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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꼬투리 Jun 14. 2022

이번 생은 처음이라더니?

'바보 비용'을 왜 지불해야 하죠?

며칠 전 테니스를 몇 개월간 배우고 제풀에 꺾여 그만둔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가

‘바보 비용’이라는 말을 듣게 됐다.

동네 테니스 아카데미를 알아보다 검색한 글에 관한 것이었다.

어떤 이가

자신이 테니스 레슨을 사기당한 것 같다는 얘기를 하며 

이런저런 부당한 상황도 ‘바보 비용’이겠거니 하며 넘겼다는 것이었다. 난 거슬렸다. 

바보 비용이 무엇이길래 저렇게 황당한 상황에서도 ‘아묻따’로 넘길 수 있는 프리패스가 되는 것인가?


맥락상 추측 가능했다. 

초보가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 같은 거. 그러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 취급을 당하는 것에 대한 비용. 사람들 참 말 잘 지어낸다며 친구와 웃고 넘기다가 또 그렇게 넘길 일은 아니지 싶었다. 


네이버에 검색하니 바보 비용이라는 말이 쉽게 검색이 됐다. 

바보 비용 : 굳이 지불할 필요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순간의 기억력 감퇴와 순발력 부족으로 어쩔 수 없이 지불하게 되는 비용. 여행을 계획할 때 신발 밑창쯤에 꼬깃 접어 반드시 얼마쯤 넣고 다녀야 할 비용.


단어 검색을 하니 그리 나쁜 의미의 단어는 아니었는데

테니스 초보자가 온갖 불합리한 상황을 겪고도 ‘바보 비용’으로 넘어가려 했다고 하니 그

 말이 왜 그렇게도 인색하고 고깝게 느껴지던지.


생각해보면 사람들은(나를 포함) 초보자를 얕본다.

세상에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이를 얕보고,

이제 막 운전을 배워 차를 가지고 나온 초보 운전자를 얕보며,

건강하게 살려고 운동을 시작한 초보자를 얕본다.

마치 자기들은 처음부터 어른이고, 베스트 드라이버이며, 나달이었던 것처럼.


나는 최근 몇 년간 ‘꼰대’라고 자처하고 있다.

실은 ‘꼰대’가 되기 두려워 할 말도 못 하고 주저하는 나 자신을 속박하고 싶지 않아서 사용한 

나름의 방패막이기도 했고, “너 꼰대야?”라는 말에 내가 선수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다 테니스를 배우면서 

꼰대가 되지 않는 방법을 깨우치게 됐다.

테니스를 배우기 전까지 나는 10년을 넘게 비슷한 패턴으로 마감을 하는 잡지 기자였다. 

매달 다른 사람을 만나고 다른 주제의 글을 쓰지만 나의 시간은 매달 비슷했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새로 배운 것이 테니스였다.


3X년간을 내 것인 줄 알고, 내 맘대로 될 줄 알았던 몸이 좀처럼 내 맘대로 움직여주지 않아 짜증 났다. 

조금씩 실력이 향상되기 시작할 즈음, 테니스를 칠 때의 즐거움을 느끼게 됐고 동시에

진짜 꼰대(즉 꼰대임에도 꼰대인 줄 모르는)가 되지 않으려면 쉼 없이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우리가 계속해서 초보자, 초심자의 마음을 지키며 살아간다면 

꼰대가 되는 일은 최대한 늦출 수 있다. 


그렇게 테니스를 배우고,

고양이를 키워보고,

전세대출을 받아보고,

운전대를 잡아보고,

전직을 해보고,

대기업 미생의 삶을 살아보게 됐다.

모두가 나에겐 처음이었다. 

초보 집사였던 시절

‘이번 생은 처음이다’라더니 왜 우리는 아닌 척 굴까?


‘인생 N회차’인 양 으스대며, 잘난척하고 (더 악질인) 남을 속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저마다 요령과 꼼수, 학습능력 등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두가 처음은 있다. 

처음인 사람에게 응당 ‘바보 비용’이라는 명목으로 감정적 지출을 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숙련자에게 그들에게 마음껏 텃세를 부리고, 막대하고, 얕보고, 괄시할 이유가 없다는 의미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그 시간을 잊고 산다. 

쭈뼛대는 차를 보며 짜증이 나고, 서브 하나 넘기지 못하는 초보와 게임을 하며

‘재미없다, 언제 끝나지?’라는 생각을 표정과 행동, 혹은 말로써 여실히 드러내고 만다. 

초보운전 딱지를 붙이는 것도 처음이던 시절

조금 어른스러운 이들은 초보자들에게 너그러운 마음과 아량을 베푼다.

초보를 향한 관대함. 

우리에겐 그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모두 이번 생이 처음인 초보자니까. 


난 어떤 이유로든 ‘바보 비용’이 세금처럼 당연해지지 않길 바란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드러나는 초보를 향한 얕봄이 들킬 때마다 부끄럽게 느껴진다. 

우리 모두는 꼰대가 되지 않을 수 있다.

모두에게 초보가 될 수 있음을 허한다면 말이다. 


그렇게 해야 천천히 꼰대가 되고, 잘 늙을 수 있다. 

난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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