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타성 X 탄성 O
2주 만에 테니스 레슨을 갔다.
오늘 유독 공이 잘 맞기도 했지만,
내가 왜 테니스의 매력이 빠지게 됐는지 새삼 깨닫게 된 말을 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난 공놀이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친오빠가 축구, 야구, 농구 등을 모두 좋아해서 덩달아 상대를 해주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긴 한데, 유독 농구를 좋아했다. 그 두툼하고 묵직한 공의 탄성이 주는 경쾌함이 좋았다.
물론 당시에 내가 재미있게 본 만화 <슬램덩크>라든가, 농구대잔치와 같은 농구 경기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농구를 하고 싶었지만 여중-여고에 진학하다 보니 농구공 만질 일이 점점 없어졌다.
오빠는 또래 친구들과 농구를 꾸준히 했지만 나는 그런 친구가 별로 없었다.
중학교 때 나처럼 <슬램덩크>를 감명 깊게 본 친구 한 명이 점심시간에 잠깐 상대해주기도 했지만 여학교에서 농구 골대는 거의 장식용이었다. 운동장에 뛰어노는 친구들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 요즘 나오는 <골 때리는 그녀들>이나 <언니들이 뛴다-마녀 체력 농구부> 등과 같은 프로그램이 더 일찍 방영됐다면 어땠을까 싶다. 그러면 공놀이할 친구를 조금 더 빨리 찾고, 더 즐겼을 텐데!)
그렇게 농구를 향한 나의 열정(!)은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다시금 내가 공놀이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전생에 골든 레트리버였는지 공만 보면 신이 나서 뛰어다니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한 운동이 테니스였다.
사실 테니스를 배우기 전까지 테니스는 좀 귀족적(?)인 스포츠라는 인상이 강했다.
그렇지만 ‘뽀대’ 나는 스포츠는 맞다고 생각했다. 그 멋진 테니스장이나 테니스 선수들의 옷차림 등. 이런 요소들이 요즘 소위 말하는 MZ세대들에게 테니스가 어필하는 부분일 것이라 추측된다.
하지만 내가 테니스를 시작했던 3년 전은 이제 막, 테니스 좀 치는 사람이 드물게 한 두 명 있는 수준이었다. 앞서 ‘테니스 선수가 될 순 없겠지만(1)’에서도 밝혔지만
나는 친구와 함께 2:1 레슨을 시작으로 테니스 라켓을 쥐는 법을 배웠다.
친구의 변심으로 나 혼자 남아 테니스를 마저 배우게 됐지만-
내가 테니스에 재미를 느꼈던 건,
통통 튀는 테니스공, 테니스 ‘간지’, 쾌감 등도 있었지만 사회생활 10년 차에 들은 칭찬 때문이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뻔한 상용구는 10년 차의 닳고 닳은 직장인에게도 썩 잘 먹혔다.
당시 나는 회사에서 조금 버거운 팀장 비스름한 역할을 해야 했고, 팀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몰랐다. '이렇게 꼰대가 되나 보다' 라며 짜증과 화를 안고 살았다.
나의 상사는 내가 하는, 해놓은 성과를 10년 차 팀장이라면 으레 할 수 있는 것이라 여겼다.
위에서 눌리고, 밑에서 치인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내가 몸 담았던 대부분의 조직에선 ‘칭찬’에 인색했다.
자괴감을 온몸으로 흠뻑 느끼고 난 후, 몸부림에 눈물을 한 바가지 흘리고 나면 그제야
“잘하고 있어”
라는 말을 겨우겨우 들었다.
10년 차가 됐다고 해서 전직을 한 것도 아닌데 그 환경이 달라질 리 만무.
그런데 갈피를 못 잡고 (심지어 담장 밖으로) 날아가 버리는 공을 치는
나에게 코치들은 끊임없이 격려와 칭찬을 했다.
“00 씨, 지금 폼 너무 좋았어요!”
“괜찮아요”
“좋아요, 좋아요, 나이~스!”
테니스를 점점 자주 많이 치다 보니 그날 처음 테니스를 치다 만난 사람에게도 덩달아 외치게 되더라.
“나이스!”
파트너가 비록 실수를 해도 “괜찮아” “~까비(아깝다)”라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었다.
(가끔은 전혀 말도 안 되는 공을 쳤는데 "까비"라는 말을 들으면 어이가 없어 웃음이 터지기까지 한다)
늘 치는 멤버들과 테니스 게임을 하다 보니, 요즘은 조금 매너리즘에 빠진 것 같았다.
날씨 때문에 2주간 레슨을 받지 않아 실력은 제자리걸음인 것 같고….
이대로 테니스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만 같은 순간, 오늘 나는 그 늪에서 멀어질 수 있었다.
“00님은 ‘탑스핀’을 노리세요. 그거 정말 잘하세요”
“탑스핀이 뭐예요?”
“오늘 계속하고 있는 거요.”
안정적인 포핸드 스트록이 잘 안돼 꼼수 중 하나로 공을 띄우는 스트록을 쳤는데, 그게 이름도 낯선 *‘탑스핀’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고, 그걸 내가 잘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난 테니스 이론에 매우 약하다. 테니스의 모든 것은 100% 실기로 습득했다. 그 흔한 테니스 경기도 잘 보지 않는다)
*탑스핀 : 베이스라인까지 힘 있게 가서 높은 바운드를 만들어내면 상대는 공격적인 스트록을 날리기 힘들어 라이징 볼을 쳐야 하는 까다로운 볼이다
아-
약점을 보완하려고 안간힘을 썼던 게 운 좋게 얻어걸렸네? 이게 내 강점이 되기도 하는구나.
나는 스스로의 약점을 알면 그게 아쉬워 맘 태우는 ISFJ.
잘하는 걸 잘한다고 칭찬해도 손사래 치며 약점을 내 입으로 말하고야 마는 촌스러운 인간.
“아, 그래요? 저는 그냥 평범한 스트록을 잘하고 싶어요”
말은 이렇게 해도 내심 뿌듯했다.
테니스는 희한하다.
코치에게 칭찬을 들으면 들을수록 더 잘하고 싶고, 더 배우고 싶다.
안간힘을 써서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그 기술을 새로운 게임에 적용해보고 싶다.
60g이 채 나가지 않는 무게에, 7cm 정도 크기의 초록 공은 내 삶의 탄성을 준다.
아무 생각 없이 라켓을 휘두르다가도, 한 번씩 나를 겸손하게, 또 자랑스럽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