시 결혼 상대의 결함을 모르지 않는다.

그럴 줄 알았다. 

그녀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유형이다. 현명하고 똑똑하고 지혜롭다. 

그런 그녀의 한마디가 또 내 마음을 두드렸다. 

그리고 그 말은 더 이상의 잔소리를 허하지 않았다. 

“나 이혼하더라도 이 결혼할래요. 그럴 가능성도 있다 생각해요. 뭐 어때요. 다녀오면”


이혼이 죄가 되는 세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왜 결혼은 이토록 무겁기만 한 걸까?

우리가 할리우드 스타만큼 몇 번 결혼하는 건 어렵더라도 한 두 번은 즉흥적으로 할 수 있는 게 결혼이 될 순 없는 걸까? 

"이혼? 뭐가 나빠? 하면 하는 거지"

말은 그렇게 하지만 막상 내가 그 상황이 되면 그리 쉽지 않은 결정일 거라는 걸 난 잘 안다. 

내 결정이 실패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 힘든데, 그걸 꽤 많은 사람에게 공개해야 한다. 그리고 그다음 삶은 좀처럼 그려지지 않는다. 여기에 아이까지 있으면..? 이만 생략..


요즘 TV에서 눈에 띄는 건 

결혼 말고 이혼과 이혼 과정, 그리고 그 이후의 삶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많다. 

이미 두 번째 시즌을 종영한 <돌싱글즈>는 돌싱들을 위한 짝짓기 프로그램으로 인기였고, 

<우리 이혼했어요>는 현재 두 번째 시즌이 방영되고 있다. 

그리고 온갖 사연으로 딥빡을 유발하는 프로그램 <애로 부부> 최근에는 <결혼과 이혼 사이>까지.

많은 싱글들은 이 프로그램들을 보며, 혹은 SNS를 통한 짤을 보며 

비혼 장려 프로그램이라고 입 모아 얘기하는데, 나 역시 결혼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과 

동시에
이혼도 삶의 일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건 실패도 성공도 아닌 그냥 삶의 선택과 그에 따른 삶의 진행이다.

<우리 이혼했어요 2>


몇 년 동안 페미니즘 관련 글을 쓰며 많은 것들을 자각하게 된 선배J는 한동안 아들을 뺀 세상의 모든 남자들에게 분노했다. 거기엔 남편도 당연히 포함이었다. 하지만 그녀를 서글프게 하는 건 언제나 공감력 따위는 골프장 우물에나 던진 듯한 남편이 아니라 같은 여성이었다. 그것도 싱글 여성.


싱글 여성은 결혼한 여성을 가부장제에 순응한 사람으로, 그들이 페미니즘을 논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비난했다. 결혼한 여성은 결혼함과 동시에 안티 페미니즘의 길을 걸은 것처럼 매도하고 단정짓기도 한다. 
(모든 페미니스트가 이와 같은 논리를 내세웠다는 건 절대 아니다. 일부의 이야기다)

선배는 그런 비난이 서글프다 했다. 


20대 후반에 결혼한 선배는 당신에 결혼이 순리라 생각했고, 또 뭔가를 진지하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어떤 말도 핑계로 들리겠지만, 이건 사실이다. 

그리고 배경이 뭐가 됐든 개인의 선택을 평가하고 재단할 수 없다.
결혼한 사람도 충분히 그 안에서 고군분투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커리어를 쌓으며 투쟁한다. 거기에 육아까지 하며 고군분투한다. 그 모든 부담에 같은 여성인 친정엄마에게 전가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갖고, 진지하게 남편과의 이혼도 고민한다. 

쉽게 바뀌지 않지만, 선배는 치열한 삶으로써 후회하고, 쟁취하며 살아간다. 난 선배를 통해 많은 것을 직간접적으로 느끼고 있다. 


<결혼과 이혼 사이> 

‘빼박 캔트’라는 말이 있다. 

꽤 오래된 신조어인데, 우리의 삶엔 ‘빼박 캔트’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건 탄생과 출산, 죽음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결혼은 ‘빼박’은 아니다. 이혼이라는 선택이 또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결혼 준비를 하다 남자 친구와 다툰 C는, 그의 잘못을 지적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상견례했다고 이 결혼 엎지 못할 것 같아? 결혼해서도 마찬가지야. '결혼했으니까 못 헤어져?' 그런 거 나한테는 없어. 결혼이 얼마간 진행돼도 난 얼마든지 이 결혼 그만할 수 있어. 그건 나에게 늘 있는 선택지야. 명심해”


익명성으로 글을 쓰면 화제가 되는 '네이트판' 게시판은 나의 또 다른 길티플레저(!)이기도 한데, 

거기 조회수 혹은 댓글순 중 늘 상위권에 있는 질문은 이것이다.


-이 결혼 진행해도 될까요?

-이혼해도 될까요?

-이 결혼생활 괜찮은 걸까요?

...............


나는 ‘빼박’이라는 말이 우리의 인생을, 나의 선택을 너무 어렵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실패를 염두하고 시작하지 않는다. 결혼도 마찬가지.

이혼을 염두하고 결혼하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염두가 우리의 삶을, 선택을 좀 더 쉽고 가볍게 한다면 뭐 어떤가?

이혼을 말하는 프로그램들은 한결같이 말하지 않나?


결혼의 과정도, 이혼의 과정도, 그리고 이혼 후의 삶도 모두 내 선택의 문제니 '빼박 CAN'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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