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말꼬투리 Sep 11. 2023

모두가 고양이를 좋아할 순 없지만

존재만으로도 인정받는 것  


나는 친구가 많은 편이다.

여자의 마음에는 여러 개의 방이 있다고 하는데, 그와 비슷하게도

난 주변 사람들 각각 다른 계기와 이유로 애정을 느끼는 편이다.

이런 관계가 피곤하지 않냐는 질문도 받지만, 만약 그랬다면 진작에 끝났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강아지는 괜찮지만, 고양이는 힘든 사람도 있고, 고양이는 괜찮지만 강아지는 힘든 사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강아지에 더 친근감을 많이 느낀다.

세계사적으론 그렇지 않지만 우리나라에서 고양이를 키운 역사는 그리 길지 않으니 더욱 그럴 것이다.

 

고양이가 있는 우리 집에 놀러 오는 사람들의 반응 역시 다양하다.

특히 엄마는 애초에도 내 집에 잘 오지 않건만,

조조가 제법 큰 상태일 때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엄마는 발을 동동 구르며, 좀처럼 현관에서 들어오질 못했다.


“엄마는 고양이가 너무 무서워! 고양이 좀 어떻게 해봐!!!”

사실 그 정도로 엄마가 고양이 보는 걸 힘들어하는 줄 몰랐다.

집에 들어오기 전, 엄마는 고양이가 무섭다는 말을 수차례 했기에 방문 전부터 엄마 괜찮겠냐고 여러 번 물었다. 그때마다 엄마는 "참아볼게"라고 답했다.

하지만 말뿐 실상은 호러영화 중 가장 잔혹한 장면을 보는 듯, 엄마는 비명을 지르며 무서워했다.

(사실 고양이는 본인이 관심 갖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별 반응이 없다. 되레 무서워하는 사람을 더 무서워하며 도망가기 바쁘다. 실제로 조조는 초인종 소리만 들려도 기겁하며 몸을 숨긴다)

그럼에도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고양이의 존재 자체가 공포가 될 수도 있다.

알고 보면 귀엽지만, 모르고 보면 무서울 수 있다. 그건 고양이에 대한 미신과 낭설의 영향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거실에 들어온 엄마는 민망했는지 고양이를 무서워하게 된 연유를 변명처럼 읊었다.

“어느 날 산책하는데, 글쎄 길고양이가 새 한 마리를 잡아 죽이고는 가버리는 거야. 사냥하는 걸 보고 나선 엄마는 고양이 눈빛만 봐도 무서워”

조조를 새끼 때 봤다면 분명 이 정도로 공포를 느끼지 않았을 거다, 고양이에게 사냥은 본능이라 어쩔 수 없다, 집에서 큰 고양이는 새 사냥은커녕 무서워한다… 어떤 얘기도 엄마의 ‘고양이 공포증’을 해소시킬 수 없었다.

그리고 2년 여가 지난 지금 종종 내가 본가에 가면 엄마는 조조 안부를 묻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홀로 집을 지키는 조조가 담긴 cctv를 보여주거나 나에게 보이는 조조의 사랑스러운 언행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여주면 엄마는 말버릇처럼 말한다.

“조조는 주인 잘 만나서 얼마나 복이니~”

이 말의 괄호 안엔 한 생명체를 애정으로 잘 돌보는 딸에 대한 자부심보다는

'그러니, 네 애를 낳아봐라. 얼마나 이쁘겠니~' 혹은 '동물한테 주는 애정만큼 사람한테도 주거라~'등과 같은 속뜻이 담겨 있다.

어쨌든 액면 그대로 엄마의 얘기를 들으면서 난 생각한다.

모르는 소리. 내가 조조를 잘 만난 걸!

그리고 어느 날,  2~3회 정도 우리 집에 놀러 왔던 친구의 놀라운 고백을 최근에 들었다.

아이를 키우는 친구 둘과 싱글인 친구 A가 함께 있는 카톡 대화다.


A : 나 동물 싫어하잖아.

나: 오잉? 저번에 우리 집 놀러 왔을 때 괜찮았잖아

A : 참았지..

나 : 어머, 나 정말 몰랐어. 티가 하나도 안 나서

A : 내가 너의 애기를 무서워하면 네 기분이 좋겠어? 내가 XX이(유부녀 친구 중 한 명의 아이 이름) 무서워하면 좋겠냐고.


A가 강아지를 썩 좋아하지 않고, 무서워하는 쪽에 가깝다는 걸 알았지만 고양이까지 무서워하는지는 진정 몰랐다. 우리 집에 놀러 왔을 때 A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되레 주변에 고양이를 키우는 지인이 고양이의 매력을 말해줬다며 애묘인의 마음을 공감하는 듯했다.

조조를 나의 아기로 생각하고 힘듦을 표현하지 않았다는 친구의 배려에 내심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우리 집에 놀러 올 때마다 친구는 얼마나 큰 결심과 긴장을 했을지 상상도 안 됐다.


이외에도  이미 몇 차례 우리 집에 다녀간 B는 나 몰래 고양이 알레르기 약을 복용하고 우리 집 방문을 했다는 얘기를 다른 친구를 통해 전해 들은 적도 있다.


내 주변엔 대놓고 고양이가 무섭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친구 A, B처럼 내색 않다가 나중에 직간접적으로 알리는 사람도 있다.

 

나는 모든 사람이 고양이를 좋아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건 내가 아주 사랑하는 조조도 예외 없다.


내 눈엔 예뻐도, 남의 눈엔 그저 흔하디 흔한 길고양이, 눈빛이 매서운 동물일 수 있다.

그러기에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의 시선도 인정하며, 그에 따른 표현 방식도 때론 아쉽지만 이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묘인들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마음은 고맙다.


그건 내 곁에 있는 존재를 그 자체로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배려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데, 세상에 존재하니, 그 자체를 존중해 달라.

그러니 먼저 공격하거나 접근하지 않는 한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는, 길에 있는 고양이는 그냥 그대로 두길.

잔인하게 살해되는 길고양이에 대한 뉴스를 볼 때마다 마음이 저릿해지는 것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존재를 부정당하는 존재들의 가여움 때문이다. 


나는 고양이 얘기를 할 때 무심해지거나 외면하는 이들을 보며

나의 엄마를 생각한다. 그럴 수 있다고, 모두가 조조를 사랑할 수 없다고, 그래도 괜찮다고.

딱 그 정도여도 충분하다.

어떤 존재가 썩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 존재 자체를 인정하는 그 마음만으로도 말이다.

세상에는 조조와 같은 존재가 많으며,

조조를 보는 엄마와 같은 시선도 많다.

그 자체를 인정하는 것, 나는 그게 공존의 기본 원칙이라 생각한다.

이전 13화 고양이의 오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