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고 있는 걸까?

잘못 살고 있는 건 아닐까?

by 집필앤하이드

2년 전, 7년 사귄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그 큰 공백을 주변 사람들로 채우기에 급급했다.

유독 새로운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는 기회도 생겼다.

마치 그 공백은 그 사람들을 위한 자리라고 되는 것처럼 말이다.


허기진 사람이 갑자기 음식을 많이 먹으면 체하듯, 그때 나 역시 그랬는지 모르겠다.

34년을 잘못 살았던 게 아닐까?라는 내 가치관이 통째로 흔들렸던 때이기도 했다.

그런 생각을 했던 이유는 여럿이었다.


우선 영원할 것 같던 관계와 사랑이 끝이 났다.

원하던 회사에 취업하고, 그토록 꿈꾸던 직업을 가졌음에도 그는 나와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리지 않았다. 자신이 원하는 것에 그토록 분명하고 똑부러졌던 사람이, 나와 함께 할 시간에 대해서 흐리멍텅한 걸 보고 절망했다. 그리고 그 사실에 난 슬펐다. 헤어지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했다. 그는 못했고, 나는 했다. 막판에 잠깐 흔들릴 뻔도 했지만, 다행히 그는 내 흔들림에 흔들리지 않았고, 덕분에 나 역시 흔들릴 뻔한 마음을 잘 추스렸다.

오래 함께한 연인의 생각이 나와 이토록 다를 수 있다니.

난 착각했고, 오만했다.


그 시간을 보내다 새로 사귄 동료 S는 거침없었다.

유부녀이지만 싱글인 나보다 훨씬 개방적이었고, 아직 아이는 없지만 앞으로도 없을 거라고 단언했으며, 남편과의 소원해진 관계에 대해 말할 때도 주저함이 없었다.

새벽까지 술 마시는 걸 좋아하는 그녀는 술자리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꽤 너그러웠다. 대부분의 애주가가 그러하듯 말이다.

매사에 비교적 선명한 사람이었지만, 스스로 부끄럽거나 윤리적인 것에 어긋나는 이야기를 할 때는 말을 아꼈다.

속을 알 수 없는 그 의뭉스러움이 결정적으로 폭발한 사건이 벌어졌고, 나는 더 이상 그녀와 가까워지기가 두려웠다. 그는 이렇게 좁은 세계를 사는 나 정도는 충분히 품고도 남을만큼 개방적인 사람이라는 건 분명했지만, 동시에 제한선이 없는 까닭에 온갖 것들을 다 품고 있을 것만 같은 사람이었다. 온전히 믿기 어려웠다. 내가 그 찌꺼기와 어떤 식으로 섞일지 알 수 없었고, 그가 과연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두렵기도 했다.


무엇보다 난 그녀의 속내를 알지 못했다. 그녀에 비해 나는 쓸데없이 순수했고, 나에 비해 그녀는 쓸데없이 포용력이 있었다.


알고 지낸 지 10년이 넘은 친구 Y는 20대 후반에 일찍이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

1년에 한 번 근황을 묻거나 만나곤 했다. 이 친구는 아주 친하기 보다는 그저 그런 친구 중 하나였다. 1년에 한 번 볼까말까한 이 친구를 만났을 때가 하필 그 시기였다. 여전히 그녀의 인생은 매끈했다. 그 어떤 장애물도 없는 탄탄대로 인생. 그렇게 내가 더욱 느끼는 건 그녀의 화법 때문이기도 했다. 뭐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몰라, 그냥 했어" "그냥 됐어"라고 말했으니까. 공부를 그리 열심히 하지 않은 것 같은데 SKY대에 입학하고, 내 눈엔 그리 예쁜지 모르겠는데 괜찮은 남자들이 그녀를 좋아하고. 아니다 싶어 바로 포기하고 택한 다른 것이 오히려 더 그럴싸 해보이 그런 사람. 그녀눈 대기업에 입사해 5년 넘게 사귄, 눈웃음이 귀여운 지금의 남편을 만나 그를 쏙 빼닮은 아이를 낳고, 그 아이는 20년 헬스 경력으로 다진 체력을 가진 그녀의 어머니가 키워준다고 했다. 아이는 어디서 배웠는지 말을 너무 예쁘게 하고, 잠투정 없이 밤 8시면 곯아떨어진다고.


의무적으로 근황 토크를 마치고 그녀가 꺼낸 말은 "우리 점 보러 갈래?"였다. 그 점쟁이가 신통하다며 꺼낸 고백. 회사 상사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 했다. 상대 역시 아이를 둔 유부남인데 그에게 난생 처음 느끼는 감정을 느낀다고 했다. 그러나 일말의 죄의식은 느껴지지 않았다. "몰라, 그냥 그렇게 됐어" 쉬워 보이는 그녀의 화법은 여기에도 통했다. 나는 너무 쉬운 그녀의 말에 내가 그동안 간통이나 바람에 대해 너무 진지하게 생각한 걸까? 관계라는 게 사실은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닌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적으로 난 그녀와 절교를 했다. 단순히 Y가 불륜을 저질러서는 아니었다. 차라리 그녀의 사랑이 이미숙, 이정재 주연의 <정사>처럼 농도 짙은 것이라면 난 기꺼이 진지하게 조언을 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가만히 들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호기심, 일탈, 스릴. 그것 말고는 없었다. 무엇보다 그녀의 메시지 창에 해맑게 웃고 있는 Y의 아들 사진을 보며 이런 대화를 하는 게 왜 내가 부끄럽고, 화나고 짜증나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순간만큼은 다섯 살배기 그녀의 아들에게 감정 이입을 했는지 모르겠다.


누구라도 내가 잘못되지 않았다는 말을 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런데 그 시간에 이 두 사람은 나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바보야, 너 왜 그렇게 살아?


2018년, 그 해 난 많은 사람과 멀어졌다.

언제고 멀어지고 끊었어야야 할 인연들.

물론, 그 이상으로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그 공백을 채워주고도 남을 사람들로.


2020년의 내가 2018년의 내게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다.

난 잘못 살지 않았다.

앞으로 실수도 할테고, 서툴어서 잘 못하는 게 많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잘못 살진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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