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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꼬투리 Aug 29. 2023

고양이의 오해

오해라서 다행이야

내가 관계를 맺으며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추려보면 두 가지다.

배신과 오해.

누가 보면 배신도 많이 당하고, 오해도 많이 받는 삶을 살았다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돌이켜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물론 오래 사귄 남자친구가 나와 다른 미래를 그린다는 걸 알았을 때 배신’ 감’을 느끼긴 했지만,

사실 배신이라고 말하긴 뭣하다. 연인 사이에 이별은 그만큼 사랑하지 않았다는 말로 귀결되는 것이니, 배신보다는 덜 사랑했음이 더 분명한 표현이다.

오해를 많이 받는 삶을 살았느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다. 오해를 많이 받을 만큼 빼어나게 이쁜 건 아니지만, 되레 인상 좋다는 말을 들었으니 나쁜 오해보다는 좋은 오해를 더 많이 받았다. 그러니 그리 두려워할 이유도 없다. 다만, 나의 투덜대는 말투가 진심과 다르게 전달되는 경우는 종종 있다. 하지만 그 정도 오해는 살면서 누구나 겪는 수준이라 생각한다

배신과 오해 이 중에서도 무엇이 더 두렵냐고 묻는다면, 오해다.

내가 누군가를 오해하는 것도, 누군가가 나를 오해하는 것도 싫다. 관계가 긴밀하고 깊을수록 오해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 애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상대에게 나 자신을 많이 보여주려 애쓴다. 많이 말하고, 많이 표현하는 것. 그것 말고는 오해를 피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다.

이건 조조와 나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서로를 오해할 여지는 너무나 많다. 종(種)부터 다를뿐더러 생김새, 먹는 것, 생활하는 것은 물론, 나는 조조가 도대체 이 작은 머리통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이 관계는 일방적이다.


대체로 나는 조조를 오해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조조의 '냥'소리가 짧을 때 무엇을 원하는지, 길 때 무엇이 불만인지 알기 위해 유튜브를 찾아보고,

책도 읽어본다.

반면 조조는 별 노력 없이도 나를 오해하지 않는다.

어떤 편견도 없다.  

내가 청소기를 돌리지 않는 한, 조조는 100% 가까운 신뢰감을 나에게 보인다.

아무 경계심 없이 내 곁에 엉덩이를 대고 앉고, 천진한 표정으로 하품을 하며,

아침마다 출근하는 나를 향해 배를 보이며 기지개를 켠다. 내가 사료그릇에 넣어주는 건 본인의 입맛에 맞기만 한다면 일단 냄새부터 맡고, 먹는다. 주말엔 내 배 위가 지구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듯 앉아 골골송을 부른다. 이보다 더 행복한 고양이는 세상에 없을 것 같은 표정이다.


그러나 조조가 나를 오해하는, 혹은 오해할지도 모르는 단 한 가지가 있다.

내가 정해진 시간에 집에 오지 않을 때.

조조는 어쩌면 내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영영 이 집에 자신을 홀로 두고 내가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내가 잘못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막연하게나마 이렇게 조조가 나를 혹은 상황을 오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한 건,

내가 외출하기 전 이를 눈치채고 조조가 내 주변을 맴돌거나

내가 귀가해 현관문을 들어설 때마다 커지는 조조의 반가움 표현 때문이다.

비명 지르듯 외치는 조조의 목소리와 온몸을 부르르 떨며 반가움을 표현하다 그것도 성에 차지 않는지 이내 스크래치에 가서 발톱을 긁는 걸 보면 그렇다.

조조는 나를 오해하고 있다. 그래서 조조의 반가움이 고마우면서도 미안하다. 어쩐지 내가 없는 동안 조조 혼자 나를 오해하다 나를 보자마자 ‘오해라 다행이야’라고 안도하는 것 같아서.

 

언젠가 tv에서 푸바오를 돌보고 있는 사육사가 다가올 이별을 앞두고 해주고 싶은 말을 하는데, 그 말을 듣고 뭉클했던 이유도 그가 나와 같은 마음일지도 모른다 느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에겐 너는 영원한 나의 아기 판다라는 얘길 해주고 싶다. 나중에 어떤 상황이 오든 늘 너의 편이고 너의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해주고 싶다”


나의 고양이, 나의 조조 역시 홀로 집에 있는 순간에도, 나와 함께 하는 순간에도 꼭 이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나의 영원한 아기 고양이, 네가 날 떠나야 하는 날이 와도, 나는 널 떠나지 않을 거라고. 우린 언제고 다시 만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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