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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꼬투리 Aug 09. 2022

길고양이와 다이어트 사료

우리 동네엔 길고양이가 많이 다닌다.

조조와 함께 살기 전까지는 그냥 불쌍한 마음으로,

고양이 키우는 선배에게 물어 습식 사료를 몇 개 사서 눈에 보이면 챙겨주는 정도만 했다.

그마저도 동네 사람들 눈치가 보였다.


길에 떠도는 고양이는 누군가에겐 골치 덩어리 거나, 불쾌감을 주는 동물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조조와 함께 살면서 밖에서 살아가고 있는 고양이의 울음소리만

들려도 움찔하게 된다.

 

조조는 창밖 너머 자신의 종족이 살고 있다는 걸 알까?


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고생하며 '생존'하고 있는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잘못했다가는 그들처럼 살아가야 할 수도 있었다는 걸 알까?


창문을 열어 놓고 있을 때 이따금씩 들려오는 길고양이들의 울음소리에

행여 조조가 반응할까 싶었는데 조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푸드덕 거리며 테라스 난간에 잠시 쉬어가는 비둘기나

어찌어찌 집 안까지 들어와 겨우 하루 살이 하는 날파리에 격렬하게 반응할 뿐이다.


조조의 세상은 겨우 15평 남짓한 공간과

곳곳에 있는 스크래처, 비워질 새 없는 사료와 간간이 먹게 되는 '까까' 그리고 같이 자는 나,

주기적으로 보게 되는 나의 친구들 정도가 전부다.

그러니 아주 가끔씩 찾아드는 비둘기, 날파리 정도가 조조에겐 낯선 존재일 것이다.


동네에 사는 고양이들을 챙겨주는 이들은 나 말고도 몇몇 있는 듯하다.

자주 가는 처갓집 양념 통닭 사장님은 누런 치즈 냥이를 가끔 가게에 들이기도 하고,

가게 밖에 사료를 두기도 한다. 음식점 사장님들은 쥐를 쫓아내는 고양이를 돌봐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고양이 돌봄을 몹시 불편해하고 싫어하는 이들도 있다.

나 역시 처음부터 고양이에 대한 마음을 활짝 열었던 것은 아니기에 그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한다.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고양이의 본능적인 행동과

밤이면 레이저 켜듯 번쩍이는 눈빛은 잘 모르는 이들에게는 위협감을 주기도 하니까.

우리 엄마마저도 조조가 무섭다며 현관문에서 몇 분간을 대치하고 있었던 적도 있다.

엄마는 길거리에서 비둘기를 대상으로 사냥 놀이하는 고양이를 봤고,

그냥 죽인 채 의연하게 자기 갈 길을 가는 고양이를 보며 두려움을 느끼게 됐다고.

하지만 그 불쾌감을 고양이를 해코지하고 해치는 방향으로 가는 사람도 있다.

며칠 전, 조조 몸집의 2/3 정도밖에 되지 않는, 바싹 마른 누런 고양이를 우리 집 주차장에서 마주했다.

그 앙상한 몰골에 차마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약속 시간도 여유가 있으니, 다시 집에 올라가 물과 사료를 챙겼다.

사료를 담다가 '아차차'.. 최근 살이 좀 찐 것 같아 조조 사료를 다이어트용으로 바꿨는데,

그 마른 고양이에게는 가당치 않은 먹거리였다. 그럼에도 달리 대안이 없어 챙겼다.

그새 그 앙상한 고양이는 사라졌고, 언제 또 올지 몰라 대충 주차장 구석에 담아놓았다.

흰 위생 장갑을 낀 아주머니가 물었다.

"이거 혹시 챙겨준 건가요? 그 고양이 봤어요?"

난 그분이 고양이를 싫어하는지, 챙겨주는지 알 수 없었다.

경계심을 안고

"네, 챙겨준 거예요. 방금 전까지 있었는데 사라졌네요"

라고 딱딱하게 답했다.

그가 아군인지, 적군인지 정확하지 않았기에 나는 좀 긴장했다.

"고양이가 있으면 그때 주세요. 이렇게 두면 청소하는 사람이나 윗동네 사람들이 발로 걷어 차고, 욕해요.

가끔 이상한 약 섞어 놓기도 하고.. 일단 내가 챙길게요!"

안심이 됐는지 나도 모르게 어울리지 않게 대꾸를 했다.

"네~ 애가 너무 말랐더라고요...."


그리고 얼마 뒤, 그 앙상한 고양이를 또 만났다.

이럴 줄 알고, 차에 남은 사료와 물을 챙겨놨다. 얼른 용기 뚜껑에 사료를 담아줬다.

사료 냄새가 구미를 몹시 당겼는지, 고양이는 금세 경계를 풀고 사료에 코를 박고 고개까지 흔들며 먹었다.

고개를 숙인 고양이 뒷모습을 보니 어깨뼈가 훤히 드러났다.

이 다이어트 사료가.. 녀석에게는 보양식이 됐으면 좋겠는데..

집에 들어와 까까를 달라고 재촉하는 조조를 보며 마음이 심란해진다.


이런 상황이 고양이에게만 해당될 리 만무하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만물이 그러할 것이다.


누구는 잔인하리만큼 험한 세상을 살아가고,

누구는 안온하고 따뜻한 세상을 살아간다.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냥 그렇게 태어난 것이니까.


천둥 번개가 치고 폭우가 쏟아지지만 조조는 천진하게 꿈뻑꿈뻑 졸다 이내 고개를 푹 꺼뜨려 잠을 청한다.

조조의 평화로움이 다행스러우면서도,

밖에서 허기와 두려움에 떨고 있을 동네 고양이들의 안위가 걱정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길에서 생존하고 있는 고양이들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자신들의 수명만큼 살아가다 자연사할 수 있길.

인간의 해코지를 피해 그렇게만이라도 살아갈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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